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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5일 16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25일 16시 09분 KST

아무도 이 지옥을 나갈 수 없다

한겨레
전국철도노조 케이티엑스(KTX) 열차승무지부 해고 승무원들이 21일 오후 서울역에서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 참여한 승무원 180명에 대한 한국철도공사 직접고용에 잠정합의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huffpost

4526일 만에 KTX 승무원들의 복직이 결정되었다. 정리해고 12년, 법정투쟁 10년 만이다. 1심과 2심은 이들의 복직이 옳다고 판결했지만, 양승태의 대법원은 반대로 판결했다. 2심 판결로 받은 임금에 이자까지 1억원을 갑자기 반납해야 하자, 3살 딸을 둔 엄마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12년을 싸웠고,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당한 권리를 찾았다. 여기에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런데 누가 무슨 말을 한다. ‘누구는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기 위해 아등바등하는데, 길거리에서 데모나 하던 사람들이 무슨 능력이 있다고 뽑느냐.’ ‘비정규직도 들어가기 힘든데 떼쓰면 정규직 되니, 나도 취업공부 때려치우고 데모나 하겠다.’ 극우보수가 아니다. 댓글에는 20~30대의 분노가 가득하다.

광주, 세월호, 구의역, 삼성반도체, 미래라이프대학, 정유라, 인천공항공사, 강원랜드, 쌍용차, 최저임금, 케이티엑스 승무원, 공시족.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지금 한국이 처한 곳이 어딘지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광주에 대해, 세월호에 대해, 삼성반도체에 대해, 쌍용차에 대해, 케이티엑스 승무원에 대해 ‘관 장사’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들의 철없음을 지적하고 말겠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당신도 이 세상을 만든 사람 중 하나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대명천지에 벌어진다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돈의 가치가 최고인 세상에서 결국 돈만 벌게 된다면 그건 좋은 게 아니겠느냐는 논리를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누군가의 죽음을 대가로 출세하고, 돈을 벌고,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자들은 지금도 도처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닌가?

이 죽음에는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우리 아이들이 포함된다. 시험지옥을 통과한 학생들은 그 과정 없이 같은 대학생이 되는 누군가를 용납하기 어려웠고, 그들에게 정유라는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고 말했다. 이 죽음에는 몇년째 공무원 시험에 실패하자 부모님 뵐 낯이 없다며 자살을 선택한 청년들이 포함된다. 지금도 공시족의 70%가 자살을 생각하는 위험군이다. 

취업지옥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한 누군가는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스크린도어를 고치러 가서 죽었다. 살아남은 자들을 정규직화하려 하자 취업지옥을 통과한 자들이 공정하지 못하다며 반대한다. 형편이 어렵거나 공부 못한 것들은 발암물질을 다루다 죽어도 할 말이 없다고 여기고, 정규직 노조는 자녀들의 취업을 단협 조건으로 내건다. 로스쿨과 은행에서 부모 배경을 보고 뽑는 세상에서, 취업이 어려운 지역 젊은이를 겨우 말단직에 좀 넣은 게 무슨 잘못이냐고 강원랜드는 항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최저임금을 놓고, 갈 곳 없는 알바들과 한계 자영업자들이 퇴로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대통령은 정의를 놓고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자고 했다. 국무총리는 을과 을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말이다, 그 해결책이 소득주도성장인지 혁신성장인지 모르겠으나, 그 전에 이 무저갱이 왜 생겨났는지부터 말해 달라. 세상이 지옥이다. 누군가는 이 지옥에 빠진 사람들에게 우선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같이 손을 잡고 나가지 않겠는가. 일자리가 많아지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공정이고 정의인지부터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이 지옥을 나갈 수 없다.

정치인 노회찬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KTX 승무원들을 향한 축하 인사였다. 노 의원뿐 아니라 모두가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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