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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감사를 받은 그는 왜 목숨을 끊었나

감사 후 정신질환을 겪어 산재 인정을 받은 직원도 있다

  • 백승호
  • 입력 2018.08.08 12:07
  • 수정 2018.08.08 14:55

삼성화재 자회사에서 감사를 받던 직원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7일 확인됐다.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삼성화재 자회사인 ㅅ사에서 일하던 ㄱ씨는 4일 오전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포스트잇 세 장 분량의 짧은 유서를 남겼으며, 유서에는 회사 감사팀을 원망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주로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ㅅ사에서는 지난달부터 보험료 지급 등의 적절성을 따지는 감사가 진행됐다. 삼성화재 쪽은 ㅅ사에서 이뤄진 감사를 1~2년마다 하는 ‘정기 현장 점검’이라고 설명했다. ㄱ씨는 몇 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주변에 억울함을 호소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화재 쪽은 ㄱ씨의 사망과 감사의 관련성을 묻자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감사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결과를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은 ㄱ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된 과정에서 회사의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 뒤 정신질환에 걸린 직원들

삼성그룹의 감사는 혹독하기로 악명이 높다. 검찰 수사보다 가혹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감사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된 사례도 있다. ㅅ사의 모회사인 삼성화재에서 부장으로 일하던 김아무개(51)씨는 부하 직원들에게 선물을 강요하고 7만원짜리 판촉물 넥타이 4개를 가로챘다는 등의 이유로 2016년 9월 다섯차례 감사를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5일 보직해임됐다. 김씨는 “부하 직원들에게 선물을 강요한 적이 없다. 당시 내가 관리했던 판촉물 비용만 연간 수억원 수준인데 넥타이 4개를 착복했다는 것 역시 비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런데도 회사가 78명의 인사명령을 낸 다음 날 나만 홀로 보직해임하는 인사명령을 냈다.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보직해임 이틀 뒤인 10월7일 처음 정신과 의원을 찾았고 ‘심한 스트레스 반응 및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후에도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10월 회사의 감사로 인해 적응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질환을 겪고 있다며 근로복지공단 서울서초지사에 업무상 재해 신청을 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산재가 인정됐다.

근로복지공단이 김씨에게 통보한 ‘최초 요양 신청서 처리 결과’를 보면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감사 방법과 감사 직후 부서장 인사발령(보직해임) 등이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돼 ‘적응장애’와 업무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선물 강요와 판촉물 유용 및 근무 태만 등을 이유로 지난달 31일 김씨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김씨는 “회사 규정을 보면 산재 환자는 2년씩 두 차례, 총 4년 동안 요양할 수 있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정밀진단을 한 결과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질환 증상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아 회사에 제출했는데도 근무 태만 등을 이유로 해고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씨는 지금도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매일 11개의 약을 먹는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는 “직원 3명의 실명 투서가 있어서 감사를 진행한 것”이라며 “산재가 인정됐더라도 회사가 출근할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하면 출근을 요구할 수 있는데, 김씨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사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것은 김씨뿐이 아니다. 삼성에스디아이(SDI)에서 2016년 3월29일부터 감사를 받은 ㄴ씨도 지난해 1월 감사로 인한 정신질환이 인정돼 산재 판정을 받았다. ㄴ씨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를 보면 “(ㄴ씨는) 중등도의 우울삽화(우울증), 적응장애 등의 상병을 가진 것으로 인정된다”며 사업장에서 실시한 감사 방법(불시 감사, 감사 장소, 사실 강요 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밝히고 있다.

삼성웰스토리의 이아무개씨도 감사 이후 정신질환을 얻었다. 그는 2016년 10월28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감사를 받았다. 그는 감사 중이던 11월5일부터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해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요즘에는 공황장애에다 몸의 왼쪽 부분이 마비된 것처럼 저리는 증상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sbayram via Getty Images

 

삼성의 혹독한 감사 방식

삼성 계열사에서 감사를 받는 이들은 하나같이 혹독한 감사 방식을 지적하며 고통을 토로했다. 법무법인 감천이 삼성에스디아이에서 2016년 감사를 받은 40여명을 만나 기록한 자료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삼성의 감사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우선 감사 대상자에게 어떤 이유로 감사하는지 말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감사관은 대개 “입사 이후 지금까지 삼성 임직원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이 있으면 다 쓰라”고 말하며 백지를 주고 나간다. 아무리 궁리해도 뾰족하게 적을 것이 없어 버티면, 다음엔 “지금까지 거래한 업체의 이름을 다 쓰라”는 주문이 이어진다. 그다음에는 “지금까지 거래한 업체에서 만난 직원 이름을 다 쓰라”고 요구한다. 감사 중간중간에 “(비위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 지금 말하면 선처하겠다”는 말도 곁들인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감사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간 이어진다. 삼성에스디아이처럼 전국 각지에 공장이 있는 경우, ‘장거리 감사’가 이뤄졌다는 증언도 나온다. 울산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을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소재단지로 불러 감사하는 식이다. 감사 대상자 중 일부는 일주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삼성에스디아이에서 20여년을 근무한 직원 ㄷ씨는 2016년 3월 초 감사 통보를 받았다. 그는 “20년 동안 잘못한 것이 있으면 모두 쓰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차라리 징계위원회에 올려달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결국 감사 4일 만에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5분 만에 인사팀 직원이 사직서를 들고 왔다.

법무법인 감천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 가족 장례식을 마친 다음 날 감사실로 불려간 경우도 있고, 술을 먹지 않는 직원에게 “2차를 가지 않았냐”고 추궁한 사례도 등장한다. 비위 사실을 알려달라는 직원의 요구에 감사관은 “감사 프로세스상 말해줄 수 없다”고 답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삼성 계열사의 감사 대상자들을 여러 명 만나 상담해온 감천의 이영만 노무사는 “삼성의 감사 방식은 일단 스스로 잘못한 것을 자백하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비위 적발이 목적이라기보다 인력 퇴출 등 다른 목적을 위해 활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삼성 쪽은 그때마다 비위 의심자들에 대한 적법한 감사이거나 일상적인 정기 감사라고 해명했다. 또 감사가 억압적으로 진행되는 일도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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