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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에 쿠데타 음모가 가능했던 또 하나의 이유

7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기무사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기무사 해체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7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기무사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기무사 해체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huffpost

21세기 한국에 무시무시한 계획이 드러났다. “치안 유지” 명목으로 수도 서울에 탱크와 장갑차를 진입시켜 헌정을 마비시키고 국가를 군대의 힘 아래 통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다행히도 이 계획은 2017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서 미수에 그쳤고, 서울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탱크 엔진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군대로 정부 비판을 묵살시킨다는 발상도 어처구니 없지만, 인터넷을 차단하고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며 사회운동가들을 체포하겠다는 계획도 모골이 송연하다. 광장에서 만났던 수많은 촛불들 중 일부는 2017년 3월 이후 없어졌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21세기에 쿠데타 음모가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애초부터 1987년 이전의 체제로 회귀시키려 한 그들의 안목이 황당할 따름이다.

이렇게 쿠데타 음모가 가능했던 데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다. 언론 일각에서는 지난 정권 내내 기무사는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육군 중심의 비대한 군 구조와 이를 지탱하는 징병제도 그 기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한 이후, 한국은 60만 대군을 거느린 국가가 되었다. 1954년 당시 인구가 2050만명인 데에 비추어, 당시 전 인구의 약 3%가 군인이었던 셈이다. 일반적으로 군인은 특수직종이기 때문에 전 인구의 1%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모든 인력은 징병제로 충당되었다. 그리고 당시 만들어놓은 육군 중심의 구조는 아직까지도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 한국의 인구 구조가 바뀌었다. 한때는 청년 인구가 많았기 때문에 병력 수급에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인구 감소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후진적인 육군 중심의 구조를 전혀 바꾸지 않았고, 결국 국방부는 60만 대군을 유지하기 위해 징병 신체검사 기준을 바꾸는 기상천외한 결정을 내렸다. 군대가 군사 임무를 위한 곳이라면, 임무에 적합하지 않은 인원들을 입대시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직업군인의 편제와 군수 산업의 이해관계가 작용했음을 어림 짐작 할 수 있다.

만약 한국군이 진작에 효율화 되어서 이렇게 과도한 지상병력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거창한 쿠데타 계획은 수립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군대라는 합법적인 무력 집단이 지나치게 비대해 졌을 때, 공짜 인력을 무한정 공급하는 것은 스스로 일종의 부당 이득과 권력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재래식 보병은 현대전에서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개체로 평가되지만, 총구를 국내로 돌리게 되었을 때는 둘도 없는 공포정치의 도구가 된다.

더군다나 한국은 아직 양심적 병역거부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한 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쿠데타 발발 시 항명이나 출동 거부, 탈영은 상상하기 어렵다(군 복무 중 부당한 전쟁이나 작전에 저항하는 것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해당한다). 국가의 권력이 통째로 군부에 넘어갔는데 어느 군인이 반기를 들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반기를 들 수 없는 구조와 분위기에서 그 누가 양심의 자유를 주장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비 효율적인 군 구조와, 여기에 무한정으로 인력을 공급하는 징병제가 쿠데타의 좋은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그나마 민간인들이 많이 군대에 드나들 수 있고, 군사 관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징병제가 유지 되어야 군을 민간이 통제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요컨대 징병제가 있어야 그래도 군대에 대해 무언가를 좀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인을 강제로 징집하는 것과 민간인이 군에 대한 책임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민간인은 입대하는 순간 군인이 되고, 군 부대에 기간병이 많다 한들 그들에게는 지휘권이 없다. 아울러 박정희, 전두환 집권기는 징병제였음에도 쿠데타가 실행되었다. 결국 행정부의 민간인이 군 수뇌부를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한국군의 구조 개혁과 더불어, 징병제는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한다. 이제는 의미가 없는 제도다. 한국군이 구조적으로 개선된다면 이렇게 많은 인원을 징집할 이유도 사라진다.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병사들 개개인에게 알맞은 월급을 주고,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한국군에게 무한정으로 주어진 공짜 인력 공급을 끊을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군대는 보다 자발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기반한 “제복입은 시민” 양성으로 방향성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들에게 주권을 돌려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는 쿠데타라는 단어를 한국에서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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