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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0일 15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10일 15시 31분 KST

'GLOW SEOUL' 대표 이든님을 만나다 ②

'GLOW SEOUL' 대표 이든님을 만나다 ②

▲ Glow Kitchen, 2015.9.3. @종로3가
huffpost

5. Glow Kitchen에서 GLOW SEOUL로

터울 : GLOW SEOUL 이야기로 넘어갈 텐데요. 먼저 왜 GLOW인지 궁금해요. 전구 모양과 러버덕이 메인 이미지였잖아요.

이든 : 별 이유는 없었는데, G로 시작하는 가게 이름을 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게이들도 많이 오고, 일반 레스토랑도 같이 겸하는데, 뭔가 게이들이 봤을 때는 의미있는, 함의가 있는 느낌이면 좋겠어서, G가 들어가는 단어 30개를 나열하고 이 중에서 제일 괜찮은 단어를 고른 거죠. Glow Kitchen 때 내부에 전구 인테리어를 많이 달아놨었거든요. 그렇게 된 건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에 드는 이름은 아닌데, (웃음) 이름이란 게 생각하면 할수록 늪에 빠지기 때문에.

제니 : 맞아요.

터울 : 저는 그래서 Glow Kitchen에서 GLOW SEOUL로 간 건 그 이름에 중요한 의미 부여를 하신 거라고 봤거든요.

이든 : 맞아요. 그 때는 Glow란 이름이 무슨 뜻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Glow Kitchen이었던 과거를 기억하자, 그런 의미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터울 : 지금처럼 산하 매장이 몇개씩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이름이 그렇게 중요하게 회자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하셨겠군요.

이든 : Glow Kitchen은 지금 없어졌잖아요. 영업 적자를 견디다 못해 없앴는데, Glow Kitchen을 처음 할 때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장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런 걸 하는 것도 그랬고, 저는 거의 매장에 없는데 앤쵸비라는 친구만을 믿고 동업 아닌 동업 형태가 된 건데, 저는 돈을 대고 앤쵸비가 운영하는데 너네들이 지금은 사이가 좋지만 금방 갈라선다, 이런 경고도 많이 받았어요. 어쨌든 시작을 했는데, 물론 잘됐던 기간도 있지만 안됐던 기간도 있고, 많이 힘들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과거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GLOW SEOUL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터울 : Glow Kitchen 하셨을 때의 인터뷰는 행성인의 웹진 ‘랑’에 한번 실렸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두 번 여쭐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제가 놀랐던 건 2017-18년 동안 가게를 지금 6개째 여신 거죠? 어떻게 그렇게 삽시간에, 서로 다른 컨셉의 가게를 여실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 앤쵸비님, 이든님, 2017.4.13. @Glow Kitchen, 종로3가

이든 : 뭐라 그럴까, 제가 원래 일하고 있는 회사가 벤처 기업으로,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잘 된 회사인데... 회사에 대한 시각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가게를 오픈하고 매장을 하는 게 어떤 영업이라기보다, 그건 그냥 회사의 일인 거예요. 지금은 아주 작은 스타트업이지만, 이 회사의 가장 큰 업무는 가게를 오픈하는 일인 거예요. (웃음) 

터울 :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거군요.

이든 : 네, 그렇게 생각해보시면 전혀 이상할 게 없어요.

터울 : 지금도 그럼 회사를 다니시는 거죠?

이든 : 네. 

터울 : 대단하시네요. (웃음) 

이든 : 아까 했던 말이랑 연속되는데, 제가 하는 일은 겹친다 그랬잖아요. Glow Kitchen을 하던 때에도 저는 회사를 다녔었어요. 그런데 Glow Kitchen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어요. 상권이 전혀 이탈리안 비스트로, 막 우아하게 스파게티 먹는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 거리에, 그것도 2층에 있는 가게였었고.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어떤 걸 하더라도, 사실 그런 컨셉을 하면 안됐던 거죠. 그냥 편한 소주방이나 호프집 같은 걸 했었어야 되는데, 하고 싶은 거랑 장소가 매치가 안되는 걸 집어넣은 거죠, 억지로. 그렇게 어거지로 영업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쳤는데, 만약 제가 Glow Kitchen 때, 그것만 영업을 하고 그걸로만 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훨씬 더 일찍 문 닫았을 거고, 그 다음이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에서 제가 계산해보니까 Glow Kitchen을 하면서 얻게 된 부채, 영업 손실이 크더라고요. 그러면 당연히 이 가게에서 먹고 사는 사람이었으면 그 빚을 갚다가 끝났든지 그랬겠죠. 

그런데 제가 Glow Kitchen에 미래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게, 문 닫기 거의 1년 전이었어요. 그 해 1월 즈음에 깨달았는데, 2017년 11월에 문 닫았거든요. 그 때 결론을 내리고, 나는 괜히 일 벌려서 장사한답시고 했는데 돈만 날리고, 그러면 내가 얻은 건 무엇인가를 따져봤어요. 얻은 게 딱 두 가지였는데, 우선 앤쵸비라는 사람이, 내가 같이 춤추고 놀고 그런 걸 할 때만 좋았던 사람이 아니고, 영업 파트너로서 동료로서, 가게가 힘든 와중에 쵸비가 가게 적자가 계속되니까, 다른 막내 직원보다도 더 적은 급여를 받으면서 여섯 달 이상을 50만원, 100만원 받으면서도, 집에 월세를 못낼 정도로 힘든 와중에서도 불평 한 마디 안 하면서 가게를 지켜줬거든요. 사실 앤쵸비 정도의 경력 10년이 넘은 쉐프로서 어디 가면 사실 월급 400 이상은 쉽게 받을 수 있는데, 저를 떠나지 않고 저랑 같이 가게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도 그 힘든 와중에서도 거기를 버텨 줬었고, 저한테 한번도 싫은 소리 한 적이 없었고, 저도 힘들어서 돈을 조금밖에 못 줄 때도 그 돈이라도 챙겨줘서 감사하다고 했었고, 그래서 살면서 저런 좋은 파트너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았죠. 

그 다음에 그와 같은 맥락이지만, 같이 했었던 직원들이 다 너무 좋았어요. 다들 저희가 게이인 걸 알면서도, 대부분이 일반이었는데, 그 때 그 직원들이 다 저희들을 항상 좋아해주고, 너무 성실하게 일하고, 어디 가서 이런 친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겠다는, 그러니까 돈은 잃었지만, 사람은 얻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Glow Kitchen에서 지금의 GLOW SEOUL을 제가 만들 결심을 한 계기인 것 같아요. 이 좋은 멤버들을 가지고 제가 가게 기획단계에서부터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Glow Kitchen에서 제가 얻게 된 경험, 시행착오를 개선해서 더 좋은 컨셉으로 매장을 열게 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상황에서 후퇴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과감한 투자를 해보기로 결심한 거죠.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듯이, 만약에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그 일에만 전념했었다면 뒤의 일을 못 봤을 것 같아요. 

터울 : 그러네요. 일이 겹치는 게 그만큼 중요한 거네요.

이든 : 저한테 인생 상담을 해오는 친구들이 되게 많아요, 후배들이나 동생들이. 그 중에서 많은 부분들이, 직장 다니기 너무 거지같다, 힘들다, 그래서 때려치고 나도 형처럼 사업이나 장사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얘기를 하는데요. 저는 그럴 때 항상 말해주는 게, 어떤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 사람치고 그 다음의 일을 잘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어떤 일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고 너무 그 일을 잘하기 떄문에 오히려 그 다음을 도모해야 도약을 할 수 있는 거지, 이게 힘들어서 다른 일로 가면 보통 더 내려가게 된다, 

터울 : 그 상황에서 사실 제일 좋은 조언은, ”나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 같은데요. (웃음) 그 사실을 모르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나도 다니니까 너도 다녀. 이거 하면서 나도 다닌다”고. (일동 웃음)

이든 : 맞아요. (웃음) 진짜로 그런 게,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경력 단절자가 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어딘가 입사하기도 그렇고 자기 입지가 되게 좁아져요. 그런데 제 주변의 후배들도 과감히 딱 그만둬버리고 다른 걸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그래서 잘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뭐든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저라면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할 것 같아요. 순간은 되게 힘들어요, 같이 뭔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게, 뭔가 인격 분열이 오거든. 난 여기서는 본부장인데 여기서는 갑자기 나를 사장이라 부르고. (웃음) 자기를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가 되고, 그렇게 되긴 하는데, 그 정도 고통은 좀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 Glow Kitchen, 2017.11.13. @종로3가

터울 : 그러면, 왜 가게들이 하필 다 익선동이었을까가 궁금하긴 하거든요.

이든 : 관리하기가 쉬워서, (웃음)

터울 : 어떤 의미에서 그런 건가요?

이든 : 우선 첫번째로 제가 느꼈던 중요한 부분은, Glow Kitchen을 하기 전부터, Glow Kitchen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열었던 게, 저는 처음부터 익선동 한옥에 가게를 내고 싶었어요. 저는 한옥을 되게 좋아하고, 가게들 보면 아시겠지만 마당과 정원을 되게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의 가게를 내고 싶어서 익선동에 가게를 오랫동안 알아봤었는데, 그 때는 아직 익선동 상권이, 초반도 없었어요. 익선동 초기의 식물이라든가, 익동다방이라든가, 그런 가게들도 그 때는 오픈 안했을 때였어요. 거의 4년 전이니까. 그래서 가정집인데 용도 변경을 해서 상업용으로 해달라는 게 아예 말이 안 먹히더라고요. 그래서 못했었고, 

터울 : 그 때만 해도, 

이든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근처의 2층에 Glow Kitchen을 냈는데, 그러고 나서 익선동에 이런 가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놓쳤던 기회가 익선동에 찾아온 거죠. 그래서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는 회사 일이 너무 바쁠 때였어서 임대 나온 매장을 월세 내면서 얻어둔 상황이었어요. 2017년 1월에 Glow Kitchen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 시점부터 매장을 얻어두고 월세를 내면서 보유하고 있었던 장소들이 여러 군데가 되었던 거죠. 그리고 나서 거기에 하나씩 가게를 집어넣기 시작한 거죠. 

