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7월 28일 14시 01분 KST

일본 정부는 “목숨이 위험할 수 있으니 에어컨을 켜라"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누진제 있는지도 잘 모른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최근 기록적인 폭염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일본 시민들 역시 만나면 날씨 이야기 뿐이라고 합니다. 일본 사회의 폭염 대책은 ‘적극적인 냉방’으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에어컨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하네요. 이런 인식 변화 뒤에는 누진율이 낮은 전기요금 체계가 있습니다. 폭염 속 일본의 풍경을 특파원이 전합니다.

 

“시민 여러분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더위입니다.”

지난 23일 일본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인 섭씨 41.1도를 기록한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 시청은 재해 대비 안내시스템으로 시내 주요 부분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긴급 안내 방송을 했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더위’라는 표현은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일본 전역에서 요즘 매일 들리는 말이다. 일본 공영방송인 <엔에이치케이>(NHK)는 매일 폭염 뉴스를 전하면서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더위입니다. 오늘도 열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엄중히 주의하세요”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방송 화면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열사병 엄중 주의’ 자막을 모든 프로그램에 넣어 계속 내보내고 있다.

지난 24일 도쿄 주오구 맨션(한국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만난 50대 건설업체 소속 남성은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목을 닦으면서 “나는 현장 작업원이 아니라 작업을 점검하는 사람인데도 지난주 열사병으로 쓰러져서 병원에서 링겔을 맞았다”며 “하루에 최소한 물 2ℓ는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 작업원들은 최소한 물을 하루 4ℓ는 마시고 있다. 안전 때문에 두꺼운 옷을 입는데 옷에 작은 선풍기를 달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거리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큰 비가 올 때나 쓸법한 크기의 양산을 들고 다니거나 수건을 적셔서 목에 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겨레
24일 일본 도쿄 주오구 거리에서 한 여성이 양산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일본의 폭염 대책은 ‘에어컨’?

‘목숨이 위험한 더위’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14일께부터 날마다 열사병 같은 온열 질환로 숨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21일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70대 부부가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부부는 열사병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23일에는 사이타마현 지치부시에서 90살 남성이 새벽에 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24일 가가와현에서도 60대 남성이 방에서 쓰러져 숨졌다.

일본에서는 최근 기후 변화로 여름철 기온이 높아지면서 해마다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으로 숨진다. 일본 후생노동성 집계에 따르면 2010년 1731명, 2012년 727명, 2013년 1077명, 2015년 968명, 2016년 621명이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2016년 사망자 중 38.8%는 집안에서 숨진 사람들로 실내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망자들의 공통점은 방에 에어컨이 있음에도 가동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부부의 경우에는 냉방이 아니라 ‘송풍’으로 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도 열사병 방지를 위해 에어컨을 켜 냉방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권한다. 후생노동성은 “절전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 기온과 습도가 높은 날은 무리한 절전을 하지말고, 적절히 선풍기와 에어컨을 사용하라”고 쓴 팜플렛을 배포했다. 도쿄 미나토구도 누리집에서 “실내 온도가 28도를 넘으면 선풍기를 과신하지 말고 (에어컨) 냉방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공영방인 <엔에이치케이>는 “주저하지 말고 냉방을 하라”는 말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다.

보통 일반 사람들에게도 ‘폭염 대처법’을 물어보면 대부분 비슷하게 대답한다. 냉방을 하고, 물을 조금씩 계속 마시고, 염분을 섭취하라는 것이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사는 한 50대 여성은 “올해는 확실히 더위가 일찍 온 것 같다. 퇴근하고 자기 직전까지 하루에 5~6시간 정도 에어컨을 켠다. 전기요금은 한 달에 1만엔(약 10만원) 정도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 요금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어차피 일본에서 여름에 에어컨 없이 살기는 힘들고, 여름 동안만 에어컨 냉방을 사용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도쿄 신오쿠보에 사는 40대 여성은 “퇴근해서 샤워를 한 뒤 선풍기로 버티다가 자기 직전부터 밤새도록 에어컨을 사용한다. 에어컨 없이는 거의 잠을 못 잔다”며 “다른 물가에 비해 전기요금이 특별히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50대 재일동포 남성 조아무개씨는 “예전에는 이 정도로 덥지는 않았는데 최근 몇년은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항상 켜고 잔다”며 “전기 요금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에어컨을 하루에 몇시간씩 켜는 것은 아니다.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사는 60대 여성은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날씨 이야기만 한다. 너무 덥다”면서도 “에어컨 사용하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주로 집 근처 도서관이나 쇼핑몰에 간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은 아주 시원하진 않지만 집에서 가깝고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어 틈나는 대로 간다. 쇼핑몰은 가면 3~4시간은 머문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약간 피곤하긴 하지만, 일본에서 쇼핑몰만큼 시원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평화 운동 시민단체 피스보트의 활동가 노히라 신사쿠는 “일본 사람들도 전기 요금이 부담스럽기는 하다. 우리 집은 통풍이 비교적 잘 되는 편이라 에어컨을 되도록 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겨레
24일 낮 일본 도쿄 주오구 상점에 양산과 모자 등 폭염에 대비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일본인들, 누진제 있는지 잘몰라

하지만 일본인들은 상대적으로 한국 사람보다는 에어컨 가동에 따른 전기요금 부담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수도요금, 교통비 등 다른 공공요금이 워낙 비싼 탓도 있지만, 전기요금의 누진율이 낮은 탓이 크다. 일본 사람들 중에는 전기요금에 누진제가 적용된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한국은 박근혜 정부 중반까지만 해도 가정용 전기요금은 누진구간 6단계, 누진율은 최대 11.7배였다. ‘전기 요금폭탄 논란’이 커지자 2016년, 누진구간 3단계, 누진율은 3배로 낮췄다. 일본도 1974년 오일쇼크 이후 3단계 누진제를 오랫동안 시행했으나, 2016년 전력소매시장 자율화 이후 3단계 누진제 외의 다른 요금제들도 등장했다. 대부분의 회사는 전략 사용량에 따라서 3단계 누진제를 적용하지만, 1단계와 3단계 차이는 최대 1.6배 정도다.

