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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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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배우가 사과했다. 새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있었던 태도 논란 때문이다. 그는 발표회에서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사진 촬영 중에는 동료 배우의 팔짱을 끼려는 시도를 거부하기도 했다. 취재진은 “혹시 기분이 안 좋은 거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촬영을 할 때나 안 할 때나 모든 삶을 극 중 역할처럼 살려고 노력 중이다.”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살이

메소드 연기라는 게 있다. 1950년대 연기 지도자 리 스트라스버그가 러시아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연기 방법이다. 간략하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배우가 역할을 연기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메소드 연기에는 일종의 신화가 있다. 이른바 ‘열연’을 위해서는 무조건 메소드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화다. 꼭 그렇지는 않다. 메소드 연기는 말런 브랜도로부터 더스틴 호프먼으로 이어진 미국의 산물이다. 영국 배우들에게는 메소드의 전통이 거의 없다. 앤서니 홉킨스는 “연기는 그저 일이고 나는 일을 한다. 메소드 배우들이 연기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케이트 블란쳇은 “나는 프로다. 그런 식으로 일하지도 않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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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은 지금 메소드 정치를 실험 중이다. 그는 서울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한 달살이를 시작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주방도 없다. 보여주기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서울시장이 여기 온다는 건 서울시청이 옮겨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냥 체험하고 놀러 온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어쨌든 서울시청은 계속해서 시장의 옥탑방살이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대통령은 선풍기를 보낸다. 시장이 선풍기를 받고 기뻐하는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온다.

메소드 연기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종종 이야기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영화 <마라톤 맨>을 찍을 당시 로런스 올리비에와 더스틴 호프먼의 일화일 것이다. 거리를 질주해서 숨이 찬 연기를 하기 위해 정말로 달리기를 하는 호프먼을 보며 전설적인 영국 배우 올리비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는 왜 연기를 하지 않는가?”

2018년의 정치인들은 소통을 하고, 소통을 소셜미디어에 전시한다. 그건 ‘쇼통’이 맞다. 쇼통이 꼭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메소드 연기든 아니든 중요한 건 하나다. 연기를 잘하면 된다. 그리고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연기로서 영화 전체를 살린다는 의미다. 당신이 아무리 훌륭한 메소드 배우여도 영화와 제대로 호흡하지 않거나, 오롯이 연기만이 남고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그건 좋은 연기가 아니다. 메소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태도는 조금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메소드를 구현하려 발버둥 치던 그 신인 배우의 태도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쥐를 잘 잡는 것

박원순 시장의 메소드 정치는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메소드 연기든 그냥 연기든, 메소드 정치든 그냥 정치든, 결국 중요한 건 쥐를 잘 잡는 것이다. 로런스 올리비에의 의구심에도 더스틴 호프먼은 <마라톤 맨>에서 쥐를 꽤 잘 잡았다. 박원순 시장도 잘 잡기를 바란다.

* 한겨레 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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