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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가 없는 하늘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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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동법은 1953년 한국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부산에 피난 가 있는 국회에서 제정됐다. 노동법에 대한 지식과 경험도 없이 남북한 체제 경쟁의 수단으로 외국 노동 법제를 모방해 졸속으로 제정됐다는 것이 기존 학계의 대세이지만, 그러한 의견에 대해, 이승만 장기집권 획책을 위한 ‘발췌개헌’ 등 헌법 유린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진행된 활발한 의회 활동과 ‘조선방직 쟁의’ 등을 대변한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 등이 입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룩한 성과를 과소평가해 왔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주장이든지 간에 최초 노동법이 현행 노동법보다 대체로 더 좋은 내용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후 군사정부를 거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나 공무원·교사의 단결권 제한 규정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점차 개악돼 현행법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매우 불순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본래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정치활동이다. 최근 벌어진 최저임금법 논란만 봐도 노동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노사정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비정규직 해법을 논의해 법제화하는 일도 어차피 정치력이 가장 큰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조합원 수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피땀 흘리는 고전적 조직활동도 결국 노동조합의 정치적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 철학에 뿌리를 둔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다. 물의 끓는점을 들어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면 질적으로 변화한다”고 설명하는 바로 그 사회발전법칙이다. 물을 가열하면 점차 온도가 올라가지만 그 성질은 ‘액체’ 그대로다. 온도가 계속 오르다가(곧 에너지가 계속 축적되다가) 끓는점(1기압에서 100℃)에 이르면 순식간에 끓어오르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질인 ‘기체’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유럽 초등학교 철학 교과서에서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예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들기도 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원 수가 점차 늘어나는 ‘양적 변화’를 계속하다가 일정한 역량을 갖추게 되면 정치세력화하면서 노동운동 중심의 진보 정당이 탄생하고, 그 정당이 집권을 하게 되면 여러 사회제도를 바꾸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질적 변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 지금 집권하고 있거나 과거 집권했던 정당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잠깐 생각해보자.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스웨덴 ‘사민당’, 노르웨이 ‘노동당’, 덴마크 ‘사민당’, 스페인 ‘사회당’, 아이슬란드 ‘사민당’,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뉴질랜드 ‘노동당’ 등이다. 모두 노동운동에 뿌리를 둔 진보 정당들이다. 그러니까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서 보면 진보 정당이 여러 차례 집권한 것이 매우 보편적인 상황이고,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나라가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임을 알 수 있다.

노동운동 하던 사람이 정치인이 되면 마치 순수성을 잃은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어리석고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본래 올바른 선택이다. 다만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 노동운동 영역에 그냥 남아 있을 뿐이다.

며칠 전 우리는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 한 사람을 잃었다. 그의 죽음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내가 아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의 빈소를 감히 찾아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회찬이 없는 하늘 아래에서 “우리도 드디어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라고 자랑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자동차회사에 실습 나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청소년 얘기를 하면서 “기숙사 앞마당에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라고 말하다가… 울컥 목이 메었다.

‘우리가 떠난 노동운동 현장을 계속 지키는 사람’이라는 미안함이 스며 있는 얼굴로―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그는 항상 그랬다― 사람들에게 “나보다 내 아내를 먼저 알고 있던 남자”라고 소개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소선 선생님께 했던 똑같은 작별인사를 노회찬에게도 한다. “편히 쉬세요. 남아 있는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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