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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아라곤

  • 이원열
  • 입력 2018.08.07 15:06
  • 수정 2018.08.07 15:16
ⓒhuffpost

우연히 알게 된 뉴질랜드 청년에게 이름을 묻자 ‘아라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농담이려니 하고 ”그래? 내 이름은 프로도야” 했더니 청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런 반응을 많이 받곤 해. 그런데 그게 내 본명이야. 우리 부모님이 히피셨거든. 그땐 ‘반지의 제왕‘이 쿨했으니까.” 이 말을 듣자 미안해졌다. 1950년대 중반 출간된 소설 ‘반지의 제왕’을 훗날 뉴질랜드 감독이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영화화할 줄 알았더라면 과연 그의 부모는 아라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까.

자녀에게 특이한 이름을 붙이는 해외 유명인이 많다. 카니에 웨스트와 킴 카다시안은 딸들에게 노스웨스트, 시카고웨스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네스 팰트로와 크리스 마틴의 딸은 애플이다. U2의 기타리스트 에지의 딸은 블루 에인절, 비욘세와 제이 지의 딸은 블루 아이비다. 우마 서먼과 아르파 뷔송은 딸에게 ‘로절린드 아루샤 아카디나 알타룬 플로렌스 서먼―뷔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름을 모은 것이라는데, 다행히(?) 평소엔 루나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추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다. 유명함도 세습되는 시대이니 자녀만의 브랜드, 즉 돈줄을 미리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는 트렌드 세터여야 한다는 강박이다, 아티스트의 철학이 담긴 것이다, 아니면 그저 ‘관종’의 기행일 뿐이다 등등.

성을 포함한 이름이 대부분 2~4음절이고, 한자로 뜻을 한 겹 감싸는 것이 보통인 한국에서는 노골적으로 특이한 이름이 드물다. 자녀에게 ‘김속초’ ‘이목포’ ‘박서귀포’ 같은 이름을 붙일 용감무쌍한 부모도 흔치 않을 것이다. 만약 돌림자까지 지키려 한다면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진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 이름이 희귀한 사람은 ‘신상 털기’에 더욱 취약할 테니, 되도록 착하게 사는 게 좋겠다. 물론 이름이 평범해도 착하게 사는 것이 좋다.

* 조선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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