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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01일 16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8월 01일 16시 08분 KST

30대 싱글여성인 내가 "시골 살겠다"고 하면 듣는 질문들

[엄마, 나 시골 살래요⑤]

huffpost

해외 석사를 마친 30대 싱글 여성이 시골살이를 선택했다. 저자는 12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던 중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농촌생활학교를 발견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등록하여 6주간 합숙하며 귀농·귀촌의 현실과 농촌의 민낯을 확인했다. 저자는 자신처럼 망설이고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빌려 농촌생활학교의 교육 기록을 정리했다.

· 난 삼십 대 싱글 여성이다.

· 난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의 유년기를 보냈지만, 농사일은 모르고 자랐다.

· 난 전문직 혹은 기술직 일이 아닌 사무직 일로 서울에서 밥벌이를 하고 살았다.

이 문장들은 귀농·귀촌을 해 보고 싶어서 농촌생활학교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면, 쏟아지는 대표적인 질문들에 대한 나의 주요 답변이다. 즉, 사람들은 귀농·귀촌에 도전하는 나에게 결혼했는지(해서 밥벌이를 책임져줄 남자가 있는지), 농사를 지어 봤는지(더 정확하게는 부농의 딸이나 며느리쯤 되는 금수저인지) 혹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지를 묻는다. (나이가 많은 동기들에게는 여기에 추가로 벌어놓은 게 좀 되느냐 혹은 퇴직연금이 나오느냐는 것을 묻기도 한다) 어쨌든 이 모든 질문을 요약하면,

“농사짓는 것 말고도 먹고살 수 있는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가?”

란 질문이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없다.”

이다. 그러면 백이면 백,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냥 서울 가서 살라고들 한다. 농사만 지어선 먹고살기 힘들고, 농촌에는 일자리가 없으니, 아직 젊은 처자일 때 도시로 가서 계속 하던 일도 하고 결혼도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먼먼 미래에 돈도 좀 모으고, 퇴직하고 나서도 농촌에 살고 싶으면 그때 전원생활 하러 와도 늦지 않다는 결론.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나는 이미 도시에서의 삶이 아
닌 농촌에서의 생활이 나의 일상을 더 만족시켜 주리라 생각하기에 이런 대화는 그저 웃으며 넘긴다.

내가 어른들의 충고/권유/협박을 웃어넘기며 배짱을 부리는 것은 아마 아직 현실에 직접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반농반X라는 대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오미 나오키는 다음과 같이 반농반X를 제안한다.

“하루 여덟 시간을 일한다면 그 절반은 자신의 먹을 것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재배하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무언가 수입이 되는 일에 할애하면 된다. 그 시간을 엄격히 5 대 5로 나누기보다 4 대 4 정도로 나누고, 나머지 2는 마음껏 놀거나 자연을 가까이하는 데 쓰면 좋을 것이다. 그런 어중간한 방식으로 먹고살 수 있겠느냐고 질책할지도 모르지만, ‘먹고산다’는 건 원래 말 그대로 자신과 가족의 심신을 적절한 음식으로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까 가장 먼저는 기본 소비를 줄이고, 먹거리는 소규모 농사를 통해 자급자족의 비율을 높이고 나머지 필수불가결한 재화의 부분만 소득용 일을 통해 충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는 방식이다. 현실에 직접 부딪히지 않은 나는 ‘정말정말 필수불가결한 돈이 얼마나 되겠어’ 하며 팔짱을 꼈다가, ‘그 정도 돈이야 뭐 내가 못 벌겠어?’ 하면서 스스로 안심시켜왔다.

그런데 점점 구체적인 농촌 생활을 계획하려니, 그 정도 돈을 벌기 위해서 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무시무시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퇴직을 했고 모아둔 돈으로 전원생활을 꿈꾸거나 대규모 전업농 투자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농촌에서의 돈벌이 혹은 일자리에 대해서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을 좀 정리해 봤다.