도쿄에서 사는 한국인 김아무개(37)씨의 전기요금 명세서를 한국과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이 가정은 겨울철 난방을 전기 히터로 하기 때문에 1월에 전기요금이 가장 많이 나왔다. 총 전력 사용량은 683kWh였다. 140kWh까지는 1kWh당 전기요금이 23.24엔(약 235원), 140~350㎾까지는 23.45엔(237원), 350kWh이상 부터는 25.93엔(262원)이 적용됐다. 한국전력이 밝힌 기준을 보면, 한국에서는 200kWh까지는 93원, 200~283kWh는 187원, 283kWh 이상은 280원이 적용된다. 한국이 아래구간 요금은 낮지만 전력량 사용 증가에 따라 요금이 가파르게 올라간다. 총 전기요금은 일본에서는 1만7351엔(17만5578원)이 나왔다. 한국전력 사이버지점의 전기요금 계산기로 계산해보면 같은 전력량을 썼을 때 예상요금은 16만2520원이다. 두 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일본 4만달러 초반, 한국 3만달러)을 감안하면 거의 비슷하거나 한국이 더 비싼 셈이다.

일본은 전력소매시장 자율화로 전력회사와 요금제마다 전기요금 계산 방식이 조금씩 다른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말하면 전기를 적게 사용할 때는 일본이 한국보다 더 비싸고, 많이 사용할수록 차이가 줄어든다. 7~8월과 12~2월에는 1000kWh를 넘게 전기를 사용하면, 한국에서는 ‘슈퍼요금제’가 적용돼 kWh당 709.5원으로 올라간다. 이 경우 한국 전기 요금이 일본 전기 요금보다 비싸진다.

정부 차원에서도 에어컨 사용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일본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90%가 넘지만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가정도 있다. 후생노동성은 이달부터 생활보호대상자 세대 중 집에 에어컨이 없고, 세대원 중 고령자·장애인·어린이·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경우에 에어컨 설치 비용을 최대 5만엔(약 5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규슈전력은 75살 이상 고령자가 있는 세대의 경우 8~9월 전기 요금을 10% 깎아준다고 발표했다. 26일까지 관련 신청 건이 26일까지 3만6000건이 넘었다.

‘소학교(초등학교)와 중학교 에어컨 설치 확대’도 주요 폭염 대책 중 하나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동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대책이 긴급한 과제다. 학교 에어컨 설치 지원은 당연하다. 내년 이 시기에 맞출 수 있도록 정부는 책임을 지고 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부과학성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일본 공립 소학교와 중학교 교실 에어컨 설치 비율은 41.7%이지만, 지역별로 격차가 크다. 도쿄의 경우에는 84.5%에 달하지만 남부 지방인 나라현, 에히메현, 야마구치현, 나가사키현 등은 여름 폭염이 더 심함에도 10%대에 그친다. 재정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스가 관방장관의 발언은 정부 지원을 강화해서 이런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절전 캠페인 안해

여름철 전기 사용을 자제하라는 캠페인도 최근 일본에서는 보기 어렵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지난 24일 “올 여름 국민들에게 절전 요청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절전을 요청할 상황이 아니다”며 “에어컨을 확실히 가동해서 열사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을 우선시하겠다”고 말했다.

일본도 2011년 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로 상당수 원전이 가동 중지된 뒤 전력회사들이 대규모 정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계획정전’(미리 장소와 날짜를 정해서 돌아가며 전기 공급을 중단)을 했다.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 여름철마다 국민들에게 전력 사용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3년 전부터는 전력 수급상황이 개선됐다고 보고 국민들에게 절전 요청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올 여름 전력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공급에 여유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한국과 다르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올해 ‘전력수급검증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정부가 기업이나 국민에게 절전 요청을 하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공급예비율(최대 전력수요량 대비 예비전력 비율)을 ‘3% 이상’으로 잡았다. 일본에서도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직후에는 전력회사가 예비율을 보통 7~10% 정도 확보했으나, 이후 점차 예비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갔다. 전력 예비율이 10% 이하로 내려가면 불안하다고 보는 한국과는 시각차가 있다. 경제산업성이 지난 5월 작성한 7월 전력 최대수요 예상치는 도쿄 5637만㎾로 예상 예비율은 3.9%였다.

기업 중에서는 ‘텔레워크’(재택근무)를 도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 소프트웨어 회사인 인포테리아는 기상청이 최고기온이 35도가 넘을 것이라고 예보하면, 재택 근무를 권한다. 사원들의 스마트폰으로 ’텔레워크 장려일’이라는 문자메시지가 가고, 이 메시지를 클릭하면 회사에 텔레워크 신청이 접수된다. 이 회사 사장인 히라노 요이치로는 “싱가포르에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 일본 여름이 싱가포르보다 더 더운 것을 보고 2015년부터 텔레워크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마침 일본 정부는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교통 혼잡 회피와 노동방식 개혁을 위해서 텔레워크 도입을 권장하고 있다. 민간 조사 기관인 아이디시(IDC)재팬 조사에 따르면 현재 약 14만곳(종업원 2인 이상 기준)이 텔레워크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올 여름 폭염을 “재해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자연 재해 수준의 폭염은 인내심으로 견디려고 해서는 안된다. 참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일본 정부에게도, 한국 정부에게도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