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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중반, '연애의 고통'과 맞닥뜨리며 느끼는 것들

ⓒhuffpost

어떤 관계보다도 연애가 가장 어렵다.

연애도 공부가 필요하다. 연애를 많이 해본 친구들이 결혼을 잘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연애는 갈등이 참 많아서 편치 않았다. 갈등 자체도 건강한 갈등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에 관계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씨름을 해도 같은 수준에 있는 애들끼리 싸우다 보니 건강한 갈등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마음도 좀 잔잔해지고, 감정에 대한 인식도 생기며, 상담도 받으면서 나 스스로 자만했던 부분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누구랑 연애를 해도 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집단 상담을 통해 관계의 장에 매일같이 노출되어 있는데, 이렇게까지 잘 다듬어 놨으니 누구를 만나도 맞춰 가는데 어렵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어찌 그렇게 교만한 생각을 해댔는지 여전히 창피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의 밑바닥의 취약한 모습, 나의 가장 미성숙한 모습이 불쑥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진심 그렇게 생각했다.

관계를 망가트리는 나의 가장 큰 특성은 ‘고집스러운 막내’의 모습이다. 건강한 갈등을 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부끄럽지 않으나, 돌아봤을 때 후회되는 갈등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나의 그 고질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들에 몰리다 보면 감정적으로 압도된다. 불안해지고 초초해진다. 그냥 넘어갈 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그 감정이 쉬이 풀리지 않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더 극악으로 치닫게 되는 건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나의 특성때문이다.

연애를 하지 않을 때는 크게 보이지 않다가 연애가 시작되고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가 되면 수면 아래에 있던 그 모습이 드높게 드러나게 된다.

누군가 물었다.

모든 커플들이 싸움을 하는데 어떤 커플은 헤어지고, 어떤 커플은 안 헤어져요?

또 누군가 대답했다.

갈등상황 시, 원가족 내에서 해왔던 방식과 다르게 하면 돼.

어렸을 때 나는 고집스러운 막내의 모습으로 울퉁불퉁 내 마음대로 살아온 게 컸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와 형제에게 바라는 게 점차 줄다 보니, 나의 결핍감을 채워달라고 크게 매달리지 않아서 갈등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30년 넘게 함께 살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맞춰졌기 때문에 그렇게 큰 갈등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성인이 되어 새롭게 맺어가는 바깥 관계에서, 게다가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에서는 어김없이 나의 고질적인 모습이 드러나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연애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다들 젊은 나이에 그 고통스러운 관계 안에서 사랑의 기술을 열심히 갈고닦아서 이제는 자신들만의 방식을 찾은 것 같다.

연애가 고통스러워 그 젊은 시절에 공부와 일로 도망쳤던 나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 30대 중반의 연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도통 모르겠다. 어렸을 때처럼 누군가 나와 같이 씨름을 해줄 대상도 없거니와 그런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도 없는 듯하기에 더 절망스럽다.

30, 40대의 연애는 어떻게 할까?

나이 들어서 결혼하게 된 언니들, 젊은 나이에 결혼하게 된 오빠들, 젊은 나이에 결혼한 친구들, 아직도 결혼하지 않는 나이 많은 언니들. 집단 별로 답이 상이하다. 아마도 자신들의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를 해주니 그렇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의 책장에는 연애 관련 책들이 가장 많다. 그런 거 보면 어렸을 때의 나도 연애 자체에 고민이 많았던 듯싶다. 여하튼 그 책에 나오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거. 나는 정말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책을 읽면 읽을수록 독립적이고 성숙한 사랑의 모습이 너무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서 자괴감이 들고 자책과 후회만 늘어갔고 옛 생각에 가슴만 시리고 아팠다.

수많은 답들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 혼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상대와 함께 맞춰 가며 우리만의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참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유일하게 답을 찾은 건,

연애를 시작한다면, 아주 초반부터 상대방에게 내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려주고,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게 부탁을 하면 이미 상대방은 함께 맞춰갈 생각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어도, 관계 맺는 집단 상담을 그렇게 오래도록 참여하고 있어도 내 진짜 삶이 고통스럽지 않으면 사람 참 안 바뀌는 듯하다. 연애를 하게 되면 에너지가 많이 쓰여서 도망다니고 피해 다녔더니 아직도 그 부분에서는 어린애 수준밖에 못 미치고 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연애는 여전히 고(苦)되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고 고(go)하려고 한다.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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