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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의 박시장이 아니라, 그 옆에 비서들이 궁금하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강북구의 한 옥탑방에 살고 있다

ⓒhuffpost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 단지에서 장터가 열린다. 이 무더위에 짐을 끌고 돌아다니는 상인들은 더위를 조금이라도 견디기 위해 손선풍기를 목덜미에 대고 있지만 “더운 바람만 나오네”라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중얼거린다.

채소 상인은 더위 때문에 열무를 못 가져왔다고 한다. 이번주에는 많은 상인들이 아예 오지도 않아 장이 제대로 서지 못했다. 땡볕에서 도무지 장사를 할 수 없어서다. 식료품은 다 망가질 수 있고 주민들은 밖으로 나오질 않아 팔리지도 않는다. 정말 더위가 사람 잡는 요즘이다.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고 건강을 위협한다. 지구를 통째로 얼음물에 빠뜨리고 싶은 날씨다.

나는 이 폭염 속에서 이사를 했다. 에어컨부터 달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싶었는데, 2주는 기다려야 한대서 결국 선풍기만 한 대 들고 왔다. 청소를 하고 짐을 들이는 동안 내 몸에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땀이 흘렀다. 결국 밤 11시에 나는 잠옷 바람에 세상만사 다 필요 없다는 얼굴을 하고 병원 응급실에 앉아 있었다. 옥탑방에서 창문 열어놓고 ‘자야 하는’ 서울시장의 보좌관들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이 무서운 날씨 속에서 굳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에 따른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서민의 삶’에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분이었구나, 이런 괴리감이 든다. 설령 쇼라 하더라도 쇼는 당연히 필요하다. 쇼를 해서 문제가 아니라 쇼를 너무 못해서 문제다. 쇼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효과가 있는데 오히려 괴리감만 낳는 쇼다. 대통령이 선풍기를 보내주는 시장의 ‘서민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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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강북 옥탑방살이는 책상과 현장에 대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가 만들어낸 발상으로 보인다. ‘현장’은 물리적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책상 위 보고서가 2차원이라면, 3차원의 내용을 전달하지 못하는 보고서가 부실한 탓이 아닐까. 3선 시장은 왜 직접 서민의 삶을 체험할까. 아니, 체험(생활이라고는 하지만)이 과연 가능하긴 할까.

물리적 환경만으로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진 않는다. 나는 절에서 한 달 동안 지낸 적이 있지만 결코 승려들의 삶을 알 수 없다. 안 살아본 사람보다는 보고 들은 게 있겠지만 큰 의미가 없다. 나의 일상과 먼 환경을 경험하면서 내 방식대로의 느낌과 발견이 있을 뿐 절에서 ‘사는’ 이들의 삶에 접근했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속세로 당연히 돌아갈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끝을 아는 생활과 끝을 모르는 생활은 범접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든다. 대부분의 고통은 끝을 알 수 없어서 고통이다.

부엌이 없는 방에 있어도 시장에게는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 에어컨 없는부엌에서 뜨거운 요리를 하거나, 매일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이 무더위 속에서처리하거나, 반지하의 곰팡이를 제거하거나, 이런 생활을 시장이 직접 해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동네에 임시로 다양한 민원 창구를 둘 수도 있다. 옥탑방 ‘생활’을 보여주며 모든 경험의 주체가 되려는 욕망은 경험한 자의 목소리마저 빼앗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이 아니라, 비서들의 경험이 오히려 더 궁금하다. 24년 만의 더위 속에서 ‘모시는 사람’을 옆방에 두고 잠을 자는 비서들의 일상은 어떨지. 게다가 시장의 부인은 왜 이 폭염 속에 시장과 함께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견뎌야 하는지, 그게 궁금하다.

*이 글은 한겨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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