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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6일 11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26일 11시 50분 KST

랭킹 사회

CJ
huffpost

우연히 만난 홍콩 출신 젊은 학자는 한 TV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전세계의 수많은 유사 프로그램을 봤지만, 한국 버전이 가장 잔인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궁금증에 인터넷을 뒤적거려 몇개 클립을 찾아냈다.

<프로듀스 101>이라는 제목으로 여성·남성 버전이 있었고,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 지망생을 함께 모은 세번째 버전이 방송 중이었다. 시청자가 직접 아이돌 멤버를 선발한다는 기획의 이 프로그램은 매회 100여명이나 되는 출연진의 순위를 매겨 탈락자를 걸러낸다. 화면에 등장하는 아이돌 지망생 얼굴 밑에는 누적 순위가 표시되는데, 그 순간 인간은 한낱 숫자로 치환된다. 너는 38위, 쟤는 23위, 아 우는 저 아이는 46위, 곧 떨어지겠구나.

잔인하다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저리 쉽게 ‘사람’을 순위 매긴다니.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리고 누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나. 저 꽃 같은 아이들은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자신을 가리켰던 그 숫자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겠구나.

하긴 요즘 아이들은 모든 것에 랭킹을 매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성적은 10등, 외모는 15등, 잘사는 것으로는 25등. 디지털 기기와 함께 자라난 아이들은 SNS를 활용해서 상시적으로 친구들의 순위를 매기고, 자신을 향한 그러한 평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작성되는 순위 앞에서 각자의 특장점은 그 나름의 가치로 존중받지 못한다.

물론 기성세대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는 성과, 실적, 게다가 팀워크라는 명분으로 성격까지 분석되어 구성원의 랭킹이 만들어지고, 여가생활로 시작한 운동이나 취미에서도 온갖 순위를 만들어 사람들을 경쟁하게 한다. 아무리 정신 차리려 해도 자신을 ‘정의’하는 그 숫자 앞에서 그 누구든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서열이 낮으면 패배감에 빠지고, 조금이라도 순위가 오르면 경쟁심에 불타며, 가장 높은 데 있는 이는 그 자리를 뺏길까 두려워한다. 결국 그 누구도 만족하거나 행복해질 수 없는 구조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랭킹문화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학 순위를 시작으로, 기업 가치를 가늠하는 재계 랭킹, 한 사회를 측정한다며 만들어진 수많은 지수와 지표까지 도대체 그 기준과 목적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게다가 순위가 만들어내는 과열된 경쟁으로 각 기관 본래의 목적이나 가치 등은 잊힌 지 오래다. 예컨대 대학은 학문과 교육보다 취업률에 전전긍긍하며, 기업은 장기적 투자와 기업 가치보다는 당장의 수익률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에 국가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글로벌 랭킹시스템까지 끼어들게 되면 상황은 전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되기까지 한다. 결국 각자의 상태를 스스로 살피고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비교·경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받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랭킹문화 자체가 ‘그들만의 리그’라며 냉소한다. 한 계단이라도 발버둥쳐 올라가려는 이는 그나마 아직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니까. 대부분은 이미 랭킹 밖으로 밀려나버렸으니 말이다. 이럴 줄 알고 이 사회는 또 다른 랭킹을 만든다. 아무도 소외되지 않도록. 공부, 돈, 운동, 외모, 주량, 다이어트, 하물며 빚까지 순위를 정할 것은 차고도 넘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나도 독서실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하는 이에게 주는 ‘라스트 히어로’ 1등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건너편의 저 고등학생만 제치면 말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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