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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고 농사만 지으며 살 필요 없대요

[엄마, 나 시골 살래요④]

ⓒhuffpost

해외 석사를 마친 30대 싱글 여성이 시골살이를 선택했다. 저자는 12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던 중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농촌생활학교를 발견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등록하여 6주간 합숙하며 귀농·귀촌의 현실과 농촌의 민낯을 확인했다. 저자는 자신처럼 망설이고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빌려 농촌생활학교의 교육 기록을 정리했다.

16일차 - 내가 재미있는 것을 찾자, 그리고 그걸 하며 살자

“오늘은 또 뭐했노?”

라고 엄마가 물어보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오늘은 순창 여기저기에서 각자가 재미있어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와서 나도 저절로 재미있었던 하루거든요. 요즘 언론을 통해서도, 책을 통해서도 독특하게 귀촌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죠. 그런데 우리는 순창에서 교육을 받고 있으니까, 순창에서 귀촌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시골살이에서 농사 이외에 대표적인 밥벌이는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식당을 운영하는 일 같아요. 도시에는 너무 흔한 일이지만, 시골에는 아직 부족한 것들이니까요. 더군다나 국내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지역민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을 상대로 운영할 수 있으니 시작해 보기 좋은 일들 같아요. 오늘 만난 분들은 순창에서 이런 일들로 자리를 잡고 있는 귀촌 1세대들이었어요.

농부의 부엌

농부의 부엌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농부의 부엌이에요. 문 앞에 서자 빵 냄새가 솔솔 풍겼어요. 천연 누룩 발효종을 이용해서 그 날 팔 빵은 그 날 아침에 굽는다는 소문답게, 식당 안은 빵 냄새가 그득했어요. 우리는 순창 읍내에 이런 분위기의 카페가 있다는 것에 놀라며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내부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공간을 채우고 있는 소품들이 주인장의 관심과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죠. 농부의 부엌은 주변 사람들이 직접 키운 농산물들로 밥상을 채우고, 주인장이 산과 들에서 직접 채취한 것들로 차나 간식 메뉴들을 만든다는 식당의 모토에 맞게 실내에도 농작물들이 소품이자 상품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벽면 곳곳에는 여러 시(詩)가 전시되어 있었죠. 고소한 빵 내음, 아름다운 시, 신선한 농산물, 따뜻한 온도 그리고 잔잔한 음악 선율…. 이 모든 게 어우러진 곳. 주인장이 생각하는 농부의 부엌은 이런 풍성한 공간이었나 봐요.

박문식 주인장의 귀촌 이야기를 듣기 위해 둘러앉은 우리는 빵과 차를 먹었는데, 빵이 정말 맛있었어요. 뭐랄까… 건강한 맛이었어요! 고향이 순창인 박문식 씨는 도시로 나가 일하다 올봄에 이 공간을 열었대요. 빵 굽는 일이나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한 적은 없지만, 지금은 그 일의 즐거움에 빠져 있대요. 특히 산과 들에서 채취한 자연의 먹거리들을 접목해서 새로운 메뉴로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 같았어요. 많은 먹거리가 있다지만, 자연 재료 중에는 우리 일상의 식재료로 사용되지 않는 것들이 여전히 많으니까 창조적인 실험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인장은 그런 실험을 통해서 건강한 밥상과 간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순창으로 돌아와 시골살이를 시작했지만, 농사에 전념하기보단 직접 만든 건강한 한 끼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인 거죠.

금산여관

금산여관 금산여관은 1938년에 문을 열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대요. 그런데 순창에서 투숙하는 여행객이 줄고, 신식 모텔과 같은 숙박 형태를 찾는 손님들의 변화로 2007년 폐업했어요. 비어 있던 8년 동안 거의 쓰레기장처럼 퇴색해 버린 이 오래된 집이 2014년 6월에 다시 문을 열었어요. 홍성순 씨 덕분에. 홍성순 주인장은 금산여관에 대한, 그리고 순창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일상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순창이 고향이지만, 일찍 고향을 떠나서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았어요. 백화점에서 20년을 근무했죠. 전 여행을 정말 좋아했어요.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죠.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여자 혼자 여행할 때 정말 필요한 것이 터미널에서 가까운 숙소라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그래서 백화점 일을 그만뒀을 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늘 만날 수 있는 숙박시설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었어요. 우리나라 시골마을에…. 그래서 정말 많이 돌아다녔어요. 터미널 근처, 되도록 개조할 수 있는 오랜 한옥 건물을 찾았죠. 마땅한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는데 엉뚱하게도 내가 절대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던 고향, 순창에 딱 있는 거예요. 이 금산여관 터가. 내가 쓰레기 산 같았던 이 건물과 터를 개조해서 다시 여관을 열겠다고 했을 때 모두 말렸어요. 공사가 시작되고 저도 엄청 후회했죠. 하하하. 지금은 순창을 찾는 많은 여행객과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지만요. 전 지금도 매일 여행을 떠나요. 내가 직접 떠나기도 하지만,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요.”

금산여관은 이미 유명해요. TV에도 몇 번 나왔고, 많은 언론 매체에서 순창 여행을 다룰 때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명소가 됐어요. 무너져 내리던 여관과 그 터를 없애지 않고 오히려 그 흔적을 최대한 살려서 여행객들, 특히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이 안심하고 쉬어갈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을 만든 것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홍성순 주인장 언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녀는 순창이라는 소읍(小邑)의 가
능성을 특히 강조했어요.

