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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붕괴 라오스 ‘반마이마을’을 가다(영상)

물지옥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28일 라오스 사남사이 바미아마을 초입에서 구조대원들이 개 한 마리를 구조해 배에 태운 채 나오고 있다.
28일 라오스 사남사이 바미아마을 초입에서 구조대원들이 개 한 마리를 구조해 배에 태운 채 나오고 있다.

물지옥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싶은 광경이었다. 28일 오후 댐 붕괴로 물벼락을 뒤집어쓴 라오스 아타프주에서도 가장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진 반마이마을 초입이 그랬다. 온 천지에 어른 무릎 높이까지 들이찬 흙탕물은 5억t이라는 수치에 갇힌 물의 크기를 웅장한 모습으로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물 위에는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갈 곳을 잃은 큰 지렁이들이 수면 위에서 꿈틀거렸다.

수도 비엔티안과 중국에서 왔다는 구조대원들은 차량을 마을 초입에 받치고 수시로 200여m 앞 마을로 보트를 타고 드나들며 구조작업을 벌였다. 온갖 진흙길을 잘도 헤치고 온 평화원정대 취재차량도 거대한 물 웅덩이 앞에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 중국 구조대원은 “모두 76명이 와서 곳곳에서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프랑스인이라고 소개한 한 구조대원은 “비엔티안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일부 구조대는 제트스키까지 트레일러에 매달고 현장에 왔다.

라오스 구조대원들이 28일 댐 붕괴로 물에 잠긴 아타프주 사남사이 반마이마을 초입에 차량을 받쳐놓고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라오스 구조대원들이 28일 댐 붕괴로 물에 잠긴 아타프주 사남사이 반마이마을 초입에 차량을 받쳐놓고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5억t짜리 물폭탄을 당한 13개 마을은 여전히 물에 잠긴 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구조대원들만 보트를 타고 진입할 수 있다. 마침내 이번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바마이마을 초입에 들어서면서 평화원정대 차량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어른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흙탕물엔 갈 곳을 잃은 큰 지렁이와 쓰레기만 둥둥 떠다녔다. 수도 비엔티안과 중국에서 온 구조대원들이 보트를 타고 바마이 마을 안쪽을 드나들었다.

오후 1시30분께는 구조대원 10여명이 나무배에 흰 천으로 싸인 무언가를 태우고 걸어 나왔다. 옆에 있던 구조대원 한 명이 “마을주민 주검”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남사이에서 사고 마을로 가는 길은 온통 진흙탕이어서 4륜구동 스포츠실용차(SUV)가 아니면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첫 번째 나타난 꼬껑마을에선 집들이 물에 잠기거나 무너진 채 방치된 모습이었다. 대형 유조차가 물에 둥둥 떴다가 물이 빠지며 집 옆에 걸터 앉은 모습도 목격됐다. 이재민 대피소 울타리가 형형색색의 옷으로 장식된 반면, 수해를 당한 마을의 울타리엔 비닐봉지 등 쓰레기가 곳곳에 걸려 해당 높이까지 물이 휩쓸고 지나갔음을 뒤늦게 증명하고 있었다.

 

35살 타오오 “25마기지 논엔 펄 가득…농기구 다 떠내려가”

지난 22일 밤 라오스 아타프주 세피안강 옆 타우언 마을에 사는 타오오(35)는 갑자기 차오르는 강물에 아끼는 소 3마리를 내팽개친 채 인근 언덕으로 뛰어 올랐다. 집에서 5km 떨어진 곳에 방목하는 소를 보러 간 때였다. 한 살 어린 아내 펀이 “둑이 터졌다니 조심하라”며 걸어온 전화를 끊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떠내려가는 소들을 우두커니 지켜보며 발을 굴러야 했지만 그나마 자신의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저는 그날 오후 7시께 상류에 사는 친척집 전화를 받고 둑이 무너진 걸 알았어요. 지갑이고 뭐고 내버려둔 채 일곱 살 아들 에랑 네 살배기 딸 촘푸 손을 잡고 4km 떨어진 언덕을 향해 계속 달렸죠. 엄청 무서웠어요.”

지난 28일 오전 아타프주 사남사이에 있는 교육스포츠센터 이재민 대피소에서 평화원정대와 만난 펀이 두 손을 번갈아 휘젓는 동작을 남편 타오오 앞에서 보이며 말했다. 그 날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얼굴엔 잔뜩 긴장이 배어 있다.

댐 붕괴로 물폭탄을 맞은 라오스 아타프주 꼬껑마을로 가는 길목에 범람 당시 주민들이 타고 다닌 것으로 보이는 배가 길 위에 놓여 있다.  
댐 붕괴로 물폭탄을 맞은 라오스 아타프주 꼬껑마을로 가는 길목에 범람 당시 주민들이 타고 다닌 것으로 보이는 배가 길 위에 놓여 있다.   ⓒ한겨레

에스케이(SK)건설이 짓다 폭우와 함께 그날 밤 무너진 ‘보조댐 디(D)’는 그렇게 네 식구의 삶도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모내기를 절반가량 끝낸 25마지기 논에는 펄이 가득 찼고 농기계와 자동차는 모두 떠내려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장 마실 물도 부족한 걸요.” 타오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설탕, 수건, 속옷, 쌀, 모기장, 우유, 생리대까지, 부부의 손엔 조금 전 구호대원에게서 받은 물품이 가득했다. 이날 구호품을 전달한 라오스 ‘투자 및 수력발전 자문회사’의 책임자 텅러 붓사건(50) 현장 매니저는 “회사 직원 50명이 차량 15대에 구호물품을 싣고 봉사활동 하러 왔다”고 말했다.

댐 붕괴 사고로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모인 라오스 아타프주 사남사이 대피소 울타리에 28일 빨래들이 널려 있다.
댐 붕괴 사고로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모인 라오스 아타프주 사남사이 대피소 울타리에 28일 빨래들이 널려 있다. ⓒ한겨레

타오오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사남사이유치원 대피소엔 타우언 마을 주민 80여명이 머물고 있었다. 전체 700명 주민 대부분은 처음 대피한 산자락에서 아직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이재민들이 말했다. 이재민들은 나무로 얼기설기 벽을 지은 건물의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거나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그날 밤 ‘물폭탄’을 피하느라 주민들이 아무런 경황이 없었음을 보여주듯 대피소 내부는 전혀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평화원정대가 그동안 찾은 우간다의 남수단 난민촌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북아프리카 난민촌,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촌,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촌은 그나마 정리된 가난의 모습이었다면, 이곳은 평화롭던 주민이 이재민으로 신분이 바뀐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다른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위엔텅(57)은 이번 사고로 가족을 잃지 않아 다행이라면서도 키우던 소 30마리가 몽땅 급류에 떠내려갔다며 가슴을 쳤다. 그는 “대피하다 라힌따이 마을에서 아기를 안은 채 죽은 여자를 내 눈으로 봤다”며 “우리 마을엔 아직도 어른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온통 대피소가 차려진 사남사이 시내는 구호물품을 실어 나르는 헬리콥터와 중국, 타이, 베트남 등에서 온 구호차량으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갑자기 몰려든 피난민들이 내건 빨래는 길가의 울타리를 알록달록 물들였다. 집과 가축 등 가진 것을 모두 잃었으나 저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 새 희망을 일구고픈 이재민들의 꿈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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