상단영역

본문영역

'북한 석탄 반입' 문재인정부가 유엔 제재 위반을 은폐·방조했을까?

정부는 처음부터 미국 정부와 공조해왔다

  • 백승호
  • 입력 2018.08.10 19:09
  • 수정 2018.08.10 19:10

이른바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내 수입법인 3곳이 지난해 4~10월 북한산 석탄·선철 3만5038t(66억원 상당)을 원산지증명서를 위조해 국내에 반입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10일 정부가 공식 발표했다. 관세청은 정부대전청사에서 ‘북한산 석탄 등 위장 반입 사건’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조사 대상 10개 사건 가운데 7건에서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를 확인해 관련 수입 업자 3명과 법인 3곳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7건 가운데 4건은 북한산 석탄 등의 공급·판매·이전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2371호(2017년 8월5일 채택) 위반에 해당한다. 나머지 3건은 해당 결의 채택 이전이라 한국 정부의 독자 대북 제재인 5·24 조치 위반(남북교류협력법 등 위반)에만 해당한다. 정부는 유엔 결의를 위반한 선박 4척(스카이 에인절, 리치 글로리, 샤이닝 리치, 진룽호)의 국내 입항을 금지하는 등 관련 사실을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에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1

 

자유한국당은 대변인 논평을 내어 문재인정부가 유엔 제재 위반을 은폐·방조했다며 이번 사건을 ‘북한 석탄 게이트’라 작명하고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를 열어 국회 차원에서 상황과 대책을 점검하자는 등의 ‘상식적 대응’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보수언론도 정부의 방치·은폐 의혹이 있다며 ‘세컨더리보이콧(제3자 제재)’ 등 미국의 독자 제재 우려 등을 제기했다.

그런데 표적을 (일부러) 잘못 골랐다. 유엔 결의 위반 주체는 ‘국내 수입법인 3곳’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결의 위반 사례를 적발해 필요한 조처를 취한 ‘제재 결의 이행 주체’다. 자유한국당 등의 주장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꿔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관계와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정치 공세에 가깝다.

사태의 경과를 보면, 정부는 지난해 10월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석탄의 제3국 경유 한국 입항 사례가 있는 것 같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첩보 제공 주체는 미국 정부(주한미국대사관)다. 유엔 결의 2371호 채택 두달여가 지난 시점이다. 정부는 그 두달 전인 지난해 8월부터 ‘의심 사례 1건’를 자체 조사하던 터라, 미국의 첩보를 계기로 조사·수사 대상을 확대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이 지난 3월 ‘스카이 에인절’과 ‘리치 글로리’호가 북한산 석탄을 한국으로 실어날랐으리라 ‘의심’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 훨씬 전이다.

정부는 첩보 입수 직후부터 한-미 공조와 함께 정부 내 관련 부처 협력을 통해 ‘의심 선박’ 검색과 화물 검사, 조사·수사에 나섰다. 10일 정부 발표는 수사 중간 결과에 따른 사법조처에 앞선 행정 조처, 유엔 통보 계획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유엔 제재 결의 이행과 관련해 회원국 정부가 취할 의무가 있는 5단계 조처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①북한산 석탄 관련 정보 입수·공유 ②선박 검색과 화물 검사 ③조사·수사 진행 ④관련자 처벌 ⑤선박 입항금지·억류 등 5단계 조처를 모두 취했거나 취할 예정이라는 뜻이다.

 

ⓒAlexandre Ostyanko via Getty Images

 

정부의 방치·은폐 논란, 미국 정부의 ‘세컨더리 보이콧’ 우려 등과 관련해 세 가지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가 미국한테서 관련 첩보를 받아 필요한 조처에 나선 지난해 10월 이후,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 수입법인 3곳의 위반 시기는 지난해 4~10월이다. 둘째, 지난해 10월은 북한의 잇단 핵실험·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로 한반도 전쟁 위기가 거론될만큼 정세가 악화된 때라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 일부러 은폐·방치했다’는 의혹 제기는 무리한 측면이 있다. 셋째, 무엇보다 관련 첩보를 한국 정부에 제공한 주체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이끌고 있는 미국 정부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미국한테서 ‘제재 위반 의심 사례’ 첩보를 받고서 뭉갠다? 가능하지 않은 상상이다. 실제 헤더 나워크 미 국무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한국정부를) 신뢰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컨더리보이콧 등 미국의 독자제재는 “①제재 위반과 회피가 반복적·체계적이고 ②관할국 정부가 조사 등 충분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있을 때” 적용이 검토·추진된다. 정부가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미국 정부와 공조해왔고 적발 주체가 한국 정부라 ‘세컨더리 보이콧’ 등 미국의 독자제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정부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 ‘유엔 결의 위반 사례 적발’ 사실을 통보하면, 위원회는 안보리 15개 회원국에 관련 사실을 회람해 주의를 환기한다. 안보리가 결의 2371호를 위반한 선박 4척을 대북제재 리스트에 새로 올릴 수도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을 포함해 15개 안보리 회원국의 만장일치 합의가 요건이라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전망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문재인 #자유한국당 #석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