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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몸'을 가진 29살 여성이 안락사를 택했던 이유

이 죽음은 대서특필됐다.

 

지난 1월 스물아홉살 네덜란드 여성이 의사가 제공한 독약을 먹고 숨졌다.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 합법이다. 그녀의 죽음은 국가가 허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죽음은 대서특필됐다. 그녀의 ‘몸’이 건강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신질환을 이유로 안락사 허가를 받아냈다.

BBC는 9일(현지시각) 지난 1월 큰 논란을 남겼던 오렐리아 브라우어스의 죽음을 다룬 네덜란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그녀의 죽음을 되돌아보는 기사를 내보냈다. 

BBC에 따르면 안락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호전될 가능성이 없는 참을 수 없는 고통‘, ‘합리적인 대안의 부재’ 두 기준을 충족하면 안락사를 허용한다.

ⓒBBC

 

이런 기준은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에게 잘 들어맞는다. 실제로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로 숨진 6585명 중 대부분이 신체적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오직 83명만이 정신적인 고통을 이유로 안락사했다.

오렐리아는 12살 때 우울증을 앓았다. 여러 정신과적 진단도 함께 받았다. 경계선 인격 장애, 애착 장애, 만성 우울증, 만성적인 자살 충동, 불안감 등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행복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행복의 개념을 모릅니다. 저는 제 몸과 머리 속에 갇혀 있어요. 그저 자유롭고 싶을 뿐이에요.”

그녀는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그녀의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헤이그에 있는 ‘생명의 종말 클리닉’(the End of Life Clinic)을 찾았다. 이곳은 안락사를 거절당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이뤄진 83명의 안락사 중 65명의 안락사를 이 클리닉이 감독했다.(*정신 질환 관련 안락사 신청은 승인률이 10% 정도에 불과하며, 승인 과정에도 수년이 걸린다.)

이 클리닉에서 안락사를 평가하는 정신과 의사인 Kit Vanmechelen 박사는 ”이곳에서 우리가 다루는 환자들은 다른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들보다 어립니다. 이점이 결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삶의 많은 날들을 빼앗는 결정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정신 질환을 이유로 안락사를 결정하는 것은 네덜란드에서도 논란꺼리다. 그 결정이 과연 ‘자발적’인 것인지를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법에 따르면 의사는 안락사 결정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인지, 깊이 숙고된 결정인지 확신해야만 한다. 오렐리아는 자신이 그런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죽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이 정신 질환의 증상일 수 있을까?

헤이크 클리닉의 Kit Vanmechelen 박사는 이런 우려에 대해 ”(정신질환으로 인한 것인지) 100%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인 입장에서는 그런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왜냐면 죽고 싶은 열망은 정신 질환 환자에게 흔하게 있는 충동이기 때문이다. 치료를 다 받았는데도 죽고 싶은 욕망이 계속된다면 이 욕망은 암환자가 조용히 죽고자 하는 바람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네덜란드의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줄기차게 안락사를 비판해 온 정신과 의사 프랭크 코르슬만 박사는 ”죽고 싶다는 욕망이 정신병에서 비롯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라며 ”정신과 의사들이 죽고 싶다고 말하는 환자들과 절대 공모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은 희망을 잃어도 의사는 옆에 남아서 희망을 줘야 한다. 그들에게 ‘당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살 충동 환자에게 안락사 외 다른 대안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Kit Vanmechelen 박사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으면 환자가 자살할 것이라고 본다. 불치병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하지만 프랭크 코르슬만 박사는 정반대 입장이다.

”의사 생활 내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봐 왔어요. 고칠 수 없는 수준인 사람은 없었어요. 물론 몇몇은 자살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불가항력이에요.”

2018년 1월26일 금요일 오후 2시, 의사가 오렐리아를 찾아왔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인가요? 약간이라도 의심이 있다면 되돌릴 수 있습니다.” 어떤 환자도 이 마지막 질문 앞에서 망설인 적이 없다.

오렐리아의 경우 의사가 약을 투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약을 마셨다. 

″쓴 맛이 난다고 해요. 한번에 마셔버릴려구요.”

다큐멘터리에서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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