터울 : 제일 먼저 여신 게 익동정육점이죠?

이든 : 네. 그나마 스테이크니까, 그건 Glow Kitchen에서 하던 거거든요. 그래서 앤쵸비 입장에서 가장 편하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걸 처음 시작했었고, 저희 요리는 온갖 나라의 음식이지만 주방장은 앤쵸비 혼자이기 때문에, ‘태국 음식 해봤어?’ 그러면 앤쵸비가 ‘해보지 뭐, 끼로’ 이러면서 해오면 ‘태국에서 먹던 맛이야!’ 뭐 이런, (웃음)

터울 : 언젠가 앤쵸비님의 인터뷰를 해보고 싶어요. 너무 대단한 능력인 것 같아요. 

이든 : 저도 요리해보라고 시킬 때 그냥 어디서 가져온 사진 보고 이거랑 똑같이 만들어보라고 할 때도 있거든요. 잘 모르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냥 드랙 아티스트로만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천재적인 감각이 있는 요리사예요. 제가 보증하는데, 그냥 제 친구고 오랫동안 같이 해왔기 때문에 앤쵸비를 시킨 게 아니고 능력을 보고 믿고 시키는 것이거든요. 대부분의 요리들이 어떻게 탄생하냐면, 제가 어딜 데리고 가서 음식을 먹잖아요. 그리고 해봐, 그러면 그 음식을 똑같이 만들어내요. 개선을 하면 개선을 했지, 더 맛없게 만들어내지는 않아요. 게다가 본인이 드랙 아티스트로서 천부적인 끼와 감각이 있기 때문에, 요리도 훨씬 더 아름답게 만들어내죠. 그런 능력이 있어요.

살라댕 방콕 할 때가 정말 헬이었는데, 익동정육점 하고 나서 가게를 처음에 3개 오픈하게 된 게, 원래 계획은 앤쵸비와 그 당시 직원들이 너무 좋았다 그랬잖아요. 주방 직원이 당시에 3명이 있었는데, 이 3명을 전부 헤드 쉐프로 앉힌 거예요. 앤쵸비가 요리를 각각 1명씩 전수해줘서, 앤쵸비 혼자 가게를 세 군데 동시에 운영할 수가 없으니까, 이 친구들을 각각 헤드로 앉힌 가게들을 하나씩 만들면 되겠다 해서 작년에 우선 3개를 오픈하게 된 거죠.

터울 : 그게 익동정육점, 살라댕 방콕, 심플도쿄, 이 3개의 가게군요.

이든 : 네. 

▲ 익동정육점 ©GLOW SEOUL

터울 : 메뉴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앤쵸비님에게 여쭤봐야겠네요.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고요. (웃음) 

제니 : 그러게요. 어떻게 그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지게 됐는지.

이든 : 그런데 먹어보면 미묘하게 다 뭔가 공통점이 있어요. (웃음) Glow Kitchen에서 뿌리가 있는 요리들이에요. Glow Kitchen이 사실은 돈 되는 건 다 팔았잖아요. 거기에 중국식 탕도 있었고 베트남 스튜도 있었고,

제니 : 비건 음식도 있었고,

이든 : 네, 그리고 스테이크도 있었고, 일본식 파스타도 있었고 해서, Glow Kitchen에서 스테이크랑 고기 요리는 익동정육점으로 간 거고, 거기서 팔던 멘타이코 파스타는 없애기 아까운데 그럼 그거 가지고 일식집 해볼까? 그래서 우선 멘타이코 파스타 우선 넣고 그 다음엔 일식집이면 메뉴를 어떻게 해? 할 수 있는 게 뭐 있을까? 해가지고선 시장조사 해서 만들어넣고, 약간 그렇게 했었어요. 

그 때 약간 그런 유혹이 있었어요. 외부 요리사를 섭외할까, 그냥 일식 요리사를 섭외해서 한다거나. 그런데 그러면 약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걸로 하고 싶었어요. 힘들더라도 그냥 우리끼리 해보자라고 해서, 매장들 오픈하기 전까지 매장을 얻어놓고 기간이 되게 길었잖아요. 그 6개월 동안 앤쵸비가 다른 매장에 막내로 취업해서 요리를 배워오기도 하고. (웃음) 

앤쵸비 : 그런 얘길 하면 어떡해! (일동 웃음)

터울 : 전 개인적으로 앤쵸비님이, ‘어떻게 그런 일을 다해?’ 라고 물을 때 ‘끼로~‘라고 하는데, 그 ‘끼로’라는 말이 제일 무서워요. (웃음) 그 끼에 엄청나게 많은 게 담겨있는 거잖아요.

이든 : 그러니까 나름 철저하게 준비를 한 거예요. (웃음) 

터울 : 그러면 익선동이 한옥으로도 유명하지만, 여기가 종로3가로서 게이들이 예전부터 있었고, 성판매여성을 비롯한 쪽방촌도 많았던 동네인데, 독특한 동네인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이 동네에서 가게를 여시면서 이 곳의 특색이랄까, 이 동네가 이런 곳이구나-라고 생각하셨던 바가 어떤 게 있었는지 궁금해요.

이든 : 지금도 그런데, 밤낮의 구성 인원이 완전히 바뀌죠. 예전에는 낮에는 주로 노인분들이 많이 계셨고, 밤에는 게이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었고, 요새도 아주 좁은 지역을 사이에 두고 익선동 한옥단지 내부로 들어오면 젊은 남녀들이 데이트하러 오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엄청나게 긴 고기집 골목이 쫙 있고, 밖에는 포장마차가 있고, 이쪽에는 기원이랑 노인분들이 많이 가시는 곳들이 많이 남아있고, 복합적인 문화들이 담 하나를 경계에 두고 공존해있는 독특한 지역인 것 같아요.

터울 : 음식점을 제가 알기로는 계속 여실 계획이라고 들었는데요, 

이든 : 그렇죠, 이제 앞으로도 계속 열겠죠.

터울 : 몇 개까지 여실 계획이에요? (웃음) 

이든 : 아마도, 제 생각에는 올해 안으로 10개 정도의 매장이 되지 않을까 싶고, 내년까지 하면 20개 정도? 그러니까 제 계획은, 앞으로 한 1년 동안은 중복되는 매장은 없을 거예요. 전부 다 새로운 걸로 시도해보고, 이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게 뭔지를 살펴볼 생각이에요. 지금 단계도 저한테는 약간의 테스트예요. 그래서 뭔가 해보니까 이 포인트가 잘 먹힌다는 걸 알게 된 부분이 있어도, 똑같은 걸 또 넣지 않고, 이게 될까?-싶은 걸 일부러 넣어보면서 매장을 오픈하거든요. 그래서 이건 반응이 좋구나, 이건 생각보다 반응이 안좋구나... 하다보면 제가 이건 진짜 필살의 한방이다, 이건 고객들에게 대박이 난다 했던 부분은 손님들에게 의외로 반응도 없고 인스타에서 칭찬하는 얘기도 없고 그런데, 그냥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끼로 그냥 예쁘네- 하고 해놨던 거라거나, 아니면 먹어보니까 이거 먹을 만하네- 해서 넣었던 메뉴라든가, 아니면 운영방침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되어서 화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걸 저는 지금 알아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제 저도 또다른 스타트업을 시작한 거니까, 20개의 매장에서 전혀 다른 컨셉을 계속 개발해보고, 이 중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 좀더 구체적으로 브랜드로 개발해나가는 게 앞으로의 사업 방향이 될 것 같아요.

터울 : 그러면 당분간은 익선동에서 가게를 계속 여시겠지만, 향후에는 익선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가게를 여실 수도 있는 거네요.

이든 : 8월에 오픈하는 매장이 익선동에서의 마지막 매장이 될 거예요.

터울 : 아 그래요?

이든 : 네. 

제니 : 그게 익선동이라는 행정동을 넘어서 종로3가의 다른 곳에서 여시는 건지, 아예 다른 곳에서,

이든 : 아예 다른 지역에 열 거예요. 이 곳에서는 더 이상의 메리트가 저한테는 없고, 오픈할 만한 장소도 거의 안 남아있고, 남이 운영했던 가게를 권리금 주고 제가 들어가서 영업하는 건 제 특성에도 맞지 않고 해서, 8월에 오픈하게 될 가게가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이거든요. 그래서 그 매장을 마지막으로 익선동에서의 오픈은 마무리하고, 다른 지역에서의 오픈을 준비하고 있어요.

터울 : 그러니까 처음부터 인테리어 계획을 잡아서 본인의 취향대로 가게를 꾸미기에 익선동이 나쁘지 않은 동네였기 때문에,

이든 : 좋았죠. 지금 여기도 보시면, 이런 공간을 제가 아무리 돈을 들인다 해도 다른 일반 상가 건물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거거든요.

▲ 살라댕 방콕 ©GLOW SEOUL

6. 익선동의 이성애자 상인·직원·손님들과의 관계

터울 :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 처음에 상가임대 중개 거부 경험이 있으셨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리고 익선동 지역의 상인회인 ‘익선다락’이라는 조직도 존재하는데,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오셨는지 궁금해요.

제니 : 중개 거부 건은 Glow Kitchen 때 얘기로 알고 있어요.

이든 : 네, 그건 GLOW SEOUL 때랑은 시간차가 많이 나는 얘기예요. Glow Kitchen 때는 정체성이 애매했잖아요. 그래서 바도 있고, 음식도 팔고 그런다고 얘기하면, 종로3가 일대에서 바를 한다 그러면 뻔한 거죠. 곱창집 한다고 하면 그렇게 안 물어봤을 텐데, 그런 거 한다고 그러니까 ”남성주점이냐”고, 그렇게 물어보거든요.

