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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3일 10시 32분 KST

예능과 시사 모두 여성이 다시 대세로 떠오르는 이유

여성 주도 프로그램이 10개 넘게 방송되고 있다.

KBS2 그녀들의 여유만만

지난 13일 시작한 ‘거리의 만찬‘(한국방송1)은 여러가지로 ‘용감’하다. 시사프로그램인데 진행자가 모두 여성이다. 코미디언 박미선과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지윤 정치학 박사를 내세웠다. 과거 ‘더블유’(W) 김혜수처럼 여성이 메인 진행자로 나선 경우는 있었지만, 여러명을 모두 여성으로 채운 시사프로그램은 처음이다. 이 프로그램의 정병권 피디는 “균형적인 시각과 다양한 관점의 측면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거리의 만찬 뿐 아니라 남성 진행자가 도맡았던 정통 토론프로그램 ’100분 토론’(문화방송)도 24일부터 김지윤 박사가 진행한다. 한국방송 1라디오는 지난 5월 케이비에스(KBS) 열린토론을 5년 만에 되살리면서 도시건축학자인 김진애 전 민주당 의원을 진행자로 내세웠다.

여성의 약진은 시사프로그램만의 변화는 아니다. 예능에서도 올해 들어 여성이 혼자 혹은 여럿이 진행하는 시도가 잦아졌다. 2016년부터 선보인 엠비시 에브리원의 ‘비디오 스타‘(박소현, 김숙, 써니, 박나래)를 시작으로, 김숙, 송은이, 이영자, 최화정이 나오는 ‘밥블레스유‘(올리브채널), 이영자와 김숙이 진행하는 ‘랜선라이프‘(제이티비시) 등 시사와 예능을 포함해 방영 중인 프로그램만 10개가 넘는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한국방송1)처럼 남성 집단 위주였던 리얼 버라이어티도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티브이엔도 라미란, 장윤주, 김숙이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남성의 보조자 역할처럼 앉아있던 아침프로그램도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끈다. 지난 16일 개편한 ‘그녀들의 여유만만’(한국방송2)은 여성 진행자 5명이 주축이 되어 남성 진행자 한명과 함께 진행한다.

여성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2010년 고작 2개(뉴스 제외·지상파 3사 기준)뿐이었을 정도로 여성은 오랫동안 티브이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2013년 무한걸스(엠비시 에브리원) 이후 사실상 맥이 끊겼다. 한 케이블 채널 예능 피디는 “2010년 이후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되면서 남성 선호가 더 심해졌다. 몸을 던져 망가지는 등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여성들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최근 1~2년 사이 ‘언니들의 슬램덩크‘(한국방송2·2016년) ‘하숙집 딸들’(에스비에스·2017년) 등 시도는 했지만,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한 지상파 예능 피디는 “여성들이 더 잘한다고 생각했던 쿡방, 육아 예능 시대가 된 뒤에도 의외성을 주려고 여성이 아닌 남성을 내세우는 시도가 많았다”고 말했다. 시청률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랬던 티브이가 다시 여성에 눈을 돌린 데는 ‘여성의 공감과 연대’가 중요해진 사회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케이블 예능 피디는 “밥블레스유처럼 ‘사조직’끼리 출연해 뭘하는 콘셉트는 몇년 전만 해도 비판받았는데, 최근에는 여성들이 15년 동안 서로 챙기며 우정을 쌓는 등 연대해 왔다는 걸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들의 연대가 여성들에게 작은 위로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저씨’ ‘꼰대’라고 불리는 등 ‘아저씨’들이 주도하는 분위기를 불편해 하는 시선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올리브TV 밥블레스유

그래서 최근의 여성 진행 프로그램은 과거와 내용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성공한 여성 예능으로 거론되는 ‘해피선데이-여걸식스‘(한국방송2·2005년) 등이 남자 게스트를 초대해 수다를 떨고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등 웃음을 주는 농담 위주였다면, 밥블레스유 등은 삶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공감하는 내용이다. 시사프로그램 역시 자세한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종전의 방식과 달라졌다. ‘거리의 만찬‘은 2006년 해고된 케이티엑스(KTX) 승무원들을 찾아 허심탄회한 속마음을 대화하듯 듣는다. 정병권 피디는 “여성들이 연대하는 모습이 더 따뜻하고 울림있게 다가올 것 같았다”고 말했다. ‘거리의 만찬’ 진행자들은 “호칭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남성 진행자들처럼 으레 하는 나이순으로 서열을 정하는 게 아니라 별명을 만들어 부르며 서로 동등한 위치를 형성한다.

KBS1 거리의 만찬
jtbc 랜선 라이프

박상혁 올리브 피디는 “채널이 많아지고, 유튜브 등 모바일이 티브이를 위협하는 미디어 환경이 된 것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채널 다양화로 40~50대 이상 여성을 타깃으로 하던 지상파도 20~30대 여성에 주목하는 등 타깃층이 세분화되고 있다. ‘그녀들의 여유만만’ 역시 20~30대 여성으로 주시청자 연령층을 낮췄다. 오강선 피디는 “온라인, 모바일 콘텐츠들이 늘어나면서 방송도 타깃층을 좁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진행자들은 모바일 채널을 따로 만들어 방송 외에도 실시간으로 또래 시청자와 소통하며 살림, 육아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젠더 의식이 강해진 사회 흐름과 지상파의 위기 등이 여성 진행자를 앞세운 프로그램이 활발해진 계기가 됐다. 최근의 흐름에 기댄 변화가 아니라, 시청률을 넘어 다양한 시각과 폭넓은 콘텐츠를 담으려면 이런 시도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