“순창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아요. 그게 가능성이에요! 도시에는 뭐든지 넘쳐나잖아요. 그런데 여긴 없는 게 많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더 쉽게 시작해 볼 수 있어요.”

‘없는 게 메리트’라는 노래 제목처럼 지방, 지역, 시골이 오히려 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일지 몰라요.

방랑싸롱

방랑싸롱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방랑싸롱이었는데, 방랑싸롱은 금산여관에 포함된 공간인 것 같기도 하고, 별도의 공간 같기도 했어요. 알고 보니 방랑싸롱은 금산여관 110호를 개조한 공간이었어요!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일을 했던 장재영 씨는 순창 여행에서 머물던 금산여관이 좋아지고, 순창이 좋아져서 이곳에 눌러앉으며 홍성순 씨와 상의해 이곳을 열었대요.

카페는 몇 개 있지만 장재영 씨가 좋아하는 맛의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순창에 있는 수제맥주 공장의 맛 좋은 맥주 역시 제공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에 커피와 맥주를 팔기 시작했대요. 그렇지만 단순히 장사를 하고 싶어서 이곳을 만든 건 아니래요. “순창에 있어 보니까 해 보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아요! 전 방랑싸롱에서 주말에는 미니 콘서트를 계속할 거예요. 조만간 아는 친구들이 재즈 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여기가 작은 콘서트장이 되는 거죠. 아! 향가 터널 가 보셨어요? 그 공간도 엄청 매력적이잖아요! 며칠 전에 순창 군수님을 잠깐 만났는데, 거기에서 행사를 해 보자고 제안했어요. 그 매력적인 공간에서 공연도 하고, 다양한 푸드 트럭들이 와서 맛있는 것도 팔고, 관광객들은 텐트 치고 캠핑도 하고! 여기엔 재미있게 해 볼 만한 일이 엄청 많아요!”

순창 귀촌 1세대들을 직접 만나고 나니 ‘꼭 농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일거리들이 있을 것’이란 말이 조금 실감 났어요.

이케다 하야토는 고치현으로 귀촌 후 출간한 <시골 빈집에서 행복을 찾다>라는 책에서 한 챕터의 제목을 ‘없는 것투성이기에 더더욱 기회의 땅인 지방’이라고 지었어요. 그리고 그 챕터에는 자신이 1년간 발견한 고치현에서 해 볼 수 있는 일, 해 보고 싶은 일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망라해 놓았죠. 고치현 농산물이나 특산물을 판매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일, 지역 먹거리로 만드는 독특한 탁주 제조, 빈집을 개조해 하는 민박사업, 생태뒷간(바이오 화장실)을 활용한 유기농 와인 농장 운영, 캠핑장 경영, 태양광 에너지 판매, 장애인들을 고용한 자벌형 임업 기업 등등 아이디어가 넘쳐나요. 이케다 하야토는 도쿄라는 거대 도시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도 “개인의 의욕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라고 주장해요. 이미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넘쳐 나기 때문에 대단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도 자본과 인력이 없으면 시작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는 거죠. 그에 반해 시골은 좀 다른 환경이래요.

일본 사회만 변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엄마 딸 역시 자꾸 시골을 기웃거리며 귀농이니 귀촌이니 하는 삶이 궁금해져 이리 교육까지 받고 있잖아요. 그게… 좀 다른 삶을 사는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은 거예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시골에서.

우리나라 청년과 관련된 이슈를 도시에 집중해서만 다루지 않고, 지역으로 확대해서 살펴보고자 2014년부터 삼선재단이란 곳이 포럼을 열고 있어요. 2015년에는 보고서도 출간했는데 그 보고서 서문에는 우리나라 청년 중에 (엄마 딸처럼) 도시가 아닌 지역으로, 시골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소비사회에 잠식당하지 않고 직접 만들겠다는 ‘문화적 삶’을 꿈꾸는 청년들의 농촌 이주 현상을, 단순히 ‘귀농’이라는 용어로 국한하기는 어려워졌다. 일본에서 등장한 ‘반농반X’처럼 ‘농사를 조금 지으며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나머지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이전 세대의 귀농이 전업농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농사뿐 아니라 대안적인 삶(다른 삶)과 문화적 귀농·귀촌 등으로 확장된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삶의 방식으로 농(農)을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의 재능을 농촌 지역에서 활용하고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내려는 다양한 시도로 연결되고 있다.”

도시든 시골이든 상관없어요.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아주 간단해요, 엄마.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재미있는 것을 찾자, 그리고 그걸 하며 살자.’ 내가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은 것. 그런데 공교롭게 엄마 딸은 그게 도시보단 시골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더 높은 거예요. 지역에서도, 시골에서도 농사만 지을 필요는 없대요. 그저 내 방식으로 자연 가까이에서 그 흐름에 맞게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거예요. 맞아요. 귀농·귀촌이라는 거창한 말보단, 그냥 시골로 이사하고픈 거예요. 이사.

“대체 시골에서 니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냐!”

라고 되물으실 것 알아요. 그걸 찾아볼게요! 그걸 찾아서 한국식 이케다 하야토처럼 그 목록을 만들어 이사 전에 엄마에게 브리핑할게요! 반농반X의 X자리에 들어갈 것들을 소개할 날을 기다려주세요.

잘 자요,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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