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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제주 예멘 난민들 위해 1만 유로 냈다

주한교황대사 슈에레브 대주교와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28일 오후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공소에 머무는 예멘 난민들을 만나고 있다.
주한교황대사 슈에레브 대주교와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28일 오후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공소에 머무는 예멘 난민들을 만나고 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여러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교황을 대신해서 온 것입니다. 교황께서는 난민 문제와 관련해 신자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환대하라고 말했습니다. 난민 문제는 여기 제주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중해에서는 거의 매일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려고 하다가 익사하고 있습니다. 강 주교께서 매우 좋은 일을 계시고, 한국 정부에 감사와 함께 격려하는 차원에서 여기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제주에 집단으로 들어온 예멘 난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자선기금을 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9일 주한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를 통해 교황청 자선기금 1만 유로를 천주교 제주교구에 전달했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이날 천주교 중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인사말을 통해 “제주교구의 두 주교(강우일·문창우)께서 제주에 온 500여명의 예멘 난민에 관한 사목 서한을 발표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발표한 회칙과 권고에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교종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더 너그럽게 우리의 형제요 자매인 그들을 환대하자고 촉구한다. 교종께서도 예멘 난민들을 환대하기 위해 모범적으로 노력하는 제주교구와 함께 하신다”고 말했다. 교황이 교황청 자선기금을 내놓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천주교 관계자는 밝혔다.

앞서 슈에레브 대주교는 28일 오후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와 함께 서귀포시 대정읍의 농촌에 있는 공소를 찾아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과 50분 남짓 대화를 나누며 난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난민들에게 교황의 뜻이라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주한교황대사 슈에레브 대주교와 강우일 주교가 28일 오후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공소에서 예멘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주한교황대사 슈에레브 대주교와 강우일 주교가 28일 오후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공소에서 예멘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슈에레브 대주교는 난민들에게 제주도에 들어온 경로와 예멘에 남아있는 가족과의 연락방법 등을 물으며 관심을 표명했다. 토우팍(가명·29)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락하지만 예멘 현지 상황 때문에 연락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부모님이 잘 있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의 진짜 상황을 몰라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부모를 못 본 지 8년이 됐다고 했다. 예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9년 예멘 정부가 주는 장학금으로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다 내전이 발발하자 정부가 주는 장학금과 생활보조비 등이 모두 중단됐다. 그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했지만 너무 힘들었다”며 유학생 비자가 만료돼 지난 5월2일 제주도에 들어왔다. 그는 “전쟁 이전에도 가난했지만, 전쟁으로 더 가난해졌다. 어떻게 공부를 지속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요르단의 하쉬미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다 지난 5월26일 제주도에 들어온 마흐메드(가명·24)는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신부와 생이별하고 제주를 밟은 경우다. 마흐메드는 “가족이 9명인데 집이 공습으로 파괴됐다. 가족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했지만 삶은 막막하다”고 말했다. 공소에 체류하고 있는 한 난민 신청자의 형은 의사였지만, 어느 날 길거리를 걷다 반군에 납치돼 살해됐다고 한다.

28일 오후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공소에서 예멘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주한교황대사 알프레드 대주교와 강우일 주교.
28일 오후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공소에서 예멘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주한교황대사 알프레드 대주교와 강우일 주교. ⓒ한겨레

이들의 통역을 맡은 같은 난민 신청자는 “예멘의 전력사정이 나빠 인터넷이 자주 끊기는 등 불안정하다. 북부지역에서만 운이 좋으면 하루에 단 몇 시간 들어오는 전력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전쟁으로 주민들이 궁핍한 생활을 하는 데 민간 전력은 단가가 너무 비싸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며 예멘의 전력과 인터넷 사용 상황을 전했다. 케람(가명·21)은 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가려다 내전이 발발해 학업을 중단했다. 이들은 슈에레브 대주교와 강 주교 등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내전이 일어난 예멘 난민들을 다른 나라가 수용할지 여부라며, 장학금이나 학업 등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우리에게 1등 시민, 2등 시민이 없으며, 모두 사랑받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활용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한국의 법과 제도에 따를 것도 당부했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부디 이 나라의 모든 법과 제도를 준수해달라. 한국 당국이 신원을 확인한다면 모든 것을 공개하라. 여러분의 배경과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데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래야 환영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또 “예멘에서 하루에 5번씩 기도를 했다면 여기서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야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서로 협력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 갔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한국에서도 1950년대에 비참한 상황이 있었다. 우리는 난민으로서 다른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안다. 진짜 어렵고 힘들 것이다”며 위로했다.

앞서 강 주교는 지난 1일 제주교구민들에게 보낸 사목 서한을 통해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배척은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거부하는 범죄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더더욱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며 난민을 포용할 것을 호소하고, 제주교구 차원에서 난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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