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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는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을 망가뜨렸나?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을 정리했다

지난달 3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문건 196개가 추가로 공개됐다. 이제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문건 410개 대부분이 공개된 상황이다.

문건 내용은 놀라웠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의원들의 성향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대응전략을 짜기도 했고 조선일보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려 ‘언론플레이‘도 시도했다. 청와대와 국회, 법무부, 변호사단체, 언론 등을 상대로 로비를 계획했다. 판사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사찰해 성향을 분석하기도 했고 판사들의 인터넷 카페 발언 하나하나를 들추며 ‘성향‘을 분석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국민을 ”이기적 존재”라고 표현하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깡그리 무시하는 내용이 문서에 담기기도 했다. 문서의 내용으로만 따지면 ‘농단’이라는 단어는 사법부가 벌인 일을 표현하기에 하나도 부족하지 않은 말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사법농단 문건들은 대부분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맡고 있는 상고심(3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을 별도로 맡는 법원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제도였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판례를 새로 변경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만 대법원이 맡고 나머지 일반 사건은 모두 상고법원에서 판결하게 된다.

상고법원 설치가 전혀 타당성이 없는 주장은 아니다. 양승태가 주장했던 상고법원 설치의 주요 논리 중 하나는 대법원의 과부하였다. 실제로 대법원은 1년에 3만6000여 사건을 처리한다. 대법관 1인당 3천건이 넘는 수치다. ”대법원의 업무량이 너무 과하다”는 전제는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를 내밀었고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대법관 증원’을 내밀었다. 양쪽 다 수긍할 부분이 있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했던 방식이다. 문건을 살펴보면 양승태가 상고법원을 설치하기 위해 특정 판결을 놓고 청와대와의 ‘거래’를 염두에 두었단 점이다.

 

서초구 대법원에 걸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초상화
서초구 대법원에 걸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초상화 ⓒ뉴스1

 

문건에서 드러난 양승태의 ‘거래 시도’ 정황

사법부는 박근혜 정권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문건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 전략』에는 ”정치적 쟁점 내포된 사건 등에서 여권에 불리한 재판으로 정국 운영에 큰 방해가 되고 있다는 불만, 사법부에 대한 적절한 통제 필요하다는 인식 팽배” 등 청와대가 사법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기술돼 있다.

사법부는 이 부정적 인식을 걷어내기 위한 도구로 특정 판결을 언급한다.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을 보면 사법부는 ‘BH(청와대 : Blue House)의 관심대상’ 등을 언급하며 이를 ”유화적 접근 소재로 이용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문건에서 언급된 관심 사안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세계일보 사건 등”이다. 특히 원세훈 국정원장 사건의 경우 ”정권의 눈치를 본 정치적 판결이라는 지적에 관한 반론” 등과 같이 일각에서 제기될 비판에 대해 세세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더 황당한 대목도 있다. 법원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BH 우호관계 유지 방안”으로 “기소 전까지는 적정한 영장 발부 외에는 다른 협력방안 없음”이라며 “당분간 (우호관계 유지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법부가 ‘영장 발부’ 여부를 청와대와의 ”협력방안” 내지는 “우호관계 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문건은 이어 “이미 계속 중인 (청와대의) 주요 관심사건” 중 “사법부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있는 사안(앞서 언급한 원세훈 사건 등)들”에 대해 “사건 처리 방향과 시기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건의 맥락으로 볼 때 사법부는 자신들이 청와대에 ‘협력’할 수 있는 재판에 대해 그 ‘방향과 시기’를 조정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심각한 문건은 또 있다. ‘기획재판’ 의혹이다. 2015년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광주지법 김모 부장판사는 지역구에서 당선된 통합진보당 의원의 의원직을 상실하게 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이 문건에는 “법원이 개입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감당하기 힘든 파장이 있을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를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이 기획판결을 성공시킬 방안으로 “보수적 색채가 강하고 여당(당시 새누리당)이 단체장인 지역”을 “소제기 후보지역”으로 검토까지 하였다.

