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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리자 욕설이 날아들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은 피해 아동의 가족들로부터 폭행과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한겨레

(똑똑똑) “어머니, 지연(가명)이 만나러 왔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소속 이아무개 상담원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 교육적 방임으로 판단되는 가정 상담을 하러 온 것이다. 상담원이 문을 두드리자 현관문을 뚫고 욕설이 날아들었다. “야 XXX들아 그만 좀 꺼지라고.” 방임이 의심되는 아동의 오빠였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가 이어졌다. 어머니는 “그만 괴롭히라”고 소리쳤고, 상담원은 “아이의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며 10분 넘게 버텼다.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 상담원은 “담당하는 사례 62건 중 이렇게 (아이를) 못 만나고 가는 게 절반쯤 된다. 욕설 정도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상담원은 이내 다음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씨 같은 상담원들이 소속된 아보전은 학대받는 아동을 발견하고 치료 및 예방 사업을 하기 위해 지난 2001년 10월 출범한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다. 현장조사팀과 사례관리팀에 소속된 상담원들은 학대 신고 현장에 경찰과 함께 출동해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부모 등 학대 행위자와 지속적으로 만나 재학대 예방을 위한 상담을 한다. 지난 18일 일어난 ‘강서구 어린이집 영아 사망 사건’도 상담원들이 경찰과 함께 조사했다.

하지만 아동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일하는 상담원들은 정작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지난 10일과 17일, <한겨레>와 만난 상담원들은 “사명감을 갖고 일을 시작하지만 위험한 근무 환경과 업무 부담을 견디지 못한 상담원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 목숨 건 상담, 남는 건 정신질환 

경상남도의 한 아보전에서 일하는 성아무개 상담원은 지난 6월 머리를 한 움큼 뽑혔다. 아버지에게서 흉기로 위협받은 아이가 있다는 신고를 받은 그는 아동복지법을 근거로 피해 아동과 아버지를 분리했다. 하지만 분리 조처에 불만을 품은 피해 아동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찾아와 성 상담원을 폭행했다.

“아이의 할머니와 엄마가 제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에 옷까지 벗기려고 달려들었어요.” 사무실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그는 경찰에 신고했고, 피해 아동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특수폭행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성 상담원은 조사와 처벌이 이뤄져도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제가 맡은 사건이니까 저는 그 집에 다시 가야 하고 가해자들과 계속 다시 만나야 해요. 그런데 이 일을 겪고 난 뒤로 가해자들과 비슷한 풍채를 가진 사람만 봐도 위축돼요. 조사할 의지도 떨어지고….”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담원들은 조사와 상담 업무를 하기 위해 여러 가정을 직접 찾아간다. 낯선 집이 이들의 일터다. 상담원들은 그곳을 “한순간에 흉기로 돌변하는 물건들이 도처에 깔린 위험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강원도의 한 아보전에서 일했던 오아무개 상담원은 2년 전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를 심하게 때려 징역을 살다 온 아버지가 다시 아이를 학대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상담을 해야 했어요. 하루는 집에 찾아가니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이 아버지가 ‘사시미 칼’을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두는 거예요. 저랑 다른 여성 상담원 둘 뿐이었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이런 근무 환경 때문에 상담원 중에는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오 상담원도 그날 받았던 충격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오 상담원은 중앙 아보전의 지원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중앙 아보전은 2016년부터 상담원들의 치료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한 해 지원 가능한 상담원은 5명 남짓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상담원은 자기 돈으로 병원에 다닌다.

‘성희롱’도 심각하다. 경기도의 한 아보전에서 일하는 ㄱ상담원은 “한 가정에 방문했다가 ‘요즘 발기가 안 된다, 시집와라’ 등의 말을 들었다”며 “시간이 꽤 지난 일이지만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급격히 우울해진다”고 털어놨다. 충청북도 아보전의 정아무개 상담원도 “남성 학대 행위자들에게서 ‘내가 너를 어떻게 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한겨레

■ “주 52시간 노동은 꿈같은 이야기” 

가정 방문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상담원들은 과중한 업무로 다시 한 번 고통받는다. 서울 은평구 아보전에서 일하는 이아무개 상담원은 “동시에 60건이 넘는 사례를 혼자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 상담원은 “팀원 4명이 2개 조로 나뉘어 하루에 4~5차례 현장에 나간다. 현장에서 피해 아동 한 명만 만나고 돌아오는 게 아니고 부모, 이웃, 학교, 지역 기관 등 관련자를 폭넓게 만나야 하는데, 상담원들을 문전박대하거나 폭행하는 일이 잦아 일이 미뤄지기 일쑤다. 그사이 새로운 사건이 접수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담당 사건이 눈덩이처럼 쌓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중앙 아보전 관계자는 “한국과 아동 인구수가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상담원들은 보통 15~20건을 동시에 담당한다”고 말했다.

상담원들은 ‘일상적인 초과 노동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아보전 상담원은 한 달에 3~4차례 전화 당직을 한다. 신고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당직 때는 업무용 휴대폰을 가지고 퇴근한다. 오 상담원은 “전화 당직 날엔 샤워할 때도 전화기를 욕실에 가져간다. 밤새 긴장 상태로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대 행위자인 부모들을 만나는 시간은 보통 그들이 퇴근한 뒤다. 이 때문에 상담원들은 자신의 퇴근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서울 강서구 아보전의 채아무개 상담원은 “전날 늦게까지 상담을 했더라도 업무량이 너무 많아 다음날 일찍 출근해야 한다”며 “주 52시간 노동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장거리 출장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전라남도의 한 아보전에서 일하는 정아무개 상담원은 “섬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사례 가정에 가기 위해 배를 타야 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아동복지법은 ‘학대받은 아동의 발견, 보호, 치료에 대한 신속처리 등을 위해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기초지방자치단체에 1곳 이상 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아보전이 설치된 곳은 62곳에 불과하다. 한 개 아보전이 4~5개 지자체를 함께 맡는 게 현실이다.

고된 일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결국 떠난다. 중앙 아보전 자료를 보면, 타 사업장 발령 및 퇴직 등을 포함한 상담원들의 이직률이 매년 30% 안팎이다. 재직 중인 상담원의 연령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이 대부분이고, 평균 근속연수도 1.8년에 불과하다. 전문성이 쌓이기 어려운 구조다.

상담원들은 ‘아동학대 예방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환경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16년 2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정 내 학대로 숨진 ‘원영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 감시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대책이 나왔지만, 그때 뿐이었다.

서울의 한 아보전 관장인 임아무개씨는 “정부의 대책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신고 많이 들어오면 우린 더 죽어나는데’였다”며 “인원 충원 등 현실적인 지원은 늘어나지 않고, 아동학대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아보전이 감당할 수 없는 제도만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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