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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해야 할까?

ⓒrottadana via Getty Images
ⓒhuffpost

에어컨을 잠깐만 꺼도 숨이 막히고 땀이 흐르는 날씨다. 이달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해달라는 요구가 거세다. ‘냉방 복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만큼 더위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진제가 없어져서 전기를 마음 놓고 펑펑 쓰는 게 좋은 일일까?

이런 여름 날씨가 비정상적이라는 것, 그리고 기후변화를 멈추려면(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행동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가전제품이 점점 커진다. 집집마다 엄청난 크기의 양문형 냉장고가 있고, 그 못지않게 큰 김치냉장고가 있다. 외식도 많이 하고 인스턴트 식품 소비도 계속 늘어나는데 어째서 냉장고는 자꾸 커지는 것일까? 

사실 자기 집 냉장고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잘 모른다는 사람이 많다. ‘냉장고 파먹기’라는 유행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우리 집 냉장고는 겨우(!) 600리터짜리인데도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주기적으로 버려야 한다. 그래도 냉동실 문을 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닐봉지가 우수수 떨어지는 지경은 아니어서(그런 집도 본 적 있다) 나름 깔끔하게 살림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세탁기도 커지고 있다. 드럼세탁기가 고장 나서 새로 사려고 가전제품 매장에 가보았더니 제일 작은 게 16㎏짜리였다. 전에 쓰던 게 8㎏이어서 이번에는 10㎏짜리를 사볼까 했더니 말이다.

또 빨래를 햇볕에 너는 대신 건조기에 돌리는 집도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발코니 확장을 전제하고 짓는 요즘 아파트의 구조 탓이 크지만, 건조기를 더 세련된 삶의 상징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한몫하는 것 같다(미국에 사는 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발코니에 빨래를 주렁주렁 너는 것을 가난의 표시로 여긴다고 한다).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들은 보통 발코니가 없고 천장형 에어컨이 방마다 설치되어 있고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이 있다. 이것은 전기를 펑펑 쓰는 삶이 더 세련된 것이라는 그릇된 관념을 알게 모르게 심어준다. 말하자면 라이프 스타일의 미국화가 진행 중이고, 건설사들이 그것을 선도하고 있는 상황인데, 전기요금 누진제의 폐지는 이를 가속화하는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지금도 싼 편이다. 가정용 전기요금이 제일 비싼 나라는 독일인데 2016년 현재 1메가와트시(㎿h)당 329달러로, 1㎿h당 119달러인 한국의 세배 가까이 된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한국의 값싼 전기요금에는 숨겨진 비용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원전을 폐쇄하는 비용을 포함시키면 전기요금이 엄청나게 올라갈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 중에, 지구와 달을 왕복하는 우주선이 운석에 충돌하여 궤도를 이탈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주선을 원래 궤도로 되돌리려면 추가적인 에너지가 필요한데 우주선 안에는 그만큼의 연료가 없다. 선장은 짐을 버려서 우주선을 가볍게 하려고 한다. 그는 승객의 개인 짐을 압수하고 식량도 최소한의 것만 남긴다. 그러자 불만을 품은 승객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기후변화를 멈추고 싶어하면서도, 거기에 필요한 행동을 하는 데는 비협조적인 우리는 이 승객들과 비슷한 게 아닐까? 불평을 멈추고, 한번이라도 선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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