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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공유재의 운명

ⓒLiyao Xie via Getty Images
ⓒhuffpost

2017년, 러시아 10월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많았지만, 정작 혁명이 남긴 교훈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 교훈은 레닌과 트로츠키 사이에 있었던 특별한 협력과 관계된 것이다.

1917년 2월 레닌은 혁명의 기회를 감지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어쩌면 수십년 동안 혁명의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레닌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음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와 뜻을 함께하는 이는 없었다. 당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레닌을 조롱했다.

레닌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당의 노멘클라투라(특권 관료)를 우회하는 동안, 폭발적인 기세로 성장하던 러시아의 풀뿌리 민주주의 속에서 레닌의 호소가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대도시 전역에서는 지역위원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이들은 “합법” 정부의 권위를 무시한 채 자신들 손으로 직접 일을 처리했다. 이것이야말로 10월혁명에 대해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소수의 헌신적인 혁명가 그룹이 쿠데타를 성취했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신화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은 여기에 일련의 진실이 담겨 있다. 혁명의 기회가 다가왔다는 레닌의 생각을 볼셰비키 당이 받아들였을 때, 당 지도부는 대중 봉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반면, 트로츠키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는 ‘블랑키주의’로 여겨질 만한 입장, 즉 소수의 훈련받은 엘리트가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었다. 레닌 역시 결국 트로츠키의 입장을 지지했다. 레닌은 트로츠키의 입장이 블랑키주의가 아님을 다음과 같이 변호했다.

“트로츠키의 의견은 블랑키주의와는 무관하다. 군사적 음모란 특정 집단의 정당에 의해 조직되지 않고, 그것이 일반적인 정치 상황과 특히 국제적 상황을 무시할 때만 가능한 게임이다. 모든 측면에서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군사적 음모와 무장봉기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편 트로츠키는 대중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가 혼란 상태의 무질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소수의 잘 훈련된 혁명가 그룹은 바로 이 혼란 상태를 잘 활용하여 권력을 공격하고, 대중이 스스로를 조직화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젖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그 소수 엘리트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대체 어떤 의미에서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인가. 트로츠키 사상의 탁월함이 여기에서 분명해진다. 쿠르치오 말라파르테의 <쿠데타의 기술>(1931)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케렌스키의 경찰과 군대는 관공서, 마린스키궁 등 국가의 관리 조직과 정치 조직을 방어하는 데 특별히 신경을 기울였다. 트로츠키는 이 같은 실수를 알아차리고, 국가 및 지방 정부의 기술적인 부분만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트로츠키에게 봉기는 오직 기술의 문제였다. 트로츠키는 ‘현대 국가를 전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돌격대, 기술 전문가, 무장 대원’이라고 주장했다.”

트로츠키는 국가권력의 물질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철도, 전기, 물 공급 시설, 우편 등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기반 없이 국가권력은 작동할 수 없을 터였다. 동원된 대중은 경찰과 군대와 대치하거나, 겨울 궁전을 공격하게 하라(이러한 행동은 사실 핵심과는 무관하다). 핵심적인 행동은 소수의 잘 훈련된 이들이 행할 것이다. 우리는 도덕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관점에 빠져 이러한 방식에 대해 쉽게 비판하고 마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우리는 이를 오늘날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냉정히 분석해야 한다.

포스트 휴먼 권력의 시대로 특징지어지는 오늘날의 환경 속에서 우리의 삶은 점차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트로츠키의 통찰력은 새로운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행위는 대부분 디지털 클라우드에 등록된다. 이는 우리의 행동과 감정 상태를 추적하며, 우리를 영구적으로 평가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느낄 때(즉,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웹의 세계를 유영할 때), 우리는 완전히 “외화”되며, 교묘하게 착취당한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익숙한 슬로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위기에 처한 것은 우리의 친밀한 삶에 대한 통제만이 아니다. 운송, 보건의료, 전기, 물 등 오늘날 모든 것은 디지털 네트워크에 의해 규제된다. 따라서 웹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공유재이며, 웹의 통제를 놓고 벌이는 투쟁이야말로 오늘날의 투쟁 그 자체다. 지금 우리의 적은 사유화된 동시에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공유재, (구글·페이스북 등의) 거대기업, (미국 국가안보국과 같은) 국가안보기관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제 트로츠키가 들어설 여지는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의 기능과 통제 메커니즘을 지탱하는 디지털 네트워크야말로 권력을 지탱하는 기술적 그리드(연결망의 총합)의 궁극적 표상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국가의 열쇠가 정치적·행정적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 서비스에 있다는 트로츠키의 생각에 새로운 현실성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트로츠키에게 우편, 전기, 철도 등을 장악하는 것이 혁명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작업의 핵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디지털 그리드를 “점거”하는 일이야말로 국가와 자본의 힘을 분쇄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핵심적이다.

트로츠키에게 있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잘 훈련된 소수의 돌격대, 기술 전문가, 무장 대원”을 동원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처럼, 지난 십년이 남긴 교훈은 (스페인과 그리스에서 있었던) 대규모 시위나 (정교한 정치적 비전을 지닌) 잘 조직된 정치운동만으로는 부족하며, 우리에게는 (해커나 내부고발자와 같은) 헌신적인 “엔지니어”로 이루어진 소수의 부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임무는 지금 현재 사실상 거대기업과 국가기관이 통제하고 있는 디지털 그리드를 그들의 손에서 “탈취”해내는 것이다.

위키리크스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고, 이제 우리는 마오쩌둥적인 구호를 따라야 한다. ‘온갖 위키리크스가 자유롭게 만개하게 하라.’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 우리의 디지털 공유재를 통제하는 이들이 어산지에게 보이는 공황과 분노는 그러한 활동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증거다. 이 싸움에서는 많은 모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적과 공모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을 것이다(어산지가 푸틴의 앞잡이라는 비난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일에 익숙해져야 하며, 여기에 강도를 더해 되받아칠 수 있어야 한다. 레닌과 트로츠키 역시 독일인들과 유대인 은행가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비난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그러한 활동이 우리 사회의 기능을 방해함으로써 수많은 이들의 삶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디지털 그리드를 선택적으로 폐쇄하여 우리의 저항을 고립시키고 억압하려는 이들은 다름 아닌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대중의 불만이 폭발하면, 그들은 가장 먼저 인터넷과 이동전화를 차단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편-특수-개별로 이루어진 헤겔적 삼단논법의 정치적 등가물이다. 보편은 포데모스(스페인 급진주의 정당) 스타일의 대규모 격변을, 특수는 인민의 불만을 가동할 수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번역해낼 수 있는 정치조직을, 개별은 “기술적” 측면에서 활동하면서 국가 통제와 규제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엘리트” 그룹을 의미한다. 이 세번째 요소가 없다면 처음 두 요소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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