터울 : ”남성주점”이라고 부르는 군요. (웃음) 게이바 같은 업소를 부르는 명칭이,

이든 : 네. 그러면 그런 상태로 알려주시는 분도 있고, 특정 지역은 그래서 집주인이 게이바 들어오는 게 절대 안된다고 그래서 안된다고 하는 가게도 몇 군데 있었죠, 제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래서 얘기 안하고 오픈했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는 것보다는 얘기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우리는 ”남성주점”은 아니고 파스타를 팔 거긴 한데 남자들이 많이 올 거라서, 그냥 뭐라고 얘기하기 그래서 ”남성주점”은 딱히 할 건 아닌데 제가 게이라서 게이들이 많이 올 것 같긴 하다고, 그냥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럴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시는 분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걸, 그 때 얘기가 나오고 나서 제 느낌에 그런 식으로 얘기가 됐었죠, 어떤 동성애 혐오가 주요 원인이라는. 그런데 애매해요 그건. 그걸 혐오로 몰아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쪽 술집들이 있는 건물이 실제로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죠. (웃음) 주말 밤마다 술이 꽐라돼서 계단 난간 타다가 난간 다 부서지고. Glow Kitchen도 그랬거든요, 술먹고선 난간에서 미끄럼틀 타다가 난간 부서져서, CCTV 다 찍혔는데. 그래서 주인집 할머니가 나와서는 ”내가 이래서 이 사람들 건물 안준다고 그러지 않았느냐”라고 한다든지. 물론 그게 게이들만의 민폐는 아니지만, 사실은 게이들 말고는 이 거리에서 새벽까지 술먹는 사람이 없었던 상황이니까, 

터울 : 게이 취객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이든 : 네, 그러니까 그런 게 싫었던 이유도 컸을 거고, 그래서 뭐 그런 경우는 많잖아요. 상가 얻으러 갔는데, 우린 병원 아니면 안준다고, 뭐 이런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그분들이 특별하게 이상해서라기보단,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익동정육점, 2018.1.12. @익선동

터울 : 그러면 Glow Kitchen 여시고 나서 익선동 상인회와는 어떻게 관계맺으셨는지 궁금해요. 

이든 : Glow Kitchen 때는 관계가 거의 없었어요. 왜냐하면 행정구역이 우리 건물까지 딱 낙원동이고, 그 다음부터가 익선동이거든요. 그리고 위치는 붙어있지만 느낌이 한옥이 아니다보니까 같이 갈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었고 상인회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도 안했었어요. 그랬는데 들어오고 나니까 상인회가 있다고 그래서 그냥 가입한 거고, 그 다음에 상인회와의 관계는, 상인회끼리 전혀 모이지 않기 때문에, 

터울 : 아 그래요? (웃음)

이든 : 네, 주로 상인회는 다른 매장의 부도덕을 비난하는 고발글만 가끔씩 올라오고, 아무도 답글을 달지 않아요.

터울 : 그러니까 그렇게 서로 친하거나 그런 게 아니군요.

이든 : 네, 그 중에서 친한 분들은 따로 몇 명 계셔서 사장들끼리 모이고, 익선동 상인회가 응집력이 전혀 없어요. 구청에서 벌금 나오면 그런 것만 모여서 의논하고, 그렇더라고요. 

터울 : Glow Kitchen 운영하실 때, 성소수자가 운영하는 업소라는 걸 굳이 내보이지는 않더라도 숨기지는 않으시는 거잖아요. 누가 물어보면 얘기하시고, 임대를 하실 때도 집주인에게 밝히시는 거고. 그러면서 성소수자와 이성애자가 둘다 올 수 있는 가게를 표방하시는 게, Glow Kitchen 때부터 GLOW SEOUL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제가 기억하기로 Glow Kitchen 때는 성소수자들, 특히 게이들이 많이 왔던 가게였는데, GLOW SEOUL 산하의 가게들은 게이들이 얼마나 오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이든 : 일반 가게들보다는 많이 오죠. 그런데 그렇다고 퍼센트로 계상할 수 있는 정도의 비율은 아니에요. 

터울 : 그럼 만약 여기에 오시는 이성애자 손님들 중에 이 가게가 성소수자가 운영하는 곳이란 걸 인지하고 오시는 확률은 얼마인지 궁금해요.

이든 : 간혹 계세요. 저희 GLOW SEOUL 페이스북이 앤쵸비가 ‘까마’하고 찍은 영상들이 수십 개가 올라가 있기 때문에, 또 야간개장 행사도 그랬고, 그런 게 올라가있다 보니까, GLOW SEOUL에서 하는 가게라는 걸 아시는 경우에는 이 역사성에 대해서 아시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오시면 앤쵸비랑 저랑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거나, 이러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분들 중엔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보신 여성분도 계시죠.

터울 : 그럼 알 사람은 알아라- 정도의 스탠스인 거군요.

이든 : 모르겠어요, 이걸 적극적으로 홍보의 수단으로 삼는 것도 웃긴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유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뿐이에요, 이건. 제가 홍석천씨 같았으면 달랐겠죠. 그렇다고 홍석천씨도 가게 앞에다 성소수자가 운영하는 가게라고 써붙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숨기지는 않는 정도인 것 같아요.

터울 : 그것만으로도 사실 의미가 있죠.

이든 : 네, 고객들에게는 아직까지 전달은 잘 안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예전에 얘기했듯이 프라이드날 레인보우 깃발 걸고 영업할 수 있는 정도? 그런 정도의 느낌이면 좋을 것 같고, 그리고 곳곳에 묻어나오는, 게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딱 봐도 이 가게 사장이 게이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그런, ‘어머 끼스러워’ 막 이런 아이템들과 취향들? (일동 웃음) 그런 것들도 전 좋은 것 같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객들과의 접점보다, 지금은 우선 매장에서 직원들과의 접점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Glow Kitchen 때는 직원이 몇 명이었지만, 지금은 직원이 60명인데, 60명 중에 30명은 일반이고 30명은 게이고, 5:5의 비율로 일반과 게이가 같이 있거든요.

터울 : Glow Kitchen 때보다 게이 직원이 더 늘어났군요. 

이든 : 네, 그래서 다들 게이 처음 봤다는 직원들이 여기 들어와서, 게이들과 함께 너무 친하게 잘 어울리면서, 같이 융화되어서 매장 운영하는 것에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것, 그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터울 : 성소수자와 이성애자가 어떻게 같이 갈 수 있을까에 대한 모범 같은 느낌이 좀 있고, 게이스북에서 괜찮다는 셀럽들이 다 여기서 일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웃음) 

제니 : 그럼 채용하실 때 딱히 이쪽 사람을 채용한다든지 그런 건 없으신가요?

이든 : 전혀 그런 건 없는데, 지원하는 게이의 비율이 우선 많죠. 이왕이면 뭔가 뽑고 싶을 만한 사람이 지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경우들이 있고. 사람 구하는 게 원래 힘들어요.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는 게 힘든데, 아무래도 이쪽 분들은 그냥 생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다른 곳에서 경력이 있어도 여기에서 막내로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하시는 이쪽 분들이, 훌륭한 재원들이 많이 지원해주시더라고요. 왜냐하면 여기서는 뭔가 당당하게, 외롭지 않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 직장에서처럼 자기를 숨기고 일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게 있다고 해서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니 : 그럼 새롭게 들어오시는 일반분들 같은 경우에 직원들 중 상당수가 성소수자란 걸 모르는 분들도 있나요?

이든 : 오자마자 저희는 커밍아웃부터 합니다. 대표와 부대표가 다 게이라서, 직원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은데 괜찮냐고 물을 때, 거기서 싫다고 하면 그냥 바로 바이바이고, 자기가 그런 데 편견 없다고 하면 그 때부터 이야기가 되는 거죠.

제니 : 아까 하나의 회사라 묘사를 해주셨는데, 그러면 매장이 현재 5개가 있잖아요. 이 5개 매장에 계신 분들이 유기적으로 같이 움직이시는 건가요?

이든 : 네, 많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근무를 여기서 서다가 다른 데로 가는 경우도 있고. 

7. 익선동 야간개장

터울 : 익선동 야간개장 얘기로 넘어갈게요. 성황리에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일동 박수) 뻔한 얘기지만 기획 경위를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무슨 '끼'로 하셨는지, (웃음) 

이든 : 그 때 제가 그렇게 얘기했었다면서요. 그런 끼가 있었나보죠. (일동 웃음) 제 특성이, 행동에 옮기는 시간이 되게 주저함이 없이 엄청 짧아요. 그러니까 특정 판단이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면 저는 바로 하거든요. 그런데 행동하기 전에 우선 입방정부터 떨어서, 저희 GLOW SEOUL은 말한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 약간 이런 게 있어요. (웃음) 

터울 : 저도 기획단에 있긴 했는데, 저는 좀 신기했었어요. 왜냐하면 내부적으로 디자인 인력도 있고 홍보 인력도 있고, 비교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PRIVATE BEACH 때와 유사한 멤버쉽으로 일이 굴러가는 게 신기했었거든요. 

이든 : 저도 그렇고, 예전에 PRIVATE BEACH 때는 Jay Lee도 그렇고, 회사 생활을 하잖아요. 회사에서 둘다 기획 관련된 일을 하니까, 그게 너무 자연스러운 거죠. 행사가 있으면 딱 멤버 구성을, 홍보 누구누구 해서 이렇게 나누고, 물론 그게 단점일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몇 명 있지도 않은데 너무 업무를 전문적으로 나누려고 하다보니까. 어쨌든 경험이 있다보니까, 프로페셔널한 부분에서 경험했던 걸 그냥 가져와서 시스템을 적용해서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터울 : 많이들 궁금해하고, 어떤 사람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 GLOW SEOUL이랑 익선다다, 식물, 이렇게 3개의 업체에서 같이 하신 행사였잖아요. 