농촌에서 재화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당제 일을 하는 것 같다. 내 농사로 필요한 재화를 충당하면 가장 좋지만, 그러려면 꽤 대농이 되어야 하고 땅을 구하거나 기본 시설을 만들기 위한 밑천도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나의 먹거리를 위한 농사 정도만 짓고, 한동안은 다른 농사에 필요한 일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농촌에 와서 생존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육체노동에 대한 편견
에서 스스로 해방되어야 하는 큰 과제도 있고, 무엇보다 농사일을 하는 일당제인 만큼 몸이 고되다. 만약 농사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몸이 고된 일을 도저히 못하겠다면, 어떻게 시골에서 돈벌이를 할까? 시골에도 농사일이 아닌 일자리는 있다. 하지만 그 일자리가 도시에서의 형태로 존재하진 않는다.

사례 1

나는 평소에 살아보고 싶은 지역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B군 군청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중 교육지원청에서 사무보조 계약직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면 연고가 전혀 없는 B군에 정착하는 데 여러모로 이득이 많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동안 해온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아 일하기 편하고 안정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려고 보니 이상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우선은 채용 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했다. 금요일 자로 공고문이 올라왔는데 그다음 주 금요일이 모집 마감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원서 제출은 반드시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메일이나 우편 제출은 불가하다는 것. 마감 이틀 전에 이 공고를 봤으니 내일이라도 다녀올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늦게 봤더라면 지원도 못했을 거라 위로하며 나는 다음 날 버스에 올랐다.

1시간 반 버스를 타고 B군에 도착한 뒤 교육지원청까지 20분을 걸어갔다. 담당자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사무보조 채용 지원서를 제출하러 왔다고 했더니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건가?’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담당자를 찾았고, 그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한 중년 여성이 내게 와서 말했다.

나는 빈자리에 놓인 담당자의 명패를 확인하며 서류 봉투를 놓았고, 그때 바로 옆 책상에 앉아 있는 20대로 보이는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사무실을 나가려는 찰나 아까 그 중년 여성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 전임자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전임자가 있어도 자리가 공석이 되니 채용 공고가 나온 것일 텐데… 그 전임자와 경쟁을 해야 한다니!? 어리둥절한 내 표정에 이해를 더해 주기 위해 그녀가 덧붙였다.

헐…. 그러니까 정리하면, 비정규직 세상인 우리나라에서는 공공기관에서도 이 편법이 그대로 적용 중이었다. 1년 이상 채용하여 정규직화하지 않기 위해 매해 계약을 새로 하는데 그 사실이 (공공기관인 만큼) 불법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무 의미 없는, 즉 아무도 보지 않으면 좋을 공고를 버젓이 게시한다. 의무사항이므로. 지원서를 제출하지 말라는 의미로 소리소문 없이 게시한 공고를 물정 모르는 나
는 봐 버렸고, 내 농촌 생활의 시작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지원서를 들고 2시간 넘게 걸려 찾아온 것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제야 담당자 바로 앞자리 청년의 눈빛이 떠올랐다. 2년째 잘 버티고 있는 그 청년에게 나는 그야말로 불청객이었을 것이다. 중년 여성이 물었다.

읽히지 않을 내 지원서가 그 책상에 놓여 있을 게 마음이 아팠던 건지, 아까 그 청년의 눈빛에 미안했던 건지 나는 다시 그 자리로 가서 내 지원서를 집어 들고 나왔다. 교육지원청에서 돌아오는 2시간 동안 나는 복잡해진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며칠 뒤 귀촌 선배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

이 상황은 내가 교육이 끝나고 바로 귀농·귀촌이 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컸을 때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나는 내가 바로 농사로 돈벌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황파악을 했던 터라 농촌에 내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보이면 그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반농반X하는 방식으로 시골 생활을 해 보겠다는 길은 정했지만, 막상 나의 X를 찾다가 조급해져 실수를 한 것이다. 농촌에서의 삶이란 어쩌면 삶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인데, 나는 몸만 농촌으로 옮기고 생각은 여전히 도시의 틀에 박힌 방식으로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월급을 따박따박 받으며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지는 방식을 습관처럼 다시 찾고 있었으니…. 고용되는 수동형 방식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은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더군다나 시골에서는 고용이 도시의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골에도 안정적인 일자리들이 있긴 하다. 관공서나 교육기관, 꽤 규모가 큰 영농법인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일자리들은 인터넷에 채용 공고가 떴다고 하더라도 이미 구두로, 인맥으로 일할 사람이 대충 결정된 경우가 많다. 물론 도시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지만, 시골은 더욱 심하다. 실제로 공고를 내도 그 공고를 보고 지원하는 사람이 적기도 하거니와, 알고 지낸 누군가 중에서 그 일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떠올리거나 추천받는 것이 시골에서는 더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시골에서는 인터넷에 채용 공고가 떴을 때 그 자리가 정말 지원 가능한 자리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듯하다. 지원서를 제출하기 전에 확인 전화라도 한 통 해야 나처럼 헛걸음치는 경우가 없으리라. 그리고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기보다는 차라리 교차로 같은 지역 신문을 활용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스펙(?)을 소문내고 다니는 것이 더 좋다. ‘난 어떤 능력이 있다’ 혹은 ‘나는 왕년에 이런 이런 일을 하던 사람이다’처럼 내 기술이나 경력을 알리다 보면, 그와 연관된 일자리가 있을 때 전화를 받게 될 가능성이 꽤 있다.

