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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의 ‘인기상’ 신설은 우리 모두에 대한 모욕이다

이건 무슨 의미를 갖는가?

ⓒMarvel Studios

미국 전반의 추세를 따르는 것인지, 아카데미 시상식이 멍청해졌다.

작년 시상식이 사상 최저의 시청률을 기록하자,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내년부터 인기영화상(Outstanding Achievement in Popular Film) 부문을 신설하겠다고 8월 8일에 발표했다.

‘인기’의 기준은?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은 어떤 방식의 투표로 뽑는가? 아직 말이 없다.

이건 무슨 의미를 갖는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명망있는 단체가 영화를 만드는 모든 이들, 영화 감상을 즐기는 모든 이들을 모욕했다는 의미이다. 그 목적은 단 하나, ABC가 3시간을 할애할 만한 ‘재미있는 쇼’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인기영화상’이라는 분류 자체에 그들의 자만심이 들어가 있다. 영화업계에서 명망의 궁극적 상징으로 통하는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들은 인기가 없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최근 작품상 수상작인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세계적으로 1억9500만 달러를 벌어들이지 않았냐고, 그건 인기 있다는 증거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18년엔 그걸론 안되는 모양이다. 2018년에 ‘인기있는 영화’이기 위해서는 5억 달러, 7억5000만 달러, 정말 히트할 경우 10억 달러를 벌어야 한다. 요즘의 자본주의는 ‘오스틴 파워’의 패러디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명한 영화들이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했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오래 전부터 작품상 수상작들은 거의 언제나 그 한 해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 중 하나였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성인 드라마물인 ‘포레스트 검프’, ‘레인 맨’,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애정의 조건’,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등은 해당 해 수익 상위 5위 안에 든 작품들이었다. 90년에 달하는 아카데미상의 역사 동안 가장 많은 부문에 후보로 오른 ‘이브의 모든 것’, ‘벤허’,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라라 랜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화들의 반열에 든다.

할리우드가 쏟아내는 슈퍼히어로물이 2000년대 말에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면서 이러한 추세에 변화가 찾아왔다. 한 편당 10억 달러를 넘는 수입을 노리는 끝없는 프랜차이즈물에 업계 전체가 의존하게 된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가 더 이상 특정 주류 영화 관객들에게 매력이 없어졌다면, 그건 아카데미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 ‘노예 12년’, ‘아르고’는 모두 상당한 수익을 올렸고 ‘인기있는’ 영화들이지만, 이런 프랜차이즈들에 맞먹기란 불가능하다.

한편 아카데미의 호평으로 크게 힘을 얻는 소규모 영화들도 있다. 스튜디오들은 때로는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비상업적인 영화 제작을 승인하곤 한다. 이제 아카데미는 똑같은 수법을 계속해서 써먹는 블록버스터에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작품상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돈이 되는 영화에게 트로피를 쥐어주기 위한 부문이 아예 따로 생긴다면, 애초에 1억 달러를 벌 수 없을 것이 확실한 영화를 만들 유인은 대체 무엇인가?

시각 효과와 돈으로 휘감싼 디즈니의 거대 프랜차이즈를 아직은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카데미가 너무 좁은 특수 시장이라는 암시는 오늘날 미국 대중 문화를 반영하는 우울한 현실이다. 지금 아카데미는 ‘문라이트’와 ‘스포트라이트’ 같은 걸작들을 주목받게 만든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는 커녕, ‘쥬만지: 새로운 세계’를 인정하는 척이라도 해야 시상식을 시청할 관객들을 끌어들이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있는 셈이다.

‘인기영화상’을 보다 너그럽게 해석하자면, 고상한 척하는 아카데미가 도피주의적 오락을 예술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반복되는 불만과 궤를 같이 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카데미는 ‘겟 아웃’,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마션’, ‘그래비티’, ‘제로 다크 서티’, ‘아바타’, ‘헬프’ 등 여러 부문에 후보로 올라갔으며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최근의 영화들을 모욕하는 셈이다. 모든 것이 더욱 돈에 의해 좌우되는 지형은 생각만 해도 실망스럽다.

투표인단이 주류영화들을 좀 더 인지해주길 우리가 바란다 해도, 노력상 따위를 안겨주는 것으로 격하시켜서는 안된다.

시대에 발맞추겠다는 겉치레에 불과한 포퓰리스트적 시도는 사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비슷한 헛소리다. 겉만 번드르르한 슈퍼히어로물과 ‘분노의 질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카데미의 타깃 청중이 아니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건 후보작들의 족적 때문이 아니고, 황금 시간대에 TV를 시청하는 가정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카데미가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젊은 층은 더욱 줄고 있다.

무엇이 ‘인기’있고 무엇이 ‘좋은’지를 갈라서 우리의 집단 지성을 모욕할 게 아니라, 아카데미는 할리우드 최고의 유행 선도자라는 위치를 중요시해야 한다. 영화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오프라 윈프리의 순자산에 맞먹는 수입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부채질하지 말아야 한다. 애초에 아카데미 작품상 영화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영합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적인 영화를 돌봐야 할 지금, 아카데미가 자신의 브랜드를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

아카데미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멍청하다고 어림짐작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인기영화상의 가이드라인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으니, 나도 후보작을 하나 추천해볼까 한다. 올해 최고의 ‘인기영화’는 한 커플이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터는 보안 카메라 영상이다. 정말이지, 엔터테인먼트는 변화하고 있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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