이든 : 네. 

터울 : 공간을 대여해주시기로 한 건데, 이 행사의 대의를 알고 참여해주신 거잖아요. GLOW SEOUL 이외의 업체들이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는지, 진행상황에서 어떤 수준의 구체적인 연대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이든 : 제가 이런 행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는 먼저 생각을 했었어요. 익선동에서 이반들을 초청해서 그들과 함께 화합하면서 종로라는 거리의 역사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문화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상상은 했었는데, 먼저 익선다다 사장님들과 술마시다가 그런 입방정을 떨었죠. 그랬더니 너무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자기들도 하겠다고, 그렇게 선뜻 해주셨어요. 제가 설득하지도 않았는데. 그 다음부턴 본인들이 오히려 '사장님 언제하냐'고, 그래서 나 바빠서 못한다고, (웃음) 원래는 작년 12월에 하려고 했는데 미루다 미루다, 만들지도 않은 행사인데 취지를 듣고 이쪽 분들도 그런 걸 하면 함께 하겠다는 분들이 이미 많이 생겼던 상황이어서, 더이상 미루면 내가 '썅년'이 되겠구나 싶어가지고, (웃음)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죠.

터울 : 그럼 되게 일찍부터 행사의 취지를 알고 같이 하기로 하셨던 거군요.

이든 : 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전부터 있었어요. 익선동에 일반 상권이 들어오면서 이쪽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익선동에서 뭔가를 시작한다면 다른 차별점을 하나라도 줘야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터울 : 네, 그런 위안 아닌 위안이 됐던 행사이긴 했었어요. 그런 아름다운 면도 있었던 반면에, 상인회 단톡방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는데, "동성애자 같은 사람들"이 막 모여있다고, (웃음) 일부 익선동 상인들로부터 컴플레인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이든 : 그런 분이 두 분 계셨어요. 뭐라고 한 분이. 그런데 상인회가 기본적으로 자기들끼리도 안 뭉치니까 집단 행동도 없었고, 그냥 뒷말이 되게 많았다는 얘기를 친한 사람들이 얘기는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한 상황인데, 회사도 그렇고 이 자리를 빌어서 얘기를 하고 싶었던 얘기인데, 커밍아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나이쯤 되는데 결혼 안하고 있잖아요. 하고 다니는 것도 뭔가 남들이랑 다르잖아요. 그러면 다 눈치 까요. 진짜. (일동 웃음) 그런데 그게 내가 그걸 숨기려고 하면 약점이 되어서 사람들이 그걸 파고들어요. 그걸 내가 치고 나가서 당당하게 얘기하잖아요? 그럼 뭐라고 못해요. 

그러니까 커밍아웃과 아우팅은 다른 거예요. 같은 상황에서 내가 이걸 아우팅이 당해버리면 수동적으로 당하는 입장이 되는데, 커밍아웃을 하면 내가 먼저 이슈를 선점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 사안에 대해 대처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그 다음에 내가 그 사안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도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이 밝혀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두려움을 갖고 있는, 아우팅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제 주변에 보면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가장 보수적인 법조계에서, 판사인데도 당당하게 커밍아웃하고 너무 법원 잘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많이 달라졌어요. 판사가 '나 게이야' 그랬는데 어쩔 거예요. 부장판사님이 불러서 '이상한 데만 가지 말라'고, '사진만 찍히지 말라'고, (웃음)

터울 : 가실 것 같은데, (일동 웃음) 간다에 한 표, (웃음) 

이든 : 그 이상한 데의 정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사람들은 너는 개방적인 기업이니까 커밍아웃이 가능하다고 얘기하는데, 저희 회사 대표도 엄청 독실한 크리스챤이라 주말마다 직원들 데리고 기도회 열고 그러는 데거든요. 저 역시 쉬운 건 아닌데, 내가 이렇다는데 어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행사도 했는데 어쩔 거예요. 그런 얘기하는 사람 있으면 저는 그 사장님한테도, 당신 들어온지 몇 년 됐냐고, 익선동 가게 연지 2년 됐을 텐데, 게이들이 여기에 있은지는 몇십 년 됐고, 익선동에 대해서 뭘 안다고 당신이 그러냐고, 그렇게 얘기하면 오히려 아무 말 못해요. 

터울 : 어떤 의미에선 커밍아웃이 가장 안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회 관계망을 만들 때. 그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요. 

이든 : 아직은 우리나라가 동성애로 처벌하는 건 군형법밖에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군인이 아닌 이상, 군인의 커밍아웃은 저는 말리고 싶어요. (웃음) 그리고 물론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커밍아웃이 쉬운 건 아니에요. 저도 어려운 일도 많이 당했고, 인간관계가 끊긴 친구도 있고, 그 사회에서 뒷말도 많이 당하고 그런 적도 있는데, 이건 대학교 때 겪은 일화예요. 대학교 1학년 때는 이태원만 좀 다니고, 컴투게더 활동도 안할 때였는데, 제가 그 때 검도부 활동을 했었거든요. 그랬는데 검도부에서 되게 친한 친구랑, 제 하숙방에 걔가 매일 놀러왔었어요. 걔가 제 컴퓨터를 보다가, 이상한 '가마우지' 폴더를 본 거지. (일동 웃음) 그리고 나서 부원들에게, 친했던 친구인데 나한테는 얘기 안하고 쟤 이상한 것 같다고 얘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 때는 저는 검도부를 나왔어요, 그걸 못 견디고. 되게 바보같았던 것 같은데, 그런데 제가 컴투게더를 하고 나서, 냅다 까라고 까면 아무도 뭐라고 못하는구나, 그래서 그 때부터는 제 주위의 모든 동료들한테 얘기하고, 학과도 그렇고 다 얘기를 하고 다니니까, 그 때부터는 사람들이 오히려, 제가 아까 말했던 커밍아웃이 더 안전하다는 게 아우팅보다는 안전해요, 적어도. 

터울 : 저도 요새 강의하면 한 번에 한 50명씩 100명씩 커밍아웃하거든요. (웃음) 

▲ '보갈', 익선동 야간개장 '종로이반전' 전시물 중.

8. '보갈' 논쟁과 지역에서의 소수자 주권

터울 : 익선동 야간개장에서 '보갈'논쟁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웃음) 제가 듣기로는 그 논쟁을 겪으면서 이 행사를 왜 해야 하는지 새삼 깨달으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게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해요.

이든 : 사과문에는 그 단어 사용을 제가 한 거라고 했는데, 사실은 같이 정한 거였죠. (웃음) 팀원 중에 한 명이 그런 일을 했다는 식의, 보통 정치인들이 내놓는 해법이 너무 싫어서, 저는 이런 일이 있으면 무조건 제가 했다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어요. 우선 내가 했다 그러는 게 낫겠다, 책임을 내가 지는 방식으로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두번째로는 이게 왜? 그러니까 내가 안했지만 그럼 나라면 안했을 행동인가를 생각해보면 아닌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될 줄은 사실 알았어요, '보갈'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종로라는 지역이 갖고 있는 역사성이 게이들에게 크잖아요. 이 행사를 했던 취지가 사라져가는 종로의 게이 문화에 대한 경고, 이런 건 좀 웃긴 것 같아요. 지구 온난화도 아니고. 그리고 이 행사를 통해서 그 사라짐을 막을 수 있느냐, 사실 그것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행사 한번 했다고 해서 그런 추세가 없어지진 않겠죠. 그런데 적어도 기억은 해야 되지 않나, 우리가 더 오랜 세월이 지나서 종로에 게이들이 있었던 장소라는 게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걸 겪었던 세대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된다고 할지라도 이 곳에 예전에는 그런 게 있었다는 역사적인 기록이라도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령 서울시 도시재생계획 이런 걸, 익선동 관련해서 이슈가 워낙 첨예하기 때문에 저도 서울시랑 소통하면서 관심있게 보고 있거든요. 종로구청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자주 나오시거든요, 이 지역에 관심이 많으셔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런다고 했을 때 그 분들이 오면 국악 활성화의 거리, 종로 일대의 돈화문 앞쪽에 있는 11개의 마을에 각자 특성의 이름을 부여해놨어요. 하다못해 아구찜 거리도 있어요. 그렇게 역사가 20-30년 됐어도 거기에 역사성을 부여해서 그걸 특성화시켜서 보존하기 위해 지원하고, 기록에도 남기고, 행정구역상 관광의 코스로 개발한다거나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거기에 게이는 당연히 없죠.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행정기관도 문제고, 행정기관 입장에서는 아구찜은 아구찜이라고 간판을 걸어놓고 영업을 하는데, 게이업소는 게이업소라는 표지가 없는 거예요. 그냥 일반주점일 뿐이고, 게이라는 사실이 어떤 공문서 상에 남아있는 게 없는 거죠. 그래서 이걸 어떻게 남기는 방법이 없을까, 여기가 그런 공간이었다는 것을. 이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게로수길은 보존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게로수길로 간 것도 이유가 있거든. 여기가 서울에서 이만큼 상가 임대료가 싼 지역가 없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싼 데로, 사실 게이들이나 되니까 거기까지 찾아가지, 아니면 누가 가겠어-라는 곳까지 가서 매장들이 줄이어 생긴 건데, 그게 없어지면 아쉬워요. 그래서 이쪽 상권을 유지하기 위한 뭔가 그 다음의 행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약간 오해하시는 게, 이쪽 사장님들이 초반에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익선동 야간개장을 한다니까, 행사의 취지에 대해 잘 모르시는 상태에서, 일반들한테 돈 벌었으면 됐지, 이반들 상대로까지 행사에서 돈벌려고 하냐는 오해도 있고, 또 반대로는 이런 좋은 의미의 행사가 있었으면 우리랑 같이 하지 왜 혼자 했냐-라는 의견, 이렇게 두 가지 다른 의견을 주셨는데요. 첫번째는 수익사업이 아니었다는 것, 문화행사였기 때문에 입장료도 없었고 엄청난 적자를 볼 걸 예상하면서 기부 차원에서 했던 행사였다는 게 첫번째였고, 두번째도 같은 이유인데, 그렇기 때문에 제안을 못한 거예요. 그러니까 주말에 영업하셔야 되는데, 이런 행사를 하니까 전시 공간을 대여해 달라든가 이런 걸 얘기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말씀을 못 드린 건데, 

만약에 이후에 야간개장이 열린다면, 문화공간을 대여해주는 건 익선동에서 담당하고, 여기서 문화컨텐츠를 즐기고 나서 상업공간으로서 즐겁게 먹고 마시는, 다같이 어울리는 축제로서 그날 종로의 매상을 흡족히 올려드리는, 요새 사장님들 많이 외롭고 힘드시고, 경기가 예전같지 않아서 영업하시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적어도 그날 하루는 좀 종로의 축제가 될 수 있는 걸로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터울 : 아주 가벼운 질문인데, 야간개장을 하시면서 어떤 공간이나 어떤 순간이 제일 좋았고 기억에 남으셨는지 궁금해요.

