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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성폭력 피해자는 왜 경찰이 내편이 아니라고 느꼈나?

공백을 메꿀 방법이 필요하다

  • 박세회
  • 입력 2018.08.01 14:30
  • 수정 2018.08.01 18:21
ⓒNews1

지난 26일에 올라와 2만3천 번이 넘게 리트윗된 게시글이 있다. ”저는 고층 오피스텔 원룸에 혼자 사는 20대 여성입니다. 방의 한 면이 창문으로 되어있으며 그 창은 왕복 10차선 대로변을 향하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트윗이다.

허프포스트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 글을 올린 A 씨(26)는 지난 25일 새벽 1시에 경찰이 들고 찾아온 카메라를 보고 놀랐다. 카메라 안에는 자신이 나체로 등장하는 8초가량의 영상이 들어있었다.

중앙일보의 보도를 보면 ”경찰은 300m 정도 떨어진 6층 건물 옥상에서 한 40대 남성이 DSLR 카메라로 최씨의 모습을 불법 촬영했다고 알려왔다”고 되어 있다. ”해당 건물에 거주하는 직업이 있는 30~40대 남성”이라는 말이 피해자가 들은 가해자 정보의 전부다. 다음날까지 자세한 영문을 듣지 못한 채 A씨는 혹시 길거리에서 가해자를 만날까 봐 두려워했다.

A씨는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의 다음날에도 여러 가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저 먼 거리에서 동의 없이 자신을 촬영한 범죄자가 임의동행으로 3~4시간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A씨는 경찰이 가해자의 집을 뒤져서 다른 영상을 찾아냈는지, 아니면 그런 시도는 했는지, 자신 이외의 또 다른 피해자는 없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A씨는 경찰의 태도에도 놀랐다. 허프포스트에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고 얘기했을 때 그 경찰은 제게 ‘밖에 나갈 일이 있느냐’라고 물었다”라며 ”청문감사관실에 항의하니 그제야 스마트 워치를 신청하면 줄 수도 있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고 밝혔다. A씨는 ”밖에 나갈 일이 있느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 ‘#경찰이라니_가해자인 줄’이라는 해시태그가 생각났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해당 해시태그는 성폭력 대처에 안온한 경찰을 지목해 작년 한해 유행한 바 있다. 

관련기사 : 400m 거리에서 여성의 나체를 망원 불법촬영한 범인이 잡혔다

A씨 만의 사례가 아니다

피해자와 경찰은 온도차이는 A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성폭력 범죄, 특히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들은 사법기관을 찾았을 때 자신이 받은 피해의 크기와 경찰이 상정한 피해의 크기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고 느낀다. 연합뉴스의 보도를 보면 불법촬영 피해자들은 특정인을 고소하러 갔을 때 고소장을 직접 쓰고 피해 사실을 일일이 캡처해 가고도 ”모르고 그랬을 수도 있는데 합의할 생각 없느냐”는 말을 듣는다.

경찰서에 가서도 남자 경찰이 몰카나 악플을 들여다보는 수치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런 건 형사처벌이 안 된다’며 피해 사실을 줄이는 경찰의 사무적 태도에 상처를 받기 일쑤다. - 연합뉴스(6월 16일)

피해의 크기에 따라 범죄의 경중이 갈리고 수사기관의 대응은 달라진다. 이번 사건에서 역시 경찰은 ”원칙대로 했다”는 입장이지만 피해자는 ”왜 구속 수사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한국의 법이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이런 틈새가 생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다혜 연구위원(법학박사)은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정도를 생각하지만, 법원은 ‘행위자가 어떤 행위를 했느냐’를 평가하기 때문”이라며 ”(행위를 기준으로) 아직 우리 법에는 신체적인 피해가 있거나 물리적인 접촉이 있어야 더 중한 범죄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우리 법은 강체 추행(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과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촬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중 전자를 더 중한 범죄로 본다. 장 연구원은 ”이는 (텀블러, 카카오톡, 웹하드) 등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가 퍼지는 성폭력 피해의 양상을 법이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최근의 디지털 성폭력 범죄는 유포의 후유증으로 트라우마가 신체적으로 발현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이 범죄가 워낙 많다는 것 역시 불법촬영을 ‘가벼운 범죄’로 보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장 연구위원은 ”이렇게 촬영된 영상이나 이미지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웹하드 등의 시스템 속에서 한국형 포르노물로 소비된다. 이런 문화가 퍼져 있으니 불법촬영을 심각한 범죄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며 ”특히 주로 남성들이 이런 문화를 소비하다 보니 해당 범죄를 바라보는 성별 차가 무척 크다. 본인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범죄의 경중을 바라보는 데 있어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News1

공백이 있다

최근 법의 해석이 바뀌고는 있다. 예를 들어 올해 7월에는 온라인 범죄에 처음으로 강제추행죄가 적용됐다. 경찰은 2015년부터 2018년 4월까지 랜덤 채팅앱을 통해서 알게 된 여성 6명으로부터 신체 부위가 노출된 사진과 영상을 전송받은 뒤 추가로 사진을 보내지 않으면 이것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남성을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했다.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이 없더라도 강제추행이 성립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건 법의 해석이나 적용이 아니라 법 그 자체다. 현행 불법촬영 범죄의 수사와 처벌 과정을 보면 명백한 공백이 존재한다. A씨와 유사한 케이스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최초 신고자가 “2주 전에도 건물 옥상에서 카메라를 들고 수상한 행동을 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범인의 집 안에 있는 다른 저장매체를 들여다보고 여죄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장 위원은 ”현재 법실무를 보면, 이 건에서 압수수색을 하거나 구속수사를 하기는 힘들다. 카메라등 이용 촬영죄의 경우 초범이라면 벌금형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불법촬영 범죄는 재판까지 가서 유죄 판결이 나더라도 불법 촬영물을 경찰이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동일범의 재유포 피해가 꽤 있다. (불법촬영 성범죄에서는) 현재 법적인 공백 상태인 게 맞다”고 밝혔다.

여기서 ‘동일범의 재유포’는 다른 이에게 받은 사진을 전달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불법촬영으로 고소 고발을 했고, 이로 인해 가해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경찰이 회수하지 못하고 남겨둔 데이터를 다시 유포하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A씨의 케이스에서 ‘원칙대로 했다’고 답한 경찰 탓만을 할 수는 없다는 얘기기도 하다. 장 위원은 ”경찰 차원에서 더 적극적인 수사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다른 나라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임의제출의 형식으로 불법촬영한 데이터를 받아내면 나중에 법정에서 증거의 효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법 개정이 필요한 것이다.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두고 판사들이 (압수수색을) 고려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처벌의 형평성 등을 둔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장 위원은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가능하게 하려면 수사 인력이 어느 정도 확보가 되어야 한다. 유포 피해는 사이버 수사대에서 담당하고, 가해자를 특정하게 되면 그때부턴 여성·청소년 과에서 담당을 한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수사 공백을 메꾸는 법 개정과 함께) 수사 인력의 확충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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