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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에 대한 법적 필터링의 방아쇠 - 어거, 그리고 돈스코이호

  • 김상순
  • 입력 2018.08.06 16:29
  • 수정 2018.08.06 16:34
ⓒda-kuk via Getty Images
ⓒhuffpost

1.

신일그룹 돈스코이 골드코인 뉴스로 인하여, 다시 ICO(Initial Coin Offering)에 대한 관심의 열풍이 몹시 뜨겁다. 사람들은 ICO 절차를 통해 발행된 코인이나 토큰의 시세에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코인이나 토큰의 대가로 취득한 금전 기타 재산적 가치있는 물건으로 발행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이다. 얼마전 이른바 코인거래소 - 정확히는 ‘가상화폐 취급업소’이다 - 를 운영하는 분과의 어느 식사 자리에서 여러 조언을 해 주던 중,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김 변호사님은 어떤 코인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돈 벌려고 투자를 하려했다면 이미 5~6년 전 블록체인을 공부하던 시절에 했겠지요. 그저 학술적 관심을 우선하여 계속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어거(Augur)를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아, 네.”, ”…….”

헌법학에서는 완성된 사실(fait accompli)의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19세기의 법실증주의학자 게오르그 옐리네크(G. Jellinek)는 ‘완성된 사실의 규범력 이론’을 일찌기 제시하였다. 이는 역사적으로 성공한 쿠데타의 합리화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옐리네크는 ”정당은 국가권력을 추구하는 유일한 단체”라고 주장하여 정권획득을 추구하는 정치기구”로서 정당을 정의하고 있다. 정치체제 내에서 정치기구로서의 정당의 입지에 버금가는 것으로서, 경제제체 내에서 경제기구 운용 방식으로서의 ICO를 통해 구축하려는 각종 플래폼들은 또 하나의 정당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싶다. 이 논리구조를 이어보자면, 트리펠(Tripel)의 정당에 대한 헌법의 태도에 관한 견해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트리펠은 정당에 대한 헌법의 태도를 “적대시 단계 - 무관심 내지 무시 단계 - 승인 내지 합법화 단계 - 헌법에의 수용 단계” 등 4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는 소셜커머스(social commerce)라는 새로운 열풍이 불었었다. 법률가가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전망을 제시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셜커머스 업체의 법적 지위에 대하여 ‘통신판매중개업자가 아닌 통신판매업자이므로 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공식 주장했다. 결국 소셜커머스 업체는 통신판매업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5년 전, 나는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역시 열풍이던 비와이오디(BYOD, Bring Your Own Device) 이슈에 대해서 역시 첫 주장을 하였다. 당시 상향평준하여 소유하게 된 고성능 하드웨어 기기들 - 특히 최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 은 회사가 제공하는 도구보다 근로자 개인이 소유한 것이 더 성능이 좋았다. 필연적으로 회사일을 위하여 개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근로자 개인이 사용하는 도구를 사용하는 바람에, 연장근로나 추가근로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회사가 발송하는 메일이나 카톡 메시지를 퇴근길에 혹은 집에서 개인 소유 디바이스를 사용하여 일처리를 하는 것은 근로자의 삶에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 이슈는 수년 후에 법률도 제출되었다. 나는 이런 법률가의 노력이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시민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고 궁극적으로 사회가 성숙하게 되는 부분에서 보람을 느낀다. 시간이 좀 걸렸을지언정, 위 이슈들은 법적 쟁점화된 후에 법적 승인 단계에 이르렀고, 현재는 법제가 정비되어 합리적으로 규율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수년만에 다시, 이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이른바 가상화폐에 대해 눈을 돌려, 새로운 첫 주장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 보려 한다. ICO에 대한 각 국가별 입장은 다르다. 어느 나라는 외화유치 차원에서라도 적극 권장하고 있고, 어떤 나라는 여전히 적대시 내지 무시하고 있다. 세계경제라는 틀안에서 각 플레이어로서의 개별 국가는 이렇듯 각자 입장이 다르다. 거시적으로, 이제 슬슬 무시 단계를 넘어 승인 단계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돈스코이호 라는 보물선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거기서 발견하(겠다고 선언하는,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그 보물이 국내법상의 무주물 혹은 매장물이 될지,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하여 국제법상 이슈가 되게 될지, 나는 별로 흥미 없다. 내가 흥미있는 부분은, 이제, 어거나 돈스코이호 덕분에, 드디어 ICO에 대한 법적 필터링(filtering) - 굳이 ‘법적 규제’라는 단어를 피하며, ‘법적 편입’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신중을 기하려 한다 - 의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

먼저, 어거부터 이야기를 해 보자면. 어거는 예측시장 플랫폼을 다룬다. 좀 더 거칠게, 그리고 쉽게 요약하자면, 도박판으로서도 기능한다. 어거의 백서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한 어거의 한글판 백서의 내용을, 옮기자면 아래와 같다.

