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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핑크 & 레드벨벳 콘서트 비교체험

왼쪽부터 레드벨벳, 에이핑크
왼쪽부터 레드벨벳, 에이핑크
ⓒhuffpost

재작년과 작년엔 에이핑크, 올해엔 레드벨벳 콘서트를 봤다. 매년 50회 이상의 공연을 꾸준히 관람하는데 이런 거 하나씩 곁들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술의전당, 서울시향 월간지에 글 쓰는 사람 중 걸그룹을 덕질하는 건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35년 가까이 록, 클래식, 재즈, 블루스에만 탐닉해오다 마흔을 앞두고 비뚤어졌다. 불혹(不惑)은 낭설임을 몸소 입증한 셈이다.

에이핑크 본진, 레드벨벳 멀티 구도로 덕질하다 보니 결국 두 팀의 콘서트를 다 보게 됐다. 모두 내 돈 내고 본 사람으로서 황희 정승처럼 판정하자면 현장감과 유대감은 에이핑크가 낫고, 완성도와 디테일은 레드벨벳이 낫다. 그러고 보면 두 팀의 음악, 퍼포먼스, 이미지 등과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에이핑크 공연은 뮤지션과 관객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0에 가깝다. 완벽하게 짜인 안무와 동선에 집착하기보다는 멤버들의 재량에 맡기는 부분이 많고, 그들은 그걸 친근한 분위기에서 판다들을 조련하는 데 할애한다. 눈 맞추며 소통하는 건 기본이고, 소소한 선물과 응원 소품을 받아 들고 무대에서 자랑하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때로는 관객이 건넨 스마트폰에 직접 셀카를 담아 돌려주기도 한다. 공연 내도록 하트 뿅뿅 분위기를 유지하며 ‘우린 지금 여기서 함께 추억을 만드는 중’이라는 느낌을 자아내는 게 특징이다.

라이브 밴드와 함께하는 점도 그런 유대감을 돋우는 데 한 몫 한다. 신나게 달리는 부분에선 드러머가 화끈하게 밟고 두드리며 클라이맥스에선 기타 솔로도 빵빵 터진다. 멘트를 할 때에도 분위기에 맞춰 즉흥으로 반주를 깔아주는데 그 효과가 쏠쏠하다. 물론 음악 자체의 현장감도 확연히 좋다. ‘NoNoNo’의 인트로 기타 리프가 라이브 연주냐 녹음된 음원이냐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2015년 첫 콘서트 이래 계속해서 고태영 밴드와 호흡을 맞추고 있으며 앙상블은 충분히 안정적이다.

반면 레드벨벳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기획된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경향이 짙다. 안무와 동선은 보다 정교하게 준비되어 있으며, 멤버들은 그를 가급적 깨뜨리지 않는 가운데 주어진 콘셉트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데 집중한다. 최고 기획사가 키운 최정예 부대다운 실력을 바탕으로 ‘무대 위 아이돌’의 본분에 충실한 느낌이다. 그를 위해서인지 관객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자제하며 돌출 무대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갈 때에도 최소한의 거리는 유지한다. 두 시간 반을 넘나드는 긴 시간 동안 ‘완벽하게 준비한 수준 높은 무대’를 관객에게 선사하려는 게 특징이다.

빈틈이 없다. SM 스태프의 총체적인 역량이 곳곳에 스며있다. 큰 틀, 작은 틀에서 다양하게 스토리와 콘셉트를 짜고 그에 어울리는 무대와 의상을 준비한다. 옷 갈아입는 시간에 상영되는 자투리 영상물 또한 정식 뮤직비디오 못지않게 완성도가 높다. 뭐 하나 대충 때운 게 없다. 23년간 축적된 SM의 인적, 물적 자산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스태프가 치밀하게 기획해서 판을 깔아주면 멤버들이 정확하게 구현하는 게 레드벨벳 공연이다. 라이브 밴드가 없는 건 아쉽지만 음악 스타일을 감안할 때 보통의 밴드 편성으로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확장된 편성으로 편곡도 곁들여야 할 텐데 언젠가는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풀어놓은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평하면 에이핑크 공연의 완성도와 디테일에도, 레드벨벳 공연의 현장감과 유대감에도 큰 문제점은 없다. (팬덤이 약한) 걸그룹이라는 핸디캡을 안고도 단독 콘서트, 해외 투어를 치르는 단계까지 온 두 팀이니만큼 평균은 훨씬 넘는다. 다만 모두 관람한 입장에서 위에서 이야기한 측면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괜히 이상하게 왜곡해서 좌표 찍어 사람 잡으려고 들면 버럭 화를 내주겠다.

