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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결심공판 하루 앞두고 열린 긴급 토론회에서 나온 말들

"왜 우리는 피해자에게 주목하는가? 질문의 초점을 안희정에게 돌려야 한다"

ⓒ뉴스1

한국에서 강간은 ‘폭행‘과 ‘협박‘을 법원이 인정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다. ‘동의하지 않음‘이 강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형법상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발의되긴 했으나, 아직 법 개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위력(威力: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적·무형적 힘)’에 의한 강간은 법정에서 인정되기 더욱 힘들다. 그동안 ‘위력에 의한 간음’은 미성년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서 협소하게 해석돼 왔을 뿐이다.

비서 김지은씨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적용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아예 관련 판례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업무상 위력 간음은 일반적인 양형상 감경요소인 초법, 합의 등이 있다면 대부분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되어 재판조차 시작되지 않고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판결을 두고 성폭력 운동계에서 ‘향후 비슷한 재판의 지표가 될, 몹시 중요한 사건’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6일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토론회에서 ”피해자와 행위자 간에 존재하는, 피해자를 종속시킬 수 있는 우월적 지위”가 ‘위력 판단’의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임다혜 위원은 ”우월적 지위의 개념은 업무 및 고용 등의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위를 넘어선, 부적절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도의 지위와 세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부당하고 부적절한 요구와 이로 인한 근로권 및 인격권 침해가 반복 또는 지속적으로 존재했는지 △부당한 요구를 피해자가 감내할 것이라는 행위자의 인식이 있었는지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임다혜 위원은 안희정 전 지사 사건에서도 ”미성년자, 장애인을 상대로 한 위력 간음 판결에서 위력으로 인정된 것과 비슷한 요건이 존재한다”며 ”몸을 꽉 안는다거나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고, 거부 의사 표시 역시 강력하지 않았으나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이어, ”(성폭력이 벌어진) 해외 출장지라는 상황도 봐야 한다”며 ”(피해자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장임다혜 위원은 ”많은 사회적 상황에서 착취적 관계가 존재하지만, 법망에는 잡히지 않는다”며 ”폭행과 협박이 동원되지 않고, (약자의) 저항 행위도 없고, (약자의) 합의를 굳이 구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법망에 걸리지도 않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해도 (법적으로) 호소할 수도 없고, 보통 이런 관계의 성폭력은 수차례/수년간 지속된다”며 ”이러한 심각한 피해들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주목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뉴스1

국방부 성범죄 TF 전문위원,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위원 등을 맡은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도 같은 토론회에서 ”(비서 김지은씨의) 명시적인 동의 여부가 표명된 적이 없다”며 ”비록 비동의간음죄가 한국에 없고, 형법 297조가 폭행 및 협박을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두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법에서도 처벌 가능하다”고 밝혔다.

권김현영 활동가는 ”감독자가 피감독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폭행이나 협박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성적인 접촉 혹은 제안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며 ”가장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총 4차례 모두 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규율할 수 없다고 해도, 수행비서로 일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스위스 출장 중 당하게 된 최초 사건의 경우만을 한정해서라도 처벌이 가능하다”며 ”당시 상황은 단순히 지사와 수행비서간의 권력 관계를 넘어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기에는 매우 낯선 환경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안 전 지사 측 전략은) 피해자를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대부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는, 피고인 측 증인들의 주관적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며 ”오히려 도지사라는 매우 위중한 자리에서 비서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생각 못 한 이유가 무엇인지, 두 사람이 데이트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증거도 완전히 부재한 상황인데 안 전 지사는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등 질문의 초점을 안 전 지사에게로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안 전 지사의 결심 공판은 내일(27일) 오전 10시에 열리며 검찰의 구형과 함께 안 전 지사의 최후 진술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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