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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노믹스의 ‘거대한 전환’

ⓒToby Melville / Reuters
ⓒhuffpost

브렉시트로 혼란스러운 영국에서는 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제러미 코빈의 경제정책, 곧 ‘코비노믹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주로 거론되는 것들은 법인세 인상, 긴축정책 폐지, 대규모 공공투자 등이다. 자유시장 이념의 옹호자이자 세계적인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는 구조개혁 정책들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구조개혁은 40년 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노예의 길>을 손에 쥐고 총리직에 취임했던 마거릿 대처에 의해 단행된 바 있다. “경제학은 방법입니다. 그 목표는 심장과 영혼을 바꾸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의 기치 아래 노조를 공격하고 공공부문을 축소했으며, 자기책임과 극단적 개인주의의 문화를 사회 전반에 유포했다. 영국인들의 심성도 차갑고 거칠게 바뀌었다.

코빈의 목표는 ‘다시’ 영국의 심장과 영혼을 바꾸는 것인데, 그 핵심이 바로 경제에 대한 사회의 통제권을 회복하는 방향으로의 구조개혁이다. 이와 관련해 <이코노미스트>는 코빈이 구상 중인 구조개혁 정책의 뿌리가 헝가리 태생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1886~1964)의 이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노예의 길>과 같은 해, 1944년에 출간된 <거대한 전환>이 그의 대표작이다.

폴라니는 경제를 사람들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뤄지는, “사회 속의 자연적인 과정”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자기조정 시장이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구체화됨에 따라 사회와 경제의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는 시장가격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시장가격을 지배하지 못하게 된 것이 비극의 출발점이라며, 시장 요구와 사회 통합 사이의 조화를 다시 어떻게 이룰지를 해명하려 했다.

폴라니는 경제적 의사결정이 각자의 필요와 의지를 반영한 다양한 결사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결사체에 참여한 사람들이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필요와 노력을 내부로부터 조망하고, 그것들에 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정보들을 취합하며, 여기에 기초한 협의의 과정을 통해 자원의 배분과 분배를 함께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가 정보에 주목했던 것은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각자의 행동에 따르는 개인적 책임을 높이고 산업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노동당이 제안하는 ‘대안적 소유모델’들은 폴라니의 이러한 아이디어를 한층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전기·가스·사회서비스 관련 사업체를 지방정부·노조·지역민 등 당사자들이 소유·운영·관리하는 새로운 종류의 공적 소유 모델이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공공조달을 할 때 생활임금 제공,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조건으로 내거는 제안도 있다. 재직 중인 회사가 매각될 경우 노동자에게 매수 기회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고, 협동조합 전담 금융기관 설립 등을 통해 대안적 기업체를 활성화하려는 내용도 있다.

폴라니의 관점에서 보자면, 영국 노동당의 구조개혁안들은 민주적 결사체를 강화함으로써 시장을 인간화하고 보통사람들의 사회적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조차도 새로운 제안에 대한 판단을 효율이 아닌 민주주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비슷한 기조를 보인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성장이나 효율이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대에 있기에, 코비노믹스에 대한 평가도 보통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통제권을 행사하느냐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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