순전히 내 기준에서 두 팀 콘서트를 대표하는 멤버, 그러니까 MVP를 뽑으라면 에이핑크는 보미, 레드벨벳은 슬기다. 보미는 공연을 진심으로 즐기는 게 눈에 보인다. 중반을 넘어서면 스스로 흥을 주체하지 못해 슬슬 시동을 걸다가 결국 신이 나서 달린다. 노래를 애교 섞어 장난스럽게 부르거나 막춤을 추며 팬들의 응원 구호를 따라하는 건 예고된 수순. 2016년 콘서트의 솔로 타임에선 넘치는 에너지로 싸이의 ‘챔피언’을 불러 공연장을 뒤집어놓기도 했다.

슬기는 그냥 ‘에이스’다. 어떤 음악, 콘셉트, 안무, 노래가 주어져도 찰떡같이 소화해낸다. 잘한다는 건 익히 알았는데 콘서트에서 한데 모아 보니 더욱 빛난다. 레드벨벳 콘서트의 지향점을 감안할 때 든든한 중심축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한국 걸그룹을 통틀어 최상위 반열의 실력자가 아닐까? 요즘 <프로듀스 48>에서 한국 연습생이 일본 프로를 압도하고 있다고 들었다. 슬기가 나가면 장판파의 조자룡마냥 쓸어버릴 것 같다. SM 연습생 기간만 7년이었다니 괜스레 대견하다.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두 팀을 덕질하며 새삼 느낀 건 SM이라는 조직의 역량이다. 장기적인 플랜 아래 체계적으로 콘셉트를 준비하고 작곡가 팀은 국내 트렌드에 한발 앞선 음악을 지속적으로 뽑아낸다. 신곡 낼 때마다 콘셉트 짜내고 작곡가 섭외하느라 안간힘인 중소 기획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 각종 소소한 디테일도 훨씬 세세하게 챙기니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여기까지 성장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단 소리다. 물론 이 정도 컸으니 그리할 수 있는 측면도 다분하겠지만. 닭과 달걀 같은 건지도?

에이핑크 한길만 걷다가 레드벨벳 멀티로 확장한 계기는 2집 <Perfect Velvet>이다. 별 생각 없이 전곡을 듣고선 깜짝 놀랐다. 걸그룹이라는 선입견을 빼고 들으면 영미권 주류 팝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나 외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음악 평론가 딱지를 달고 심각한 장르에 천착해온 양반들이 연달아 호평했고, 다소 삐딱한 성향의 음악 웹진 <weiv>는 아예 2017년 올해의 앨범 1위로 선정했다. 1위감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잘 만든 앨범임엔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수록곡 ‘Kingdom Come’을 콘서트에서 부르지 않은 건 제법 아쉽다. 팬덤에서 ‘갓킹덤’으로 불릴 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곡인데 아직 무대에서 선보인 적은 없다. 계속 콘서트를 찾다보면 언젠가는 볼 수 있는 건가? 이렇게 더욱 노예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아이, 행복해.

당분간 매년 1~2회씩 걸그룹 콘서트를 관람할 계획이다. 에이핑크와 레드벨벳에 일단 몰빵하고 마마무도 한번은 볼 듯하다. 그 이상의 전선 확대는 자제할 생각이다. 나는 불혹은 모르지만 중용은 알기 때문이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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