이든 : 오신 분들은 엄청 짜증나셨겠지만, 저희가 입장권을 나눠준 열두달이란 공간부터 포장마차 있는 데까지 줄이 200미터 가까이 서 있을 때 사실 기분은 좋았어요. (웃음) 기다리는 사람은 짜증났겠지만. 많이 오셔서 좋았다는 것도 물론 너무 감사했고, 두 번째는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익선동에 있는 일반 분들이 되게 놀라는 거예요. '이게 뭐야?' 그러면서. 

제니 : 맞아요. 엄청 물어보던데요. 

이든 : 약간 어떻게 보면 위압감? '쟤들 뭐야 도대체? 남자들이?' 약간 이런 느낌. 그래서 그렇게 물어보시는 분도 있었어요. 무슨 여자 아이돌 팬 사인회 하냐고. 그런데 똑같은 감정을 그날 왔던 게이들도 얘기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초딩스러운 마인드이긴 하지만, 우리 이만큼 세 있다, 그러니까 요새는 주말에 종로에 나와도, 밤 1-2시까지도 포장마차에 일반들이 너무 앉아있어서 이쪽 사람들이 못 앉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종로 포차도 못가겠다 이런 말이 나오고, 거리에 일반들이 너무 가득차서. 사실 예전에는 밤에 나오면 아무도 없었고 포차 이모들 다 이쪽 사람들이 먹여 살린 건데, 그렇게 이쪽 사람들만 있었던 사랑방 느낌으로 우리만의 공간이었던 곳이 지금은 다른 분들에게 빼앗긴 셈이잖아요. 사실 그런데 공용 거리는 정해진 주인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독점할 수는 없지만, 빼앗긴 들에 봄이 온 느낌? (웃음) 약간 그런 느낌처럼 뭔가 되게 우리가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된 듯한 느낌, 적어도 종로3가에서는 그런 느낌을 한번쯤은 느껴봐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기분이 좀 좋았어요. 

터울 : 이후에 2회 개최를 염두에 두고 계신 건가요?

이든 : 할 수 있다면, (웃음) 제가 몸이 하나라, 제가 빨리 회사를 그만두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터울 : 익선동에서 가게를 8월을 끝으로 그만 내신다고 했을 때, 익선동에서 야간개장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이나 어떤 것들을, 이 공간에서 어떤 걸 더 하고 싶으신지에 대한 계획이 있을 것 같거든요. 

이든 : 저희가 익선다다랑 얘기했던 게, 야간개장을 하고 다음에 주간개장으로 노인들, 실버들을 초청하는 문화 행사를 해보자 해서, 연세 있으신 분들 새벽에는 안 오실 테니까, (웃음) 그래서 그런 걸 해보자, 이렇게 얘기는 했는데,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게이는 제가 잘 아는 분야인데, 이건 제가 잘 모르는 분야니까요. 어르신들을 상대로 뭘 어떻게 해야 될지, (웃음) 그런 것도 있고,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가게를 새로 오픈하고 영업하는 방향으로의 새로운 시도도 많이 있겠지만, 그게 아닌 다른 쪽의 문화사업이나 이런 것들, 새로 오픈하는 매장도 되게 독특한 컨셉으로 오픈할 거라, 퀴어 예술가들과 접목하는 프로젝트를 많이 시도해보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 심플 도쿄, 2018.6.6. @익선동

9.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싼 현행 상가임대차 제도의 한계

터울 : 그럼 익선동에 언제까지 계실 예정인지 궁금하거든요. (웃음) 

이든 : 저는 여기에 건물이 없어요. 다 임대니까, 다들 5년짜리 임대이기 때문에, 4년 남았습니다. (웃음) 건물주가 월세를 얼마나 올리냐에 따라서, 저는 그래도 익선동에 초기에 들어온 축이어서, 평당 10만원의 임대료를 주고 있어요. 평당 10만원이면 되게 저렴한 임대료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임대료를 5배까지도 올릴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되면 못 버틸 수 있겠죠.

터울 : 그것과 관련된 질문인데, 게이업소의 주기가 짧은 것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임대차로 돌아가는 업소들이 오래 장사하기 너무 힘든 제도적 조건이 있고, 익선동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할 때 그게 원 거주민에게는 해당되는 얘기지만, 게이업소들 중에 권리금을 더 많이 받고 나가는 경우도 있는 거잖아요. 이런 걸 보면 치고 빠지는  식으로 뭔가 입주할 때보다 권리금을 더 받고 나가는 게, 자기가 그 장소에서 키워온 상업적 가치에 대한 보상처럼 되어있는 게 관행이 되어있고, 이건 제도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서 GLOW SEOUL 측도 말씀하셨다시피 세입자로 있으신 거기 떄문에 이런 제도적 문제에 대해 아쉬움이 있으실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제약 속에서도 지역의 주축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은 어떤 양가적인 욕망이 있으실 것 같아요. 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든 :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는, 저는 되게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옳든 그르든 막을 수 있느냐 생각했을 때, 조금 속도를 늦출 수는 있더라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사유 재산을 인정하는 한 막을 수는 없다고 봐요. 왜냐하면 지금 익선동도 원 주민은 이제 거의 안남았고, 대부분 건물을 파셨어요. 원래 익선동이 부자들이 있던 동네가 아니잖아요. 건물값이 일정 정도 올랐을 때 이걸 빨리 현금화시키는 게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건물을 파셨고, 이제는 전혀 다른 분들이 건물을 소유하고 계시죠. 그 분들이 보통 여기 익선동에 건물을 샀을 때, 현재는 평당 매매가가 5천만원이거든요. 그러면 40평짜리 한옥이 20억인 거예요. 그러면 20억을 사실 때 20억 전부를 현금 주고 사는 사람은 없거든요. 은행에서 적어도 십몇 억을 융자를 받고 산 거예요. 그럼 은행에 매달 내야 되는 이자가, 가령 20억을 통째로 융자했다고 봤을 때는, 아주 저렴하게 4% 금리로 받았다고 치더라도 매달 내야 되는 이자가 700만원인 거예요. 임대료를 당연히 많이 받고 싶은 건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이 고리에서 누가 잘못했냐는 건, 어찌보면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어요. 동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럼 초반에 건물을 갖고 계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평생 모은 재산이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갑자기 운좋게 그래도 여기가 떠서 집 팔아서 남은 여생 그래도 편하게 아파트에 사시겠다는데 그걸 막을 수 있나? 아니면 그래서 그 분들에게 건물을 사신 사람이 잘못했나? 아니면 융자해준 은행이 잘못했나? 그럼 은행이 이자를 안 받아야 되나? 이 모든 고리에서 답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해법은 아닌데, 저희 다른 프로젝트가, 익선동과 비슷한 상권을 다른 곳에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 지역에서 만약 시도를 하면 그냥 모든 건물을 매입해서 시작할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건물주가 되는 게 유일한 해법인 것 같아요. 

매장을 할 때 항상 고민되는 게, 너무 재밌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항상 돈이 안될 것 같은 거예요. 너무 재밌는 아이디어를 상업적으로도 가능하게 하려면 재미있는 요소가 계속 빠져야 해요. 특성화가 안되고 보편적으로 변해야 되고, 많은 테이블을 놓아야 해고, 비싼 단가를 받아야지만 상업적으로 되기 때문에, 그냥 돈 안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로서 사람들이 와서 즐거워할 수 있는 공간은 사실 제가 임대로 운영하는 이상은 구현하기가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젠트리피케이션이 익선동에서는 유독 원 거주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사실은 1차로 익선동에 입점해서 독특한 매장을 처음에 키워냈던 사람들도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이자 당사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지금은 아직 시야에 안 들어온 거예요. 아직 스타벅스도 안 들어왔고 맥도날드도 안 들어왔고 백종원 식당도 안 들어왔고, 프랜차이즈가 안 들어와있으니까. 

지금은 우선 이 대립관계가 여기 살던 분들과 익선동에 첫 상가로 들어온 사람들만의 것으로 보이지만, 전 본격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낙후된 지역에 저렴한 임대료의 장점을 활용해 창의적이고 독특한 컨셉의 매장을 오픈했던 최초 입주한 상인들이 떠나는 거죠. 이제부터 하나둘씩, 원래 처음 입점했던 매장들은 나가고, 권리금을 받고 새로운 매장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텐데, 아니면 반대로 5년이 차면 건물주가 임대 계약을 더 연장하지 않고 다른 수익성이 높은, 엄청난 임대료를 줄 수 있는 대기업 업체를 집어넣을 수도 있겠죠, 익선동에서도. 그렇게 되면 진짜 그 때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본격적인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익선동이 지금은 아무튼 그래도, 어떻게 보면 촌스러운 매장도 많거든요. 요즘 감각 치고는. 그런데도 그냥 다들 보시면 다들 소상공인이에요. 

