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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엘의 사진을 저장하고 '날 따라해봐요'를 들었다

ⓒOSEN
ⓒhuffpost

20대 초반에 소송을 치렀다. 그 소송과 함께 젊은 날의 꿈 하나가 소멸했다. 말수가 줄었고 폭식을 자주 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게 싫어서 사람을 피했다. 70㎏대이던 체중이 얼마 뒤 100㎏을 육박했다. 우울증 약을 복용했고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책을 읽고, 온라인 게임을 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썼다. 마지막 일이 내 직업이 됐다.

작가가 된 뒤로도 몸을 짓누르는 우울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취에 무감각해졌고 작은 실패에 크게 좌절했다. 그렇게 내 20대는 끝났다. 우울함이 절정에 달한 어느 날, 나는 무작정 떠났다. 목적지 없이 남쪽을 향해. 발톱이 빠지도록 멈추지 않고 걸었다. 아마도 그 여행의 끝에 나에게 어울리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하루종일 걸어도 사람을 마주치지 않는 날이 있었다. 말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풍경에 집중했다. 남쪽 해변에 도착했을 때 살이 많이 빠졌음을 깨달았다. 몸이 가벼워지니 기분도 나아졌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동쪽 해변을 따라 강원도로 올라왔을 때는 말수가 늘었고 자주 웃게 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었다. 그래서 여행을 끝내고 기차로 돌아왔다. 죽음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 걷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살이 쪄서 우울해졌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살이 빠졌을 때는 많은 것이 나아졌다.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살이 찐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부류도 있지만 남몰래 괴로워하는 쪽이 더 많다. 그런 이들에게는 내 경험을 들려주며 조용히 다이어트를 권했다. 뚱뚱한 몸을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건 주로 타인의 편견이지만, 그 편견을 장기적으로 자기 내면에 투사하지 않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며 저항만으로도 정신력을 크게 소모시킨다. 다이어트로 삶이 나아질 수 있다면 다이어트는 좋은 것이다.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가수 씨엘 같은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예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이 찐 씨엘의 사진을 보고 나는 단박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지만 거만하리만치 하늘을 향해 쳐든 턱의 익숙한 각도 때문이었다. 살이 쪄도 개의치 않는다기보다는, 전혀 개의치 않는 스스로의 정신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사진을 찍어 유포한 연예지 기자들만 <멘붕>에 빠졌다.

<어글리>에서는 “쳐다보지 마. 지금 이 느낌이 싫어 난. 어디론가 숨고만 싶어. 벗어나고 싶어”라고 노래 불렀지만 씨엘 스스로는 결코 그런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진이 사방을 돌아다니던 즈음에는 자신의 SNS에 전신이 드러난 공연 사진을 올렸다. <아이 돈 케어>라고 응답하듯이. 기사들을 읽었을까? 이 사람이라면 그래 봐야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중얼거리며 피식 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타인의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는 무척 어렵다.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신감이다. 평범한 사람은 스무명의 실망스러운 시선도 태연한 척 감당해내지 못한다. 글 쓰는 일도 비슷하다. 작가의 믿음을 뒤흔드는 반응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내는 시간이 절반이다. 오래전부터 씨엘의 괴물 같은 캐릭터를 사랑했지만 그게 가면이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기쁘다. 사진을 저장하고 <날 따라 해봐요>를 들었다. 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한 수 배웠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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