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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에는 탁월한 스펙터클과 밋밋한 감정이 공존한다(리뷰)

일본 애니메이션 '인랑'을 리메이크했다.

  • 강병진
  • 입력 2018.07.20 19:21
  • 수정 2018.07.20 19:28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쓰고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연출한 ‘인랑’(2000)에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과장된 스토리와 액션을 지양하고 사실적인 연출과 미학을 극대화시켰다는 것, 그럼에도 모든 장면을 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뚝심의 작품이라는 것, 무엇보다 인간의 내면 속 갈등을 드러내는 우울한 정서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인랑’은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인랑’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는 곧 ‘인랑’에 대한 비호감과 통한다. 캐릭터의 내면 묘사에 치중한 ‘인랑’은 단순한 이야기를 과하게 진지한 태도로 보여준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실사영화로 리메이크된 ‘인랑’에서는 어떤 성취를 기대할 수 있을까? 원작의 우울하고 진지한 태도를 더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 아니면 원작의 이야기에는 빠져있던 또 다른 볼거리들을 상상해내는 것?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과 ‘악마를 보았다’(2010)등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이 리메이크한 ‘인랑’은 먼저 후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전자의 기대도 놓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1960년대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했던 원작의 배경을 영화는 2029년의 한반도로 가져왔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운이 감돌면서 남한과 북한은 생존을 위해 통일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강대국의 경제제재가 이어지면서 경제가 악화되는 등의 혼란이 야기되고, 이 상황에서 반통일무장단체 ‘섹트’가 등장한다. 또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수도방위 특수기동대’란 이름의 대통령 직속의 경찰조직이 설립된다. 이에 입지를 위협받은 공안부와 경찰이 특기대를 무너뜨릴 음모를 꾸미는 가운데, 특기대원 임중경(강동원)은 임무수행 도중 폭탄을 운반하던 ‘빨간망토’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투항하지 않았고, 임중경은 그녀를 쏘지 못했다. 소녀는 폭발로 사망하고, 임중경은 죄책감에 빠진다. 그때 과거 임중경의 동료였으나 현재는 공안부 차장인 한상우(김무열)가 소녀의 유품을 건넨다. 임중경은 유품을 전하기 위해 죽은 소녀의 언니 이윤희(한효주)를 만난다. 그날 두 사람은 남산에서 서울의 야경을 보고, 함께 국수를 먹은 후 그녀의 작은 서점으로 향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애니메이션 ‘인랑’의 시작은 빨간망토 소녀가 폭탄을 전달하는 대규모 시위장면이었다. 영화 ‘인랑’은 이 장면을 비롯해 하수구로 이어진 지하공간등 원작의 무대를 꼼꼼히 살려냈다. 광화문을 배경으로한 반통일단체와 경찰의 시위장면은 돌과 불, 총과 폭탄이 오가는 한 편 드론 정찰기가 시위대를 에워싸는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연출됐다. 특기대와 섹트 사이의 전투 장면은 원작과 거의 흡사하면서도 탁월한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해 리메이크의 강점을 살린 부분도 눈에 띈다. 빨간망토 소녀의 언니 아마미야 케이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후세 카즈키를 만나는 동안 어떤 갈등을 품고 있었을까? 또 후세의 특기대 동기이자 현 공안부 직원인 헨미 아츠시는 후세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었을까? 영화는 원작에서 비워진 부분들을 채우면서 다양한 장르의 색깔을 담아냈다. 영화 ’인랑’은 적대적인 관계의 기관들이 벌이는 정치음모의 이야기이자, 조직 내의 배신과 암투를 그리는 느와르이면서 진짜 의도를 감춘 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하는 첩보극이기도 하다. 물론 자신의 임무와 상대방을 향하는 진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로맨스이기도 하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원작 애니메이션의 단순한 이야기가 실망스러웠던 관객은 더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시선이 교차하는 영화에서 더 많은 볼거리를 경험할 것이다. 액션 장면 또한 더 많고, 더 짙다. 원작에는 없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랑’은 끓어오르지 않는 영화다. 원작의 진지한 태도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짐승이 될 것인가’란 질문을 생각하게 만드는 여백이었다면, 영화 ‘인랑’의 밋밋함은 캐릭터 묘사가 가져온 결과로 보인다. 두 남녀의 주인공에게는 나름 로맨틱한 순간이 있지만, 이후의 그들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본격적인 갈등의 시작인 정치적 상황과 인물들의 운명 사이에 놓인 관계도 가늘어 보인다. 특히 주인공 임중경은 강화복을 입은 특기대원 그 자체다. 얼굴이 없고, 치명상을 입지 않으며 그래서 어떤 무기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하나의 장벽이라고 할까? (물론 그래도 강동원이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관객도 있겠지만...) 임중경은 수많은 위기를 넘나들며 스펙터클한 액션을 완성시키지만, 그의 모험에 마음을 다해 동참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 뜬금없어 보이기도. 원작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영화의 결말에서도 그리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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