지금도 벌써, 정말 익선동이랑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왜 여기서 이런 장사를 하시지?-라는 상업 시설들이 몇 개가 들어왔는데, 보니까 크게 다른 데서 장사하시던 분들이 몇 억씩 권리금을 주고 기존 매장들 내보내고는 입점해서 영업을 시작하셨더라고요. 생뚱맞게 예전부터 영업하던 해물탕집 이런 게 남아있는 게 있었거든요. 저는 그런 게 있어서 좋았는데, 그런 데를 내보내고 들어와서 다른 잡화류를 파시고 그러던데, 약간 걱정돼요. 이 상권의 분위기가 얼마나 갈지. 그 때가 되면 저도 못 버티겠죠, 아마도. 제가 임대료를 얼마나 줄 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익선동이 더이상 익선동이 아니게 되면, 제가 여기서 영업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터울 : 젠트리피케이션을 공부하다보니까, 이게 주체의 문제라기보다 정말 제도의 문제더라고요. 한국에서 토지나 상가의 소유권이 용익권보다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해있고, 사실 임대차 최대기한인 5년도 2015년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고 나서 그 때부터 적용된 것이잖아요. 그 전에는 얼마든지 쫓아내도 상관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제도들이 좀 세입자들에게 유리할 수 있는, 세입자들이 창출하는 문화적·경제적 가치가 소유권보다 조금 더 중요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있지 않고는 이 문제는 풀리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든 : 지금 국회에서 그 임대차 연한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상정도 못하고 계류중인데, 안될 거예요 아마. 10년은 그럼 정당하냐고 했을 때, 저도 임대인이지만, 그럼 임대인은 항상 선량하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재산의 처분권을 10년간 묶어둔다는 게 쉽지가 않을 거예요. 아마도 엄청 찬반 논쟁이 심할 거고. 그런데 저도 궁금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저한테도 이게 큰 화두여서, 나름 방법에 대해 많이 모색하고 있거든요. 

제니 : 얼마전에 서촌의 궁중족발에서 세입자와 건물주 사이에 폭행이 발생한 적이 있잖아요. 사실상 제도의 문제라 보는 게 맞는데, 제도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우선은 대부분이 경제학쪽 기반인 분들이 많아서, 제도에 대한 비판이 학계에서 당장 우위를 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하나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방금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건 정말 현실의 문제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까 말씀하셨듯이 건물주가 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나마 대안으로서 얘기되고 있는 지역 자산화라든지 이런 것도 결국 지역에 있는 상인들이 돈을 모아서 건물을 사는 방식을 의미하는 거거든요. 그게 결국은 건물주가 되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 제도 안에서는 한계점이 분명한 것 같아요.

터울 :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으로 보장된 5년을 피하려고 전전세를 준다든지, 상가임대차에 또 임대차를 준다든지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그리고 거기에 나름 니즈가 있기도 한 거죠. 나는 2년만 장사하고 빠지겠다는 경우도 있어서, 이게 진짜 상업 관행과 제도 사이에 치밀한 연구가 있지 않고는 해결이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지금 현장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계신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넓다고 할 수 없는 거고, 그런 상황이 있는 것 같아요. 

이든 : 이 문제는 참 정답이 없어요.

▲ 살라댕 방콕 ©GLOW SEOUL

제니 : 그나마 서울시에서는 지구단위계획이라든지 이런 걸 통해서 프랜차이즈를 제한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잖아요. 그런 지구단위계획이 이 지역의 경우는 한옥에 초점이 맞춰져있는데, 한옥의 가치가 무엇인지 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든 : 그렇게 따지면 저희 가게도, 어디 경제신문에선가 다뤄진 적이 있어요. 한옥마을에 똠얌꿍이 웬 말이냐. (웃음) 익선동 왔더니 살라댕 방콕이 있더라, 그럼 한옥에선 전통차랑 전만 팔아야 되나? 

제니 : 네, 저도 그게 항상 고민인데, 또 그런 생각들을 가진 분들이 되게 많으세요, 도시 쪽을 연구하는 분들 중에서. 그런데 그럼 지구단위계획이 여기 들어왔는데, 그럼 그들이 생각하는 한옥은 도대체 얼마나 지켜졌으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든 : 그런 얘기할 때마다 항상 답답한 게, 여기를 그럼 한옥마을로서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동안 보존해왔으면 모르겠는데, 아무 것도 안하고 방치해서 다 허물어져가고 뼈대도 안남고 썩은 상태에서 재건축도 못하게 만들어놓고, 그리고 나서 이제 와서 개조해서 만들었더니 아름다운 한옥을 망쳤다는 거예요. 정말 익선동에서 공사해본 사람들은 알 텐데, 이 집이 그동안 어떻게 서있었는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폐가로 남겨진 집도 많았었어요. 사람이 안 사는 집이 되게 많았었고.

터울 : 애초에 싸게 공급할 목적으로 지었던 한옥단지였죠.

제니 : 원자재도 별로 안좋았고, 

이든 : 집주인이 사는 경우가 아니고, 여기에 거주를 더이상 할 수 없어지니까, 세를 주시고 다른 지역에 나가서 사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방치된 상태였고 쪽방촌으로 운영되는 상황이었죠.

터울 : 이 얘기를 하다보면 참 씁쓸해지는 것 같아요. 진짜 답이 없는 문제여서, 뭔가 너무 거대한 것과 싸워야 하고, 

이든 : 싸울 대상도, 

터울 : 불분명하고, 

이든 : 딱 대상이 정해져있는 게 아니잖아요. 도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젠트리피케이션 일어나서 다 떠나고 임대료 폭등하면, 그 임대료 감당 못하고 심지어 프랜차이즈마저도 떠나고 나면, 사람들은 안 오게 되고, 그러면 건물주가 높은 임대료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공실이 늘어나고, 그럼 상권이 초토화되겠죠. 압구정 로데오거리나, 종각역 상권이나, 이대 앞 같이 되겠죠. 그러면 그때서야 건물이 똥값 돼서, 이대 앞 같은 경우는 상가 30평짜리 월세가 100만원 막 이러던데, 그럼 이제 건물주도 망하겠죠. 그게 자연에서 1차 포식자가 늘어나면 2차 포식자가 늘어나고, 2차 포식자가 너무 늘어나면 1차 포식자가 다시 줄어들고 이걸 계속 반복하듯이, 아마도 10년 뒤에는 그런 거리에서 다시 소상공인들이 들어가서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채울 수도 있다고 봐요.

터울 : 헌데 최근에 익선동 상가임대 관련해서 실제로 그런 변화의 조짐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든 : 네, 요새 전문업자들이 익선동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특정 집단이 매물을 사들이고, 가격 장난을 치면서, 시세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터울 : 기존에 있던 업체들이 하는 게 아닌 거죠?

이든 : 네. 지금은 여기 원 주민분들이 부동산을 계속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30%도 안되는데, 작년 초까지만 해도 거의 대부분이 원 주민 소유였고, 작년 중반까지만 해도 60-70%가 원 주민 소유였는데, 그 사이에 다 부동산들을 파셨고, 그 부동산을 산 사람이 이 곳의 가게 주인들도 아니에요. 

터울 : 완전 다른 사람들이군요.

이든 : 네, 그게 특정 집단이 그렇게 부동산을 사들인 건데, 그러고 나서 상가들 중에 엄청난 권리금이 매겨진 매물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15평짜리 가게가 권리금이 1억 5천, 평당 권리금이 천만원을 호가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심지어 맨땅, 나대지가 있어요. 나대지인데 권리금을 7천만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나대지를 임대하는 것도 너무 웃긴데, 이걸 임대해서 뭐하라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세입자가 건물 지어서 쓰면 된대요. 그런데 권리금을 7천을 달라는 거죠. 

이런 과정들을 보면서, 익선동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말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진짜 젠트리피케이션은 사실 이제 시작인 거예요. 최초로 익선동을 익선동 답게 핫하게 만들었던, 재미있고 특색있는 가게들이 아마도 곧 못 버틸 거고, 내년이면 임대 3년차를 맞거든요. 그러면 남은 잔여 임대기간을 채우지 않고 나가겠죠. 지금 상황에서 저희 매장들도 평당 임대료가 10만원 선인데, 아마도 재계약을 하게 되면 적어도 3-4배가 올릴 거예요. 그러면 재계약을 하기가 힘들겠죠.

▲ The Summer ©GLOW SEOUL

터울 : 그럼 5년 이후로는 못 버티고 나가는 게 기정사실이겠군요.

이든 : 그리고 보통 5년까지 안 가거든요. 그 전에 나가야지 자기가 인테리어한 비용이라도 권리금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3년이 보통 고비예요. 3년 즈음에 아마도 상가들이 나가게 될 거고, 그러면 익선동 분위기가 많이 바뀌겠죠.

