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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폭탄’ 두려운 산모들…“할인 제도 있지만 구멍 숭숭”

지난 6월 말 첫 아이를 출산한 임모(35)씨는 올여름을 강타한 ‘역대급 폭염’ 속에서 산후조리를 해야 했다. 임씨의 신혼 살림집은 경북 경산시에 있지만, 임씨는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성남에 있는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가 경산 신혼집으로 와서 산후조리를 돕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고, 따로 도우미를 쓰기엔 2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남의 손에 아기를 맡기기 싫은 마음도 컸다. 몸도 못 가누는 아기와 산모에게 폭염은 그야말로 두려운 상황이었고, 임씨는 7월 내내 거의 24시간 에어컨을 틀었다.

‘전기요금 폭탄’이 걱정됐던 임씨는 최근 한국전력이 시행하는 ‘출산가구 전기요금 할인제도’를 신청하려고 했지만 낭패를 겪어야 했다. 산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에만 할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임씨가 머물고 있는 부모님 집 전기요금은 할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몸조리하는 곳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물었지만, “주소를 이전하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세자금대출 탓에 주소 변경도 여의치 않은 임씨는 결국 한전과의 실랑이를 벌이다 포기하고 할인 신청을 취소했다.임씨는 “주소를 옮기려면 당장 1억이 넘는 전세자금대출을 갚아야 한다. 산모의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라면서 무조건 주소지로만 신청하라는 건 잘못된 일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임씨와 비슷한 시기인 6월에 아이를 낳은 신아무개(36)씨도 아직 전기요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출산가구 전기요금 할인제도는 출생신고를 하면 자동으로 신청되지만, 자신의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아닌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신씨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신씨는 “신생아 때 에어컨을 가장 많이 틀 수밖에 없는데, 할인 혜택을 하나도 못 받게 됐다”며 “시부모님께 부담될 것 같아 안 쓰는 전기 코드는 바로 뽑고, 불도 거의 끄고 지낸다”고 했다. 그래도 신씨는 아이 때문에 차마 에어컨 트는 건 멈출 수 없다. 2개월 된 손주를 돌봐주고 있다는 양아무개(61)씨는 “요즘 산모들은 대부분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뒤 시댁이나 친정에서 몸조리한다”며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할인 혜택을 제한한 건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거나, 손주를 돌봐준 적 없는 사람들이 제도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형식적인 주소지 규정이 불편하다는 것 말고도 산모들은 전기요금 할인 효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전은 2016년 12월1일부터 출생일로부터 1년 미만 영아가 포함된 가구의 전기요금을 30% 할인해주고 있다. 할인율 자체는 30%로 높은 편이지만 할인 금액에 상한선이 있어 월 1만6천원이 최대 할인액이다. 여름철이면 전기요금이 10만원을 훌쩍 넘는 가정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할인액이 개별 가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3개월 된 아이가 있는 신아무개(30)씨는 “에어컨뿐만 아니라 아이가 토하거나 배변이 묻는 일이 잦아 세탁기와 건조기도 하루에 2~3번은 돌리게 된다”며 “7월 전기요금이 40만원도 넘게 나올 것 같다”고 걱정했다.

특히 아이가 둘 있는 집은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 빨래만 따로 모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세탁기를 두 배로 돌려야 한다. 지난달 아이를 출산했다는 이아무개(36)씨는 “몸조리할 때는 산모도 아기도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한다. 할인 혜택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1만6천원은 사실 적어도 너무 적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관련 설명자료를 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월평균 전기 사용량이 350㎾h(킬로와트시)인 에어컨을 매일 10시간씩 틀면 한달에 냉방용 전기요금만 18만원 정도 나온다.

폭염에 신음하고 전기요금 고지서에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7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를 열어 ‘전기요금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이 가운데 육아에 폭염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는 산모들을 위한 대책도 포함돼 있다. 출산가구 전기요금 할인 대상을 현재 ‘출생 후 1년 이하 영아를 둔 가정’에서 ‘3년 이하 영아를 둔 가정’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로 인해 46여만 가구가 추가로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매해 지원액은 250억여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여당의 이번 ‘깜짝 대책’에도 불구하고 산모들이 아쉽다고 지적하는 ‘할인 금액 확대’와 ‘거주지 자유 신청제’ 등은 빠졌다. 여전히 할인 상한액이 1만6천원으로 제한되고, 주소지가 아닌 친정 등으로 옮겨 몸을 풀거나 할아버지·할머니가 아이를 맡아 키우는 가정은 혜택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에너지 기본권은 헌법적 권리로 격상돼야 할 만큼 중요한 인권적 사안으로 특히 폭염과 혹한 등 계절 환경에선 더더욱 강조돼야 한다”면서 “기존 대책의 기간을 연장해주는 수준의 한시적인 대책에 그칠 게 아니라, 산모와 노인 등 에너지 소외계층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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