법원의 행정부를 향한 이런 ‘협조적’ 자세는 일종의 ‘신호’였다. 문건 『상고법원 설명 자료(BH)』에 사법부의 은밀한 속내가 드러난다. 이 문건에 먼저 나오는 것은 “VIP의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 실질적 보장”이다. 이들은 상고법원 인사임명의 방법으로 “상고법원 판사 후보자추천위원회”를 구성하며 이 위원회 구성은 VIP, 그러니까 대통령 측이 “사실상” 과반수 추천을 하겠다는 방침을 정한다. 그러면서 판사 임명에도 “대통령의 의중을 관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판사의 실질적 임명권한을 포기”하겠다고도 기술했다. 상고법원을 설치하면 인사권을 대통령에게 통째로 넘겨주겠다는 제안인 셈이다. 이는 당시 우병우가 사법 측에 제안했던 내용, “VIP에게 상고법원 판사에 대한 지명권을 달라, 그러면 상고법원 도입에 찬성할 수 있다”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문건의 다음장은 더욱 충격적이다. 사법부는 상고사건 대부분을 상고법원에서 처리한다면서도 ①정부 운영에 영향 미치거나 ②공공의 이익과 관련되었거나 ③국가적ㆍ사회적 이목 집중되는 사건은 여전히 대법원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사건 분류 단계에서 특정 사건을 대법원 심판사건으로 정해 달라는 공식적 의견 개진 가능”하게 제도를 도입할 것이며 “제도 취지에 따라, 정부 의견은 대부분 수용ㆍ반영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정부의 (대법원 심판 과정에서의) 공식적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이 스스로 정부의 재판 개입을 허용하겠다는 이야기다.

재판부의 ‘삼권분립 훼손’ 의혹은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만 그치지도 않는다. 문건 『이정현 의원 면담 주요 내용』 등을 살펴보면 사법부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정현 의원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고법원 설치’를 설득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이정현 의원이) BH에 바로 보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보고 직후, 이정현 의원께서 BH 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게 바로 전화통화를 하였으나 연결이 되지 않음”이라고 언급한다. 사법부가 행정부뿐만 아니라 의회까지 동원해 ‘거래’를 시도하려 했던 정황이다.

 

왜 양승태는 그렇게 ‘상고법원’에 열을 올렸을까?

이 모든 정황을 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양승태는 왜 그렇게까지 상고법원에 열을 올렸을까 하는 점이다. 양승태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내심을 당장 무어라 단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상고법원’이 추진되면 양승태가 얻게 되는 이득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그 내심을 추정할 수가 있다.

 

ⓒpawel.gaul via Getty Images

 

먼저, ‘대법관의 업무가 너무 과중하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방안은 앞서 말했듯 ‘대법관 증원’과 ‘상고법원 설치’ 두 가지였다. 두 방안은 여러 차이점이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인사 규모였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작성한 관련 문건을 보면 상고법원에 필요한 법관은 최소 50명에서 100명이다. 대한변협은 “(상고심 법관은) 최소 차관급 지위를 부여받게 될 것이므로 최소 50명 이상의 차관급 자리가 신설되고, 여기에 재판연구 인력까지 포함한다면 현재의 대법원 규모보다 인력과 조직 면에서 훨씬 큰 법원을 새로 만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한변협이 제시한 ‘대법관 증원’ 안에서 추가로 필요한 대법관은 12명이었다.

중앙일보는 2017년 기사에서 법원의 인사적체와 관련해 “판사 정원은 2011년 2844명까지 늘었지만 110명 정도(2016년 127명)인 고법부장(차관급) 자리는 제한돼 생긴 인사적체는 이미 고질병이었다”고 평가한다. “고법부장 승진의 문이 좁아지면서 ‘배석판사→단독판사’ ‘단독판사→지법 부장판사’ 이동 기간도 길어졌다”며 인사적체로 인해 판사들의 불만이 심해졌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단순히 ‘인사적체 해소’만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현행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임명하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상고법원 판사들에 대한 임명권은 현재 대법원을 중심으로 피라미드식 서열구조를 이루고 있는 법원 조직 시스템을 고려할 때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독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한변협의 분석이다. 대한변협은 “대법원장의 인사권에 종속하는 사법부의 판사들이 사법부 내부에서 법관으로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심각한 우려를 낳게 되고 이것은 전관예우 폐해와도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배종호 세한대 교수도 YTN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최근의 문건들을 보면 권력을 향한 집착이 굉장히 강하다라는 걸 느낄 수가 있어요. 제가 볼 때는 거의 권력에 대해서 중독된 그런 모습까지 느껴지거든요. 그게 무슨 얘기냐면 상고법원을 설치를 하게 되면 사법부의 인사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대법관이 13명이니까 숫자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나머지 판사들은 결국은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 사실상 모든 인사권을 양승태 대법원장이 쥐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잘 보여야 되고 또 계속해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돼야 되니까 다 눈치를 봐야 되는 상황인데 상고법원을 설치하게 되면 상고법원 판사 자리가 생기는 거거든요.