이게 악순환인데, 권리금을 많이 주고 들어오면 가게에 투자를 못해요. 왜냐하면 이 가게에서 뽑을 수 있는 수익은 뻔한데, 권리금을 10억을 줬다고 해서 10억을 팔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30평짜리 매장에서 뭘 팔더라도, 무슨 금괴를 팔지 않는 한, 거기서 밥을 팔면 테이블을 아무리 빡빡하게 앉혀도 40명이 한계일 거고, 그 40명을 하루종일 돌려도 나올 수 있는 매출은 정해져있어요. 그런데 그걸 권리금을 3억을 주고 들어가면, 저희같은 경우에는 권리금도 없었고 월세도 엄청 쌌고, 물론 낡은 한옥을 개조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긴 했지만 지금의 이 권리금에 비할 바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집 예쁘게 꾸미는 데 돈을 아낌없이 투자했어요. 저 들어올 때 보증금이 3천만원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권리금 3억 주고 들어온 사람들은, 이미 들어간 돈이 3억인 거예요. 그리고 3년 지나 낡은 가게인데, 거기에 돈을 또 투자해서 가게를 다듬는 건 불가능하니까,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걸 할 거예요. 그런데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걸 하면 돈이 안되겠죠. 그러면 본인이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못 뽑을 거고, 그게 상권에 소문이 나면, 거기 권리금이 실제로 얼마까지 올라갔는데 실제로 개털된다더라-라는 게 소문이 나면, 경리단길이 똑같은 일을 겪었거든요. 경리단길이 무너지기 전에 보증금 시세가 무너졌어요. 경리단길의 정말 작은 가게들도 보증금이 4-5억까지 올라갔었는데, 이게 벽돌 돌려막기고 폭탄 돌리기인 거거든요. 이 권리금이 언제 터질지 예의주시하면서 보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리고 또 문제가 뭐가 있냐면, 지금 있는 상인들이 권리금을 벌고 나가는 게 1차인데, 벌써 2차 단계가 진행되고 있어요. 이미 권리금을 받고 들어온 업체가 애초에 권리금 상승만을 위해 입주하는 경우인 거예요. 가게를 보면 알거든요. 장사를 하는 게 목적인 게 아니고, 자기는 권리금을 2억을 주고 들어왔는데, 몇달 있다가 1억을 더 받고 3억을 더 받는 권리금 차익을 노리기 위해 그 가게를 인수한 경우들이 보여요. 그렇게 되면 정말 막장이거든요. 그러면 상권의 핵심 이런 건 중요하지 않게 되고, 심지어 가게 임대를 얻자마다 권리금을 올려서 되파는 경우도 있어요. 이렇게 되면 상권이 다 망가지는 거죠. 

터울 :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이든 : 더섬머를 만드느라고, 저는 가게 만들 때는 그 가게에만 집중하고, 다른 것에 대한 신경을 다 끊는데, 이거 끝나고 나니까 다른 사업 구상이 있잖아요.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주변 상인이나 관련 업자와 얘기하다보니까, 정말 내가 알던 익선동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제가 이것에 집중하는 2달 사이에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거예요. 정말 놀랍더라고요. 

뭐 그게 특정 집단에게 원인이 있다기보다, 여러 사람들의 욕망들이 얽혀서 그렇게 된 거겠죠. 여기서 범법을 저지른 사람도 없는 거고.

터울 :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지, 그래서 동네에 예쁜 가게가 생겨나는 것 자체가 두렵게 되는 이 말도 안되는 상태가 어떻게 제도적으로 해결이 되어야 할지,

이든 : 요새 거기 핫하더라-는 소리를 듣는 게,

터울 : 그게 나쁜 신호처럼 받아들여지는 게 '젠트리피케이션'의 말에 축약되어있는 이미지인 셈이죠. 

▲ 프렌즈, 2017.11.13. @종로3가

 

10. 업소이자 상업자본으로서의 커밍아웃의 과제

터울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역에서 다수의 업소를 거느린 상업자본으로서 커밍아웃을 하신 사례는, 홍석천씨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특수성이 있고, 비연예인으로서 (웃음) 게이커뮤니티에서는 최초의 느낌이 있거든요. 지역에서 어떤 업소들의 이름으로, 여기는 성소수자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업소들이라고 공표하고, 그 명의로 한번 행사도 열었던 경험이, 한국의 게이커뮤니티에서는 거의 처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커밍아웃이라는 것이 개인에게도 아직 힘든 과제인데 사업체이자 업소로서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더 큰 의미이자 부담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이 업소로서의 커밍아웃을 둘러싼 딜레마가 사실은 익선동에서 게이들이 쫓겨나고 있다는 여론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아주 쉬운 대답은, 게이 업소들이 모두 커밍아웃을 하면 되고, 거기에 드나드는 사람이 모두 커밍아웃을 하면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나름 전위에 서 계신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이든 : 저는 숨기지 않는 것일 뿐이지, 적극적으로 커밍아웃을 공표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따지면 야간개장 같은 것도 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숨기지 않는다는 개념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그냥 하는 게 있는 거예요. 내가 게이로서 할 수 있고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그냥 해나가는 거지, 그걸 일부러 뭔가 더 나서서 드러내놓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상인들 찾아다니면서 설득한 적도 없고. 대신 그 부분에 대해서 눈치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게로수길을 보호하려면, 지금 벌써 거기에 몇 가게들이 팔려서 일반 가게가 들어왔어요, 이미. 거기에서 일반 가게들이 영업하면 안되냐,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거리의 특수성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거리가 남아있기를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그 거리에 레인보우 깃발을 쫙 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뒤로. 그 거리에 일반들이 갔을 때 이거 뭐야? 그러면 여기엔 성소수자 업소가 많아서 그런 특성을 갖는 거리라고, 그게 일반 대중들에게 인식되면, 아마도 일반 상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그 지역의 임대를 그냥 얻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그건 뭐랑 똑같냐면, 아구찜 골목인데 거기 중간에 난 우아하게 여기서 파스타 팔아야지-하고 들어오기가 힘들잖아요. 거긴 아구찜 골목이니까 아구찜 집만 들어오게 돼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골목이 특정하게 아구찜을 찾는 사람들이 가는 거리라고 인식되는 게 중요해요. 

헌데 게로수길의 경우 그 거리가 그런 거리라는 걸 모르는 거예요. 심지어 들어온 사람도 몰라요. 바로 옆 골목만 해도 떴다는 익선동이 있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임대료가 싸요?-그러거든요. 게로수길의 임대료가 올랐다고는 하는데 이쪽 업소가 감당하기는 어려운 임대료지만 익선동보다는 싼 거예요. 그리고 주인 입장에서도 굳이 이쪽 사람들 임대 안 주고, 자기들도 우아한 일반 레스토랑 같은 걸 주고 싶은 거죠, 소주방 안 하고. 그래서 들어오신 분도 모르고 계약하더라고요. 여기가 게이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인지 뭔지 모르고 계약한 거예요. 그러고 영업하다가 여기 남자들 왜 이렇게 많아요? 하고 나중에 물어보는 거야. 적어도 여기가 게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거리라는 걸 알고서도 결국은 그렇게 된다면 이건 막을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조차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 거리가 적어도 그런 거리라는 걸 오는 사람이 누구나 알 수 있게끔, 저는 지금부터라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이런 반론이 있었어요. 게이업소는 게이업소인지 몰라야 의미가 있지, 프렌즈처럼 레인보우 깃발 달고 영업하는 데는 거의 없거든요. 

터울 : 그렇죠, 거의 없죠.

이든 :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건 혹여라도 내가 그 업소에 들어가는 걸 누가 보더라도, 이게 게이업소라는 걸 몰라야지, 아우팅을 보호할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 들어갔었던 거였는데, 그 안보이는 곳에 들어가놓고도 혹여라도 그런 일이 있을 때 ”나 그냥 친구 만나 술집 왔다”고 할 수 있게끔 특별한 모습이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그동안의 생리였는데, 그래서 그렇게 해서 찾아들어간 곳이 종로3가에서도 피맛길의 구석진 곳이잖아요. 옛날에 양반들 오면 상인들이 피해서 도망가던 곳에 가서 지금 숨어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까지 지금 왔다고, 그럼 어디로 더 도망갈 건데? 그럼 또 이제 어디 더 후미진 뒷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나는 물러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터울 : 80년대 자료를 보면, 게이를 경범죄 같은 걸로 단속을 할 때, 남자처럼 입은 게이들은 별다른 근거가 없어서 단속을 못하니까 여장남자들을 그렇게 잡아갔다고 하더라고요. 가시성이 먼저 드러나는 사람들이 먼저 단속되었던 역사가 있다보니까, 계속 자기를 이성애자로 커버링하는 게 관습처럼 남아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든 : 아까 까르띠에란 친구, CD인 친구 얘기를 하면서, 내가 선배들을 통해서 제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얘기했는데, 그 때 선배가 저한테 해줬던 얘기가 뭐였냐면, ‘너 쟤 옷 저렇게 입고 다니니까 창피하지?’ 그래서 ‘솔직히 좀 같이 다니기 부담스럽다, 친구들 보는데‘라고 했거든요. 그 때 ‘똑같은 이유로 네가 게이라는 걸 만약에 사람들이 알게 됐을 때, 네 친구가 네가 게이인데 자기도 같이 다니면 게이라고 오해받을까봐 너랑 같이 안다니려고 하면 넌 어떤 기분이겠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상대적인 입장은 언제나 동일한 것 같아요. 

터울 : 중요한 말씀이네요. 

이든 :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게, 민주당 정권에서 제도적인 힘을 발휘했거나 그런 거라기보다, 그 이유는 그거라고 하더라고요. 미국에 있는 이쪽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한 10년 전만 해도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찬반을 질문하면 3:7 정도로 반대가 많았는데, 법제화 시점에는 6:4 정도로 찬성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 사이에 그럼 미국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났느냐, 엄청난 게이 유명인사가 나와서 게이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것도 아니고, 게이 정치인이 나와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아닌데, 이건 비단 10년 사이에 일어났던 변화는 아니겠지만, 미국의 게이 문화가 성숙한 단계로 넘어가면서 오래된 커플들이 늘어났고, 오래된 커플들은 동거를 하고 같이 집을 사서 실제 부부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졌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게 됐냐면 동성결혼은 반대하면서도 내 이웃인 존과 카를로스의 결혼을 반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다들 같이 지내보니 너무 좋은 이웃으로 지내왔는데, 이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아직 못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결혼하는데 내가 어떻게 막겠냐는 심정으로, 되게 보수적인 사람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우리나라도 그 단계에 와있지 않나는 생각이 들어요.

