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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삶

  • 홍승희
  • 입력 2018.07.30 16:28
  • 수정 2018.07.30 17:38
ⓒ0shi via Getty Images
ⓒhuffpost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을 봤다. 미니멀리즘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작은 삶을 살려는 태도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른 이에게 주거나 땅으로 돌려보내고 꼭 필요한 짐만 가지고 다니는 이들. 누구나 미니멀리스트인 순간이 있는 것 같다. 버리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 계획 없이 모험하고 싶어서 가벼운 짐으로 집을 나설 때처럼.

다큐의 주인공은 물건을 정리하고 가방 하나에 자신의 모든 짐을 들고 다닌다. 물론 그는 부유한 직장에 다니는 백인 남성이다. 가진 게 많아 버릴 것도 많은 그가 선택한 미니멀 스타일과 애초에 버릴 게 마땅히 없는 나의 미니멀은 모양이 다르다.

고시원에서 지낼 때부터 미니멀리스트로 살게 된 것 같다. 벽 한장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타인이 들어차 있는 고시원의 분위기가 묘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침대에 누우면 작은 공간이 몸을 중심으로 쪼그라드는 느낌이 안락했다. 작은 공간에 옷을 두면 곰팡이가 생길까 봐 밖으로 나갈 땐 짐을 담은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온 세상이 내 카르마, 업이고 짐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작은 공간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면 내 방이 너무 작아서인지 넓은 도로가 방처럼 느껴졌다.

다큐에서 자신의 배낭에 든 물건이 몇개나 되는지 세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세어봤다. 낡고 부드럽고 신축성 없는 가방. 그 안에는 노트북, 노트북 충전기, 마우스, 이어폰, 부피를 줄이려고 말아둔 티셔츠와 바지와 속옷 한벌씩, 휴대폰 충전기, 칫솔, 손톱깎이, 비누, 치약, 선크림, 생리컵, 물통, 약, 여권, 펜, 카드, 돈뭉치, 종이뭉치, 담배, 라이터, 숄. 이렇게 24가지 물건이 들어 있다. 이것을 가지고 인도에 왔다. 여행이라기보단 일상적인 이동생활이다.

다람코트 산마을에 있는 햇볕 드는 방, 아침에 눈을 뜨면 샤워를 하고 숄을 걸치고 산길을 걷는다. 바람이 차면 어깨에 숄을 두르고 비가 오면 머리에 숄을 두른다. 숄 하나만 있으면 다른 외투는 필요가 없다. 얼마 전에는 부엌 도구를 빌려서 방에서 직접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낀 식비와 주거비를 포함한 한달 생활비를 계산해보니 30만원이 안 된다. 이대로라면 여기서 몇개월 동안 의식주 생존 걱정 없이 있을 수 있다. 근처 카페에서는 카우치 서핑(무료숙박 사회관계망서비스)이 가능하다. 돈이 떨어지고 숙박비가 부담되면 그곳에 가면 될 거다.

작은 집, 작은 짐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은 도인이나 히피나 디지털유목민(일하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나 미니멀리스트만의 것이 아닐 거다. 내 것을 만드는 것보다 내 것에서 벗어나는 해방이,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사실은 보편적인 취향이 아닐까. 모르겠다. 그럼 나는 미니멀리스트인가? 미니멀리스트나 디지털유목민이라고 하기엔 이상한 이도 저도 아닌 떠돌이. 한편으론 내가 짐 없이 떠도는 동안 내 짐을 보관하거나 버리게 되는 누군가의 노동을 생각하면 서늘해진다. 다리가 많이 불편하지 않아서 여기 산마을에 오를 수 있고, 비행기 삯을 모을 수 있는 여건이 내게 있었기에 이런 생활도 결국 특권이고 조건부다.

그래도 지금 이런 생활이 주거 빈곤층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소한의 풍요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존 걱정 없이 마음껏 자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기. 나뿐 아니라 모두의 자유가 이만큼에서 멈추지 않길 조심스럽게 희망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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