그러면 더 많은 인사권을 갖게 되거든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통제하게 되고. 그러니까 결국은 법관을 통제하게 되고 그러면 법관을 통제하게 되면 뭘 통제하게 되냐면 재판을 통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판을 통제하게 되면 재판을 가지고 정치권력 또는 나머지 모든 권력과 거래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결국은 본인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쥐락펴락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욕심 또는 망상이 느껴지는 그런 대목입니다.

다음은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말이다.

″상고법원이라는 것이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가지도록 돼 있는 것 아닌가. 상고법원이 이뤄지면 대법원장은 더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양 전 대법원장) 퇴임 이후에도 본인이 심어놓은 판사들 라인에 의해서 사법부를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승태 사법 왕국이 될 것이고 이것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 KBS뉴스 , 2018.08.01

 

즉, 양승태의 의도를 선해하자면 그는 그간 누적돼 온 사법부 인사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으로서 자신의 실적,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법부 내부에서 골머리를 싸고 있는 인사적체라는 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그 방법이 조급했고 또 불의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문건에서 드러난 양승태의 상고법원에 대한 열망은 너무나 과하며 어떻게 보면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사법 왕국”을 만들고자 했다는 안민석 의원의 말을 정치적 수사로만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양승태 사법부가 훼손한 것은 재판 몇몇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근간이다.

문건에서 나온 정황을 다시 요약해보자. 사법부는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청와대를 공략대상으로 정한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재판부에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그들은 판단했다. 재판부가 그렇게 판단한 데에는 당시 민정수석, 그러니까 검찰 출신이었던 우병우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문건에도 우병우와 관련해 “민정수석의 검찰중심적 사고”라고 언급된 부분이 있다. 재판부는 청와대와 접촉하기 위한 여러 경로를 고민했으며 그중 하나가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정현 전 의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정수석의 반대로 청와대 직접 공략이 여의치 않자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정현을 이용해 청와대와 ‘거래 루트’를 뚫고 난 뒤 거래 대상자가 가장 좋아할 물건, 대표적으로 당시 박근혜 의원을 직접 겨눈 ‘국정원 댓글 사건’ 이나 ‘상고법원 인사권’ 등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75년, 대법원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대규모 지하조직인 인민혁명당을 조직해 국가 변란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서도원 등 8명의 항소를 기각했다. 기각 결정 18시간만에 이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법살인’이라고도 불렸던 ‘인혁당 사건’이다. 사법부는 2008년, 이 사건에 대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며 재심에서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삼권분립은 현대 국가라면 어김없이 채택한, 채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는 단순히 ‘권력을 세 개로 나눈다’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권력이 그렇게 분리되지 않으면 국민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다. 인혁당 사건은 군부정권의 사법부 장악 결과로 일어난 사건이다. 바꿔 말하면 삼권분립의 원리가 훼손된다면, 사법부의 합법적 살인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과장이 아니라 우리가 50년도 지나지 않았던 과거에 겪은 일이다.

법원이 작성한 문건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주권자로부터 선출되지 아니하여 직접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판결에 대하여 어떠한 정치적,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도 않는 법관에 대하여 불가침의 독립성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이유는 국민의 신뢰”

사법부의 존립 기반이 정말 ‘국민의 신뢰’인지는 차치하고, 양승태 대법원이 훼손한 것이 삼권분립만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제 우리는 저 헌법 제103조의 선언, “법관의 양심”을 어떻게 신뢰해야 할까? 법원은 현재 사법농단과 관련해서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을 기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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