터울 : 생각보다 빨리 온 느낌이 있어요. 마치 퀴어문화축제가 어느 순간 시청광장을 점유하고 이런 것들이 좋기도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어떤 결단이나 주체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에 와 있다는 어떤 암시가 있는 것 같아요.

이든 :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저도 좀 부담돼요. 왜냐하면 제가 이런 얘기를 할 때,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이쪽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 얘기가 되게 공격적으로 들리거든요. 뭔가 커밍아웃을 강요하는 듯이 들리고,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는 있어요. 그런데 이런 인터뷰 자리가 있으니까 저도 소신을 이야기하는 건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커밍아웃을 해도 안전하게 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지 우리가 커밍아웃할 수 있지 않냐고 많이들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완전한 성평등은 투쟁해서 쟁취해야 되는 대상이지, 사회에서 다 판깔아주고서는 이제 나오세요-라고 했을 때 우리가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판을 누가 만들어주겠어요, 게이들이 나서지 않는데, 퀴어들이 스스로 나서지 않는데 알아서 사회에서 전부다 커밍아웃해도 안전한 사회로, 차별금지법도 만들어주고, 게이라고 누가 모욕하면 잡아가주고 해서 다 이제 안전해, 그러니 이제 나오세요-라고 해줄 리가 없죠. 우리가 먼저 나서서 차별을 당하더라도 그걸 당하면서 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터울 : 부정할 수 없는 정답을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그 정답으로 다가가는 과정은 참 힘겨울 것이지만. 

이든 : 퀴어문화축제에 제가 이토록 애정을 갖는 건, 그 축제에 참여했던 멤버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그 운동의 미래 비전을 보기 때문이에요. 어떠한 사회운동에서도, 특히 퀴어씬에서는 해보지 못했던 수십만 명의 단체 커밍아웃. 몇 년 전만 가더라도 저희 친구들은 감히 퀴어문화축제에 가는 걸 상상도 못했어요. 그렇게 백주대낮에 자기가 게이라는 걸 다 드러내놓고 가는 행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자기는 뭔가 아는 사람을 볼까봐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명동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퍼레이드를 도는데 명동의 자기 회사 앞을 자기가 지나가는데 너무 울컥해서 눈물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 같은 경우도 몇년 전만 하더라도 제가 뭐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정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친구였거든요. 완전한 사회적인 커밍아웃은 아니더라도, 그걸로서 저는 간접 체험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성경에서 모세가 홍해를 갈랐을 때, 유대인들이 거길 지나간 게 유대 민족이 받은 침례, 세례였다고 하잖아요. 성경학자들이 해석하기로, 그 의식을 그걸 통해서 받은 거라고 하는데, 퀴어들에게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통해서 간접적인 커밍아웃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익선동 골목, 2018.6.6.

11. '핑크머니'의 정의와 앞으로의 계획

터울 : 성소수자 상업문화를 얘기할 때 '핑크머니'란 말을 흔히 쓰는데요, 이든님께서 생각하시는 '핑크머니'란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이든 : '핑크머니'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핑크'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핑크'들이 벌 수 있는 돈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핑크'들이 가지고 있는 돈은 안 많아요. 잠재적 '핑크'들은 많이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들 중에 딱히 재벌집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유력 정치인 아들은 한 명 있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핑크'들이 벌 수 있는 돈은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저는 살다보니까, 퀴어들이 이성애자들이 갖지 못한 너무 다재다능한 능력과 감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게이에 한정해서 얘기하자면, 여성성의 섬세함과 따뜻함이 있으면서도 남성성의 결단력을 같이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핑크머니'를 '핑크'들이 갖고 있는 돈으로 접근해버리면, 계속 '핑크' 영업만 해야 돼요. 이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이 사람들을 상대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힘들어요. 그리고 자기들끼리 자꾸 싸워요. 시장이 좁다보니까 그 안에서 의가 상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해서, 약간 한국이 수출로 먹고 살듯이, 우리 '핑크'들도 일반 커뮤니티로 대상을 넓혀 영업했으면 좋겠어요. 종로의 사장님들 중에서도 이렇게 놀라운 음식솜씨를 가지고서 밤에 술안주만 만드실까, 일반 영업을 하시면 맛집으로 소문나서 장사 잘될 텐데, 이런 경우도 되게 많거든요. 익선동의 좋은 상가 자리가 났을 때, 저는 그래도 지금 영업을 하고 있다 보니까 이쪽 부동산 업자 사장님들과도 친하고 해서 아무래도 저한테 기회가 먼저 오거든요. 그래서 제가 할 여력은 없어서 누가 들어오시면 좋겠다고 소개를 몇 분 해드렸는데, 다들 일반 영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되게 두려움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그런 게 안타까워서, 일반 대상으로도 영업하는 게이 사장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터울 : 익선동에 이든님 말고도 한두 명만 더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든 : 이 근처에는 벌써 한 3-4분 계세요. 물론 그 분들이 원하실 지는 모르기 때문에 어디라고 얘기는 못하겠지만. 

터울 :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뭘 파는 게 '핑크머니'가 아니라, 성소수자가 주체가 되어서 시장에 나가서 나름대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핑크머니'일 수 있다는 지적이셨던 것 같아요.

이든 : 그래서 그 사람들이 돈을 벌면, 그게 또 성소수자가 가진 재산이 되는 거잖아요. 

터울 : 네, 중요한 말씀이신 것 같아요. GLOW SEOUL이 가지고 있는 이상과 현실을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이든 : 이러다 망하면, 역시 현실은 냉혹했다고 나중에 인터뷰 다시 해야죠. (웃음) 

터울 : 알겠습니다. (웃음) 

제니 : 제 친구들 중에 이든 사장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이든 사장님처럼 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요. 제 친구들 중에 아직 스스로를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물론 부모님도 알고 계시고 주변에도 다 알고 있긴 하지만, 제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이든 사장님께서는 게이인 걸 숨기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오셨잖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이 어떠신지, 그런 걸 물어보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제가 이든 사장님께 뭘 여쭤볼까-라고 물어봤을 때, 

이든 : 저는 그냥 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거예요. (웃음)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제가 엄청 주도면밀한 마스터플랜이 항상 준비되어있고, 빅픽쳐가 있어서 그것대로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되게 충동적인 사람이에요. 충동적이고 직관적인 사람이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데, 대신에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으면 저는 포기하지는 않아요. 어찌됐든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윷을 던지기로 한 이상 무조건 모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으로 하다보니까, 저희 회사에서 하는 것도 그냥 즐겁고 재밌고 뭔가 신나고 이런 일이면 뭐든지 할 건데, 

다소 유치한 얘기지만, 중학교 도덕교과서에 보면 이데올로기는 '창'이라고 나와요.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창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데올로기가 세상은 아닌 거예요.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거죠. 제가 갖고 있는 사상이나 신념이라든가, 이건 제 인생의 목적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 신념과 사상이나, 제가 갖고 있는 가치관을 통해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이 투영돼서 꼴지워지는 거죠.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일 자체로만 존재하지, 제가 그걸 하기 전까지는 그냥 추상적인 형태였다가, 제가 갖고 있는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나 신념에 의해서 그 모양이 특정한 형태가 된다면, 다른 자재여도 저한테 들어오면 그 모양으로 나오겠죠. 

저한테 퀴어스러움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정당도 있고, 저희 다른 여러 가지 측면과 사상들이 있겠죠. 그런 걸 통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저를 통과해 나오게 되면 그 중에 자연스럽게 퀴어성이 녹아나는 거고, 그 가운데에서 제가 특정 정당의 당원이라고 하면 특별한 일이 아닐 텐데, 게이가 이런 일을 한다고 하면 좀더 지금 사회에서는 유니크한 일이다 보니까 그 점이 더 부각되는 것뿐인 것 같아요.

▲ 살라댕 방콕 앞길 : 익선동 야간개장, 2018.5.26. @익선동

터울 : 알겠습니다. 그럼 진짜 마지막 질문을 드릴 게요. 손석희 흉내를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GLOW SEOUL 산하의 익선동 가게들이 5년 뒤든 10년 뒤든 나가게 되면, 권리금을 얼마나 받으실 거예요?

이든 : 저는 5년을 채울 거기 때문에, 권리금을 받고 나갈 생각이 없어요. 저는 그냥 마지막 날까지, 제가 영업할 수 있는 법적인 날까지 무조건 영업을 할 겁니다. 

터울 : 그리고 그냥 퇴거하시는 건가요?

이든 : 네. 5년을 다 채웠는데 권리금을 받고 넘기는 경우는 쉽지 않죠. 주인 입장에서는 내보내면 되는 상황이니까. 근데 물론 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물론 나도 마다하진 않을 거예요. (일동 웃음) 그런데 권리금을 목적으로 하는 가게는 GLOW SEOUL에는 지금 하나도 없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익선동에도 지금 애시당초 권리금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가게들이 있어요, 시설 투자를 거의 안하고, 아주 기본적인 수리만 해놓고, 그냥 이렇게 오픈을 우선 해놓고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저런 경우도 있지만, 저희는 그렇게 운영할 의도는 전혀 없어요. 

터울 : 그래도 권리금을 더 받고 싶은 유혹이 있지는 않으세요? 3년 정도 하고 권리금을 받고 나가고 싶다는 유혹이 있으실 것 같은데, 

이든 : 제가 장사를 잘 해서, 3년 하고 나가는 것보다, 나머지 2년 동안 내가 권리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게를 만들면 되죠.

터울 : 정답을 말씀해주셨네요. (웃음) 알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든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