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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올레

ⓒ한겨레21
ⓒhuffpost

희부연 바다 안개, 태평양에서 온 열풍이 훅훅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요란한 건설의 마찰음, 어디선가 옮겨온 흙들, 완전히 새로운 건물들이 일본열도의 한 도시를 채워간다. 더 튼튼한 건축물을 짓고 단단한 도로를 깔고자 하는 걸까. 7년이 지나도 복구 중인 도로와 마을 모습이 그날을 상상하게 했다. 미야기현. 마침 일본열도 서쪽엔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20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는 뉴스가 터져나왔다. 제주올레와 협약을 맺고 조성해 10월 공식 개장을 앞둔 미야기 올레를 미리 걸어보는 자리에 있었다.

폐허에서 돋아난 어린 죽순

7년 전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로 2만2000명 이상이 희생당했다는 미야기현. 고향을 떠나 잠깐 또는 영구 난민이 된 사람들의 땅이기도 하다. 마쓰시마에선 그때 어린 딸을 잃었다는 시의원도 함께 걸었다. 언제까지 슬픔만 간직하며 살아야 하나,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걸으면 외로움이 덜할 것 같다 했다. 황폐했던 숲에선 새파랗게 어린 죽순이 돋아났다. 희망처럼. 뽑히고 죽었던 자연이 스스로 치유의 힘을 드러내고 있었다. 군데군데서 쓰나미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바다를 낀 마쓰시마와 게센누마 숲길은 아름다웠고, 파도는 힘이 넘쳤다.

게센누마시 건물마다 붙은 ‘2011. 3.11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 여기까지’라는 표식들, 피난처 마크가 붙은 건물들, 높은 지대의 호텔은 피난처로 쓰였음을 기억하게 했다. 이 지역에서만 1000 명 이상이 세상을 떠났고, 200여 명이 실종됐다. “올레길을 개척하면서 쓰나미 피해가 큰 것도 알았고, 자연 회복력으로 이렇게 치유되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센누마의 한 개척자. 그는 쓰나미 때 나무가 온통 죽었지만 또 다른 자연이 살아나는 것도 봤다. 해서 길이 오래도록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길이 되었으면 했다. 아마도 희망의 올레를 보여주고 싶었으리.

“전세계에서 많은 물자를 보내왔지요. 한국 라면도 굉장히 많이 받았고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은혜를 갚는 것이며, 감사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쓰나미 때문에 자연이 회복되는 것 아닌가요. 사람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전에는 피해 지역을 관광한다는 것에 갈등이 컸다는 게센누마 관광협회장 미카미 다다후미씨. 자신도 쓰나미로 친인척을 잃었지만 손자들을 위해서도 많은 사람이 와야 마을이 활기차게 될 것이라 했다. 올레가 재해를 뛰어넘고, 슬픔을 뛰어넘는 길이었으면 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한테는 어떻든 바닥에서 일어난 그런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이런 재해를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 희망을 가지라”고. 자연이 위대한 것은 맞다. 자연재해가 닥치면 아무리 높은 둑을 쌓아도 피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이기에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쓰나미를 겪은 이 지역 사람들은 무조건 높은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쓰나미 이후 비만 오면 고지대로 올라가는 길이 여러 갈래로 많아졌다.

좌절의 쓰나미를 희망의 쓰나미로

일본과는 반복되는 정치적 갈등으로 껄끄러운 면도 있지만, 재해를 대비하는 자세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와는 재해에 대처하는 법이 다르다. 우리 땅에서도 순간의 재해로 삶이 가라앉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한반도에서도 지진 위협이 시작됐다. 문밖만 나서면 어떤 위험이 맨홀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런 재해, 쓰나미뿐이겠는가. 우리는 절대 일어나선 안 되었던 거대한 고통, 세월호의 아픔 또한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길이 실패를 줄인다. 그럼에도 희망은 사람에게 있고, 사람들이 만나는 길 위에 있음을 믿는다. 고통의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에 새싹이 돋는 것이 자연의 원리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좌절의 쓰나미를 희망의 쓰나미로 바꿔놓는 힘을 품고 있다. 해서 쓰나미를 넘어선 미야기 올레가 희망의 올레가 되기를 희망한다.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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