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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0일 17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10일 19시 23분 KST

나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에 빚을 졌다

"워마드 싫어하지만"

linephoto via Getty Images
huffpost

종일 커뮤니티 내 음란물 유포 방조죄에 대한 갑론을박이 피드에 떠서 죽죽 읽다보니 나는 또 커뮤니티와 관련한 내 경험담이 생각이 나는 것이다. 가능하면 경험썰을 풀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방식 대신에 지성과 교양으로 똘똘 뭉친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니 그냥 하던대로 경험썰이나 하나 더 풀어보련다.

15년 전이었나. 아는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진배야 너 여친갤에 떴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몇 번의 추가적인 질문과 답을 돌려 본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디시인사이드라는 커뮤니티에 여자친구 갤러리라고 하는 게시판이 있는데 그곳에 내 사진이 올라가 있다는 뜻이었다. 해당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여친갤에 들어가보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더러운 말들이 여성의 사진들 밑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 게시판이었던지 하루에도 수십명의 여자 사진이 올라왔다. 이 곳에 내 사진이 있다니 믿을 수 없었지만 정말 있었다. 내 남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올린 게시물이었다. 나의 특기는 뒤치기. 그러니까 섹스 잘하는 여친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쪽으로는 멘탈이 강한 편이었고 별로 상처받는 타입도 아니어서 댓글을 달았다. ‘정말 이 여자 남친이세요?‘,  ‘이 여자는 어디 살아요?’ 답글이 달렸다. 한 눈에 알았다. 이 사진 올린 사람이 내 남친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시 내 남친이 구사하는 언어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나는 댓글로 작성자를 조롱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본인이 직접 등판했다며 난리가 났다. 해당 게시물의 조회수는 높아져만 갔다. 내 싸이월드에서 퍼간 사진으로 올린 듯 했다. 나는 당시 일촌이 너무 많은 상태라서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러려니 그냥 넘겼다. 여친갤에서 소비되는 여성이 진짜 내가 아니니까 좀 기분이 더럽긴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 내가 아니면 됐지 뭐, 했던 거 같다. 그 뒤로도 나는 여친갤에 얼굴이 두 번이나 더 올라갔다. 그 때마다 아는 오빠들이 알려줘서 알았다 나중에는 또 올라갔나보네 하게 되었다. 더러워서 대응하기도 싫었다. 절대 주작이 아니다. 그때 알려준 오빠가 지금도 내 페친이고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도 이 글을 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어떤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전라의 여성의 몸에 내 얼굴이 붙어있었다. 성인배너광고였다. 내 얼굴과 교묘하게 합성된 여성이 커다란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런 모양새로 인터넷 온갖 곳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더이상 그러려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당장에도 욕이 나올 것 같은 문구와 함께 사이트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그 사이트로 들어갔다. 내 사진은 더욱 크게 전라로 노출되어 있었다. 당시에 그냥 정신이 나간 것 같다. 그 뒤로 며칠을 어떻게 지냈는지 또렷한 기억이 없다. 내가 정줄을 놓고 있으니 남자친구가 나섰다. 경찰에도 연락하고 항의도 하고 업체에 협박도 했다.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이 부분의 기억이 지금 흐릿하다. 지금 생각해도 그 남친 참 고마웠다는 것. 그것만 또렷하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당시의 나는 삶을 어느정도 놓았다. 저 배너사진을 진짜 나로 믿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뿐이었다.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저 사진을 기억하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뿐이었다. 여친갤에 사진이 올라간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이제 다 정리됐다고 했던 남친의 말을 믿었다 아니 솔직히 안 믿겼지만 믿어야했다. 그래야 내 삶에 내일이 있었다 당장에 싸이월드고 뭐고 내 사진이 올라있는 모든 SNS를 폐쇄했다.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의 나는 더욱 예민해져서 소심한 성격이 되었고 주위에 모든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의 기억에서 봉인할 만큼 그 시기는 내게 암흑이었다. 나는 아직도 성인광고에 등장하는 여성을 보면 구역질 비슷한 것이 올라온다.

그때 사람들은 왜 나를 위로하지 않았나.

왜 네가 이뻐서 그렇지 뭐 라는 성의 없는 말만 들어야 했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완벽하게 삶이 망가졌었다.

왜.

왜.

내 편은 없었나. 그리고 지금 내 편에 서서 더러운 커뮤니티에 젖은 남성들을 조롱해주는 이는 누구인가.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그러니 죽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래서 나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에 빚을 졌다. 모두 내 고통을 잊으라고 말하며 불편해 하기만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밖으로 꺼내어 피해자 편을 들고 가해자들을 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뜻을 함께 할 수가 없다 그들의 반지성주의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많은 행동들이 그들과 척을 지게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는 그들에게 빚을 졌다. 내 주위 여성들이 요즘 글을 쓸 때 서두에 꼭 적는 말이 있다.

‘워마드 싫어하지만.’   

하지만 내 주위엔 나와 비슷한 사정이 있는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꼭 이렇게 과격한 방식으로 이어나가야 하나를 생각해보면 언제나 처참하다. 그런데 그제서야 과거의 진배가 간신히 웃고 있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