그렇다면 반농반X에서 X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선배A의 경우를 보면 조금씩 길이 보인다.

사례2

현장탐방 교육 중에 만난 M마을 이장님은 자기 마을에 귀촌한 A 선배 이야기가 나오자 한마디 하신다.

A선배는 농촌생활학교 교육이 끝나고 바로 순창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사무직 생활을 했던 A선배는 처음부터 농사로 먹고살려고 시골살이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농사에는 큰 흥미가 생기질 않았기에 텃밭마저 그냥 내팽개쳤다. 하지만 시골이 좋았고, 그렇게 놀다 보니 어느새 아는 사람들도 늘고 정보도 늘고 일도 늘었단다. 그가 하는 ‘일’을 정리해 봤다.

1) 순창군이 운영하는 관광해설사 프로그램이 있는데, 관광해설사중 영어로 안내가 가능한 사람을 구한다니 지원해 보라는 소식을 접했고, 그렇게 해서 A선배는 관광객들에게 순창군을 소개하는 일을 시작했다. 매일 9시 출근 6시 퇴근할 필요 없이 투어 신청이 있을 때 팀원들과 스케줄을 조정한다.

2) 귀농한 또래들과 우리 콩을 이용한 두부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모았고, 협동조합 형태로 두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두부를 만들어 순창 사람들에게 판다.

3) 순창 귀농·귀촌자들을 연결해 주는 재미있는 장(場)을 만들었다. ‘촌빨작렬 시시콜콜 순창골목장’을 줄여 ‘촌장’이라 부르며, 매달 한 번 연다. 판매자들의 신청을 받고, 일정 공지를 하며 촌장을 좀 더 알리고자 한다.

A선배가 하는 일 중에는 돈벌이가 확실히 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1)의 경우는 기존에 있던 일자리로 채용에 응시하여 하게 된 돈벌이다. 하지만 2)와 3)의 경우에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일들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자리다. 무엇보다 A선배는 반농반X에서의 X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그렇다. 나도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는 그 직장생활 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쥐어짜야 퇴근 후 취미활동을 좀 하거나 주말에 봉사활동을 약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의 일에 모든 일상을 지배당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귀농·귀촌하려는 것 아니었나? A선배를 보니 재미를 느끼고 관심 있는 있을 여러 개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었다! 물론, 큰 돈벌이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큰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조금씩 내게 수입원이 되는 일을 여러 개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멍청하게 또 제자리로 돌아가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정신 차리자며 귀농·귀촌 참고서 <시골 빈집에서 행복을 찾다>를 찾아 다시 읽어 본다. 나보다 어리지만, 시골 생활 선배인 이케다 하야토 역시 이런 사실들을 이미 강조했었다.

01. 한 가지 일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지만, 여러 일을 하겠다는의지가 있으면 시골에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

02. 본래 일이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임을 깨닫자.

03. 지방은 자본주의의 미개척지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시골에는 정기적이고 정규적인 고용은 없을지 모르지만 만들어 볼 수 있는, 시골이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일자리는 분명히 있다. 고용주에게 월급 받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다양한 수입원을 만드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기술이나 경력도 돈벌이가 되지만, 취미나 관심사도 돈벌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삶이 훨씬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농촌의 일자리 목록을 공개하고 싶다. 그중에는 도시에는 없는, 아니 지금까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일자리도 있다. 고용은 없지만 일자리는 있는 시골. 두렵지만 흥미로운 시골에 가기로 난 결정했다.

* 에세이 ‘엄마, 나 시골 살래요!(이야기나무)’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