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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영장의 온도 차이

  • 한채윤
  • 입력 2018.08.10 10:34
  • 수정 2018.08.10 10:36
ⓒhuffpost

무력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상황은 위험하다. 무력함은 문제를 해결할 힘이 내게 없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고 분노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것이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라는 의미다. 워마드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체포 영장 발부 소식은 많은 이를 이런 상태로 몰아넣었다.

경찰이 미국에 공조 수사를 의뢰할 만큼 중대하다고 본 범죄 혐의가 ‘음란물 유포 방조죄’라는 기사를 본 순간 두 눈을 몇 번이나 비비고 다시 확인해야 했다. 쉽게 납득되지 않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음란물을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통하는 것을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오랫동안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온 ‘디지털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그동안 귓등으로만 듣던 경찰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유포 방조’ 단속에 나섰다는 점, 또 하나는 ‘음란물 유포 방조죄’의 처벌 범위라는 것이 기껏해야 웹하드 운영자나 업로더들에게 벌금형이나 기소 유예, 심한 경우라고 해도 집행 유예가 선고되는 정도인데 갑자기 인터폴 적색 수배를 운운할 만큼 강력 범죄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삶 전체가 파괴되는 위험에도 아랑곳없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재미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몰래카메라 촬영자, 불법 동영상 편집자와 업로더와 다운로더를 비롯한 웹하드 업체 및 웹사이트 운영자를 체포하는 일보다 어찌하여 영리 추구와는 상관없는 회원제 웹사이트의 운영자를 검거하는 일이 한국 경찰에 가장 중대한 사안이 되었단 말인가. 

남성 목욕탕 몰카 사진 2장을 수사하던 경찰이 해외 거주 중인 워마드 운영자의 신원을 단 몇 개월 만에 확보한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소라넷을 비롯한 많은 음란물 사이트의 운영자를 이렇게 빨리 찾아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단체 활동가들이 고소장을 넣어도 음란물 유포 방조는 수사를 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실익이 적다며 수사에 소극적이지 않았던가. 

사실 ‘동일 범죄 동일 처벌(수사)’이라는 요구 자체는 전혀 성별 대립의 사안이 아니다. 사법 정의와 원칙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요구다. 특정 범죄에 대한 수사 기관의 태도는 그 범죄의 검거율, 기소율과 처벌률, 범죄예방률 등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그런 까닭에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함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시위가 벌써 서울에서만 4차례가 열리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 제기에 경찰은 정녕코 워마드 운영자 구속으로 답할 참인가. 과연 이것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임감있는 태도인가. 

8월9일 오전, 민갑룡 경찰청장은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을 신설하면서 “경찰은 그 누구든 불법 촬영물을 게시, 유포, 방조하는 사범에 대해서는 엄정히 수사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를 했지만 이걸 믿게 하기에는 순서가 틀렸다. 그동안 경찰이 엄정히 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을 하고, 경찰이 파악한 사이버 성폭력 실태를 발표한 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부터 발표해야 한다. 편파 수사가 아니니 믿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편파적이지 않음을 믿게 할 선제적인 실천부터 해야 한다. 더군다나 부산 경찰이 오히려 ‘몰카 범죄’를 희화화하는 이벤트를 홍보하는 악재까지 겹쳐 있지 않은가.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이런 경찰의 대응이 문제의 본질은 지워버리고 이를 성별 대립의 사안으로 바꾸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범죄는 남성과 여성 간의 성별 갈등이 아니다. 범죄는 가해자가 한 사람의 삶에 피해를 발생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여성이 피해자일 때는 범죄를 가볍게 여기고, 여성이 피의자일 때는 강하게 대처한다면 이는 성차별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산 경찰의 이벤트처럼 몰카 가해자의 이미지를 볼이 발그레한 남성으로 대표화해놓고 이를 경찰이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인증샷을 찍어 오면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가해자의 이미지를 ‘순진하지만 좀 짓궂은 남자’로 만드는 일에 왜 경찰이 앞장서는가.

모두에게 엄정한 것이 지금 필요한 공정함이 아니다. 단 한번도 공정함을 느끼지 못한 이들에게 갑자기 ‘모두에게 엄정’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차별이다. 폭염이 모두에게 똑같은 더위가 아니듯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가 모두에게 똑같은 온도가 아님을, 대한민국의 경찰은 그것부터 깨달아야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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