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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이제 거창한 깃발은 접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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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를 “민중과 밀착된 삶을 살고 민중의 언어로 얘기한 우리 시대의 예수”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50년 된 삼겹살 불판을 바꿔야 한다”는 촌철살인의 비유와 유머, 위트는 그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실천적 리얼리스트였기에 발화(發話)했을 것이다. 

노회찬은 2012년 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소환했다. 그는 “서울 구로구의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와 4시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를 타고 직장인 강남 빌딩 부근의 정류장에 내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 달에 85만원 받는 투명인간인 이분들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라며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한다”고 약속했다.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었던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창업주도 연설 동영상을 보고 흐느껴 울었고, 정의당원으로 가입하겠다고 했다. 

이 동영상을 최저임금의 수렁에 빠진 문재인 정부가 보기를 권한다. 지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중소기업인들은 2년에 걸쳐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올라가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청년들은 편의점 알바도 구하기 힘들어졌다. 경제의 모세혈관이 막히면서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의 지난 27일 광화문 호프 대화에서도 “업종별·지역별로 속도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백번, 천번 맞는 얘기다. 노회찬 식으로 먼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으면 당연히 반영됐고, 지금의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갈수록 벌어지는 소득 격차를 줄이겠다는 데는 찬성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 자체가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단기간에 1만원으로 끌어올리면 자영업자·소상공인·알바의 생계가 송두리째 흔들릴 거라는 아우성을 이 정부의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러고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노회찬은 세상과 작별하기 사흘 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저임금을 단기간에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문재인(2020년까지), 안철수·유승민(2022년)뿐 아니라 정의당(2019년)의 공약이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즘이라고 고백했다.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경제활동인구의 28%로 미국의 4배인데 카드 수수료를 1%대로 낮추거나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고쳐봐야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음식점을 창업해 1년도 못 버티고 망하는 사람이 70%나 되는 현실에서 노동시장을 개편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 같은 답답한 정책에 노회찬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정부는 수단에 불과한 최저임금 1만원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소득격차 축소’라는 목표를 실현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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