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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하다, 차에 갇혀, 홀로 집에서…폭염에 사람들이 쓰러졌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건설현장 폭염 안전규칙 이행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건설노동자들이 기자회견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건설현장 폭염 안전규칙 이행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건설노동자들이 기자회견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한겨레

불볕더위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에 사람들이 쓰러지면서 전국에서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노인들에게 이번 더위는 폭염을 넘어 재앙에 가깝다.

지난 28일 오후 2시2분께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길에 박아무개(91)씨가 쓰러진 것을 근처 농장 주인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사고 당시 칠곡 일대 지역 한낮 온도는 섭씨 36.4도까지 치솟았다. 박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이날 저녁 7시께 열사병으로 숨졌다. 올해 27번째 온열질환 사망자였다.

농촌 들녘에서도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랐다. 같은 날 정오께 전북 김제시 금산면에서는 최아무개(93)씨가 자신의 밭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마을 주민이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발견 당시 최씨의 체온은 42도를 넘은 상태였다. 열사병이었다. 전남 보성군에선 김아무개(89)씨가 지난 27일 뙤약볕에도 들깨밭으로 풀을 뽑으러 나갔다가 폭염에 쓰러져 숨졌다.

비단 노인뿐 아니다. 폭염에 쉴 곳 없는 현장 노동자도 폭염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지난 23일 오후 2시40분께 부산 동래구에서는 이삿짐업체 직원 최아무개(42)씨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씨는 이날 오전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마치고 집에서 쉬다가 쓰러졌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그의 체온은 41.3도였다. 최씨는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2시간여 만에 결국 숨졌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자료를 보면, 지난 10일 기준 2명에 불과하던 열사병 등 온열질환 사망자는 19일 만인 29일 기준 27명으로 폭증했다. 27명이란 수치는 온열질환 사망자 수를 집계하는 질병관리본부가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최대치다. 5월20일부터 집계한 온열질환자도 지난 28일까지 2042명을 기록해, 이미 지난해 전체 온열질환자 1574명보다 468명(29.7%)이나 더 많다.

폭염 사망자 절반 이상은 노인들이었다. 30일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온열질환자 사망 사례(지난 28일 기준) 통계를 보면, 사망자 27명 가운데 절반을 넘는 16명이 60살 이상 노인이었다. 노인들은 ‘재해 약자’란 사실이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40~50대가 7명으로 뒤를 이었고, 20~30대가 2명, 4살 이하 아동이 2명이었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 남성이 14명, 여성은 13명으로 성별에 따른 차이는 크지 않았다.

지금까지 폭염 피해자들은 주로 태양 아래에서 밭일 등을 하다 쓰러진 노인들일 것으로 짐작됐다. 그러나 이날 통계를 보면, 폭염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집 주변(8명)이었고, 그다음이 집 안(6명)이었다. 집이나 집 주변에서 쓰러져 숨진 이들이 사망자의 절반을 넘은 것이다. 실외 작업장이나 밭에서 쓰러진 이들은 각각 5명, 3명이었다. 일을 하지 않더라도 폭염이 계속되면서 집이나 집 근처에서 열사병을 일으킨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뜻이다.

유효순 질병관리본부 연구관은 “예년엔 ‘한낮 야외활동 주의하시라’고 경고했지만 한낮 2시간 전후, 실내나 실내 근처에서도 사망률이 비슷했다”며 “결국엔 폭염 땐 일본처럼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만이 답이 될 것”이라고 했다.

폭염 피해는 사회적 안전망 관리와도 맞닿아 있다. 방치된 복지 소외 계층에 더위는 재난이다. 지난 26일 전남 순천시에서 숨진 김아무개(59)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씨는 이날 집에서 500여m 떨어진 풍덕동 주택가 골목길을 걷다가 주저앉은 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졌다. 일용직 노동자인 그는 저녁 6시12분께 골목길에서 앉아 있는 모습으로 주민한테 발견됐다. 5분 만에 출동한 119 구급대원이 김씨의 체온을 재보니 42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의식·호흡·맥박은 전혀 없었다. 김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이날 순천의 최고 기온은 35.8도였다.

김씨는 5년 전 이혼한 뒤 홀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홀몸노인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도, 차상위 계층도, 장애인도 아닌 까닭에 사회복지망에서 빠져 있었다. 지방정부는 폭염이 계속되자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방문 등 특별 점검을 하고 있지만, 김씨는 이런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이다. 순천시 쪽은 “50대 후반 시민이 사회나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마을 방송 등을 통해 이웃을 한번 더 돌아보자는 주민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 지구 온난화와 고령화로 이런 폭염 피해자가 더 늘 수 있다는 점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예측치를 보면, 2029년엔 폭염 사망자 수가 99.9명에 이르고 2050년에는 261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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