~ 어거는 신뢰에 기반하지 않는 분산화된 오라클과 예측 시장 플랫폼이다. 예측 시장의 각 참여자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의 결과에 투자한다. 결과를 맞게 예측한 이는 수익을 얻고, 다르게 예측하여 틀린 경우 손실을 입는다. 예측 시장에서 책정된 가격은 해당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어거를 통해 사람들은 저비용으로 예측 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용이라고 해봐야 개설자에 대한 보상과, 실제 결과가 발생했을 때 이를 보고한 이들을 위한 보상이다. 때문에, 요구되는 신용의 정도, 마찰 그리고 비용을 경쟁 시장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예측 시장은 중앙집중화 방식이었다. 예측 시장 속의 거래를 합산하는 가장 간단한 방식은 신뢰할 수 있는 독립체가 원장(元帳)을 관리하는 것이다. 결과를 정리하고 보상을 지급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있는 판단주체가 이를 담당하는 것이 가장 쉽다. 하지만 중앙집중화된 예측 시장은 많은 제한요소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중앙집중화 방식은 글로벌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개설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의 종류가 제한적이며, 시장을 운영하는 측이 자산을 훔치거나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거는 이를 탈중앙화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탈중앙화되고,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네트워크를 통해 사익의 추구가 부패나 사기로 변질될 우려를 제거하였다. 어거 개발진의 유일한 역할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등록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어거의 계약은 완전 자동화되어 있다. 아무리 개발자라도 시장에서 에스크로 형태로 모인 자금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고, 결과를 조작할 수도 없으며, 거래나 주문을 승인 혹은 거부하거나 취소하는 등의 어떠한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거의 오라클은 현실 세계의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가져올 때 신뢰받는 중재인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거는 세계 최초의 분산화된 오라클이 될 것이다. ~

첫 문장에 나오는 ‘신뢰에 기반하지 않는 오라클(Oracle)’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겁고 의미심장한 것인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제와는 달리 상세히 이야기할 부분이 많아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기회가 닿는다면, 이에 대하여는 다음에).

3.

어거에 관하여 얼마 전 가장 인상 깊었던 뉴스는 ‘어거와 공개 살인청부’에 관한 뉴스다. 어거는 아주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자신의 코인을 베팅하여 내기를 걸 수 있다. 석유가격이 일주일 후에 폭락할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오를 것인지, 월드컵에서 누가 우승할 것인지, 누가 이번 선거에 당선될 것인지 등. 인물에 대한 내기로 사악한 상상력은 꼬리를 이어 등장하고 있다. 유명인물 A가 자연사할 것인지 사고사할 것인지를 두고서 내기가 가능하다. 즉, 극단적으로, A의 사고사에 베팅을 할 수 있다. 만약 그리 된다면, 누군가는 A의 사고사를 희망하게 되고, 또 누군가는 A의 사고사를 위해 경제적 동기에 좇아 행동에 옮기게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이 플랫폼 안에서는 이런 상상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즉, 종래 법의 포커스는 백서(white paper)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ICO에 대한 부분에 중점을 두어, 그 돈을 모으거나 운용하는 과정에서의 행태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미래의 블록체인을 위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혁신적 기업가들 - 모두가 다 혁신적 기업가인 것은 물론 아니다 - 은 사기, 횡령, 배임, 방문판매법위반, 유사수신행위금지법위반 등의 법적 조치에 대하여 불안해 하였다. 그들은 원치않게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가 되어,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개 살인청부와 같은 반사회적인 행위는 국가개입의 명분을 준다. 소득을 일으키는 ICO 및 블록체인을 활용한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에 대하여만 중점을 두어, 법 위반 여부 체크해 왔던 법적 관점은 이제 조금 전향적으로 분석할 필요성을 낳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른바 토큰이나 코인이 증권이냐 아니냐의 논의는 결과 내지 과실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느냐 여부의 문제이다. 하지만, 행위 자체에 대한 가치평가를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점점 도래하고 있다는 뜻이다.

금전 투입의 본질적 속성이 무엇인가가 고민되어야 한다. 토큰이나 코인을 을 이용한 가치교환(증여, 매매, 서비스이용료 지불 등)은 도박, 투자, 상속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종래 법체계로도 당장 적용 가능한 부분이 존재한다. ’테러자금 원조’를 목적으로 한다면, 내란, 외환, 교통방해, 폭발죄 등이 고려될 수 있다. 공무원에 경제가치 지불을 숨은 목적으로 한다면 뇌물죄가, 증인 매수의 효과를 발휘한다면 위증교사, 증거인멸죄 등이, 교회 등 종교단체에의 헌금이 목적이라면 여전히 면세대상인지 여부가, 일시 오락의 범위를 넘어선 베팅 이라면 도박죄가, 어느 유명인이 자연사 하지 않는다에 베팅한다면 살인교사 내지 방조죄가, 입찰 경매 대금의 우회지급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입찰의 공정성을 해하는 부분에 착안하여 입찰방해죄 등이, 각 고려될 수 있다.

에르큘 포와르처럼 회색빛 리걸 뇌세포를 가동시켜 보자면, 충분히 현행 법으로도 이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를 해 볼 수 있다. 백서는 백서대로 ICO는 ICO대로, 혁신을 추구하는 이들이 더 이상 불안하거나 조마조마하지 않게 숨통이 틔게 해 주면서도 법적 필터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육성해야 할 부분과 발본색원해야 할 부분은 정책 당국이 향후 더 신중히 고민하여야 할 과제다. 백서를 기술설명서 내지 사업설명서가 아닌 ‘약관’의 일부로 보아 법적으로 다룰 수 있어 보인다. 청약의 유인으로 보아, 의사표시에 관한 일반 법리로 다룰 수도 있다. 자동화된 의사표시에 관한 법리도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신 사업을 위하여 규제 혁신을 하면 기득권은 반발한다. 그동안 쌓은 입지가 위태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의 혁신을 가져왔다. 블록체인은 물자의 교류와 정보의 교류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 올 것이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물자 교환, 그 이상이 될 것이다. 블록체인의 쿠데타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법률가에게 있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규범이라는 틀을 사용하여, 현재를 과거에 묶어 미래를 조절하는 것이다. 갈 길이 아직 멀다. 내게 필요한 것은 회색 뇌세포를 가동하여 이를 다듬을 시간, 함께 같이 토론하고 논의할 동료, 그리고 이 열풍을 식힐 시원한 아이스 에스프레소 한 잔. 끝.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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