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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이탈리아 장관이 '反파시즘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극우의 반동.

  • 허완
  • 입력 2018.08.06 14:59
  • 수정 2018.08.06 15:02
이탈리아 가정부 장관 로렌조 폰타나.
이탈리아 가정부 장관 로렌조 폰타나. ⓒSimona Granati - Corbis via Getty Images

이탈리아 반(反)기득권 성향 정부의 장관이 반(反)파시즘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서 인권 단체들의 규탄을 받고 있다. 이 법은 인종차별적 폭력·범죄를 처벌하고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단체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1993년에 통과된 이른바 ‘만치노 법’은 인종차별적 폭력과 증오발언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로렌조 폰타나 이탈리아 가정부 장관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법이 ”글로벌리스트”들에 의해 ”반이탈리아적 인종차별”을 촉발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며 법안 폐지를 주장했다.

폰타나는 올해 총선 이후 반기득권 정당 ‘오성운동’과 연정을 구성한 극우 레가당 소속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은 건 오성운동이지만, 선거 이후 이탈리아 정치에서 더 두드러진 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레가당과 레가당 대표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이다. 이들은 이탈리아 정부 정책을 우파 쪽으로 끌고가는 중이다.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고 있는 레가당 대표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고 있는 레가당 대표 마테오 살비니. ⓒSimona Granati - Corbis via Getty Images

 

최근 이탈리아의 악명높은 독제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말을 인용한 트윗을 올렸던 살비니 부총리는 아프리카에서 오는 이민 선박에 대한 정부 단속을 주도하는가 하면 난민 정책을 놓고 EU와 충돌하면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살비니 부총리는 자신은 반파시즘 법 폐기를 지지한다면서도 이게 우선 과제는 아니며, 현재로서는 정부가 이 법의 폐지를 당장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3일 말했다. 오성운동 대표 루이지 디 마이오는 이 법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세계 2차 대전 이후 광범위한 반차별 및 반파시즘 법안을 제정했다. ‘만치노 법‘에 따르면 민족성, 종교, 국적, 인종에 연관된 범행 동기가 있었다고 간주될 경우 이탈리아 범죄자들은 더욱 엄한 처벌을 받는다. 무솔리니가 이끌었던 ‘국가 파시스트당’을 부활시킬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는 파시스트 프로파간다도 금지되어 있다.

레가당과 오성운동은 최근 몇 년간 파시스트 상징 및 레토릭에 대한 규제 강화에 반대해왔다. 반면 인권 단체들은 이탈리아에서 증가하고 있는 극단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아돌프 히틀러(왼쪽)와 베니토 무솔리니(오른쪽)이 로마 시내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1938년 5월8일.
아돌프 히틀러(왼쪽)와 베니토 무솔리니(오른쪽)이 로마 시내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1938년 5월8일. ⓒDe Agostini Picture Library via Getty Images

 

만치노 법은 무슬림과 소수 집단에 대한 증오를 선동한 레가당원들을 기소하는 데 적용된 바 있다. 트레비소 부시장인 레가당원 지안카를로 젠틸리니는 ”모스크와 이슬람 센터를 열길 원하는 이들에 대한 혁명”을 주장하고 흑인들이 ”우리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2009년에 4000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폰타나의 제안을 지지한 극우 정치인들도 있었으나, 이탈리아의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 발언을 규탄하며 만치노 법은 차별을 막기 위해 필요한 방어막이라고 강조했다.

“만치노 법을 폐지하면 인종 증오 선동을 위법 행위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가 부상하고 있는 역사적 시점에서 사법부를 무장해제시킨다는 것과 같다.” 이탈리아유대인연합 회장 노에미 디 세니가 허프포스트 이탈리아에 한 말이다. “만치노 법 폐기는 커녕,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에 대한 규제 조항을 시급히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디 세니는 이탈리아의 과거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반파시즘과 관용이라는 이탈리아의 원칙을 위협하려는 폰타나의 시도를 비판했다.

“역사적 기억이 없는 민주적 커뮤니티에게 미래는 없다.” 디 세니의 말이다.

'모든 것은 고국을 위해'라는 시위를 개최한 극우단체 'Forza Nuova(새 질서)'가 파시스트식 인사법을 행하고 있는 모습. 로마, 2017년 11월4일.
'모든 것은 고국을 위해'라는 시위를 개최한 극우단체 'Forza Nuova(새 질서)'가 파시스트식 인사법을 행하고 있는 모습. 로마, 2017년 11월4일. ⓒIvan Romano via Getty Images

 

로마 유대인 커뮤니티의 수장인 루스 두레겔로 역시 폰타나의 제안을 규탄했다.

두레겔로는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의) 반유대인 법이 만들어진 게 불과 80년 전이다. 네오 파시즘을 계속해서 못본 척할 게 아니라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ANSA가 전했다.

지난 5월 레가당과 오성운동의 연정이 집권한 이래 이탈리아에서는 이민자와 소수집단에 대한 폭력이 이어졌다. 2건의 살인사건을 비롯해 최소 10건 이상의 총격 사건이 있었다. 7월에는 한 범인이 공기총으로 13세 집시 소녀를 쏜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일 나폴리에서는 소형 오토바이를 탄 두 남성이 세네갈 출신 과일 상인의 다리를 향해 총을 쐈다.

인권 단체들은 레가당이 외국인 혐오 및 인종차별적 레토릭을 통해 증오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살비니 부총리는 툭하면 이민자들을 범죄자나 강간범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이탈리아 내 집시들에 대한 인구조사를 주장하며 과거 파시스트 정권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살비니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 대해 7월29일 트윗으로 응수했다. “적들이 많을수록 영광은 더 크다!” 이건 무솔리니가 했던 말이다. 이날은 파시스트 독재가 무솔리니의 생일이기도 했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US의 Far-Right Italian Cabinet Minister Calls For Repealing Anti-Fascism Law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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