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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환자인 그는 죽음을 기록하고 안락사를 이야기한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절박한 물음

  • 백승호
  • 입력 2018.07.20 14:29
  • 수정 2019.03.10 14:52

“항암 마친 날 죽어가지만 살아가고 있다.”

송영균(31)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송씨는 직장암 4기 환자다. 4년 전 암 진단을 받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암과 죽음에 대해 쓰고 있다. 아픈 뒤 SNS에 일상과 사회 이슈에 관한 자기 생각을 더 자주 쓴다. SNS는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기록하는 공간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7월10일 서울 광진구 군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씨는 “약속 시간에 늦어 미안하다”며 자리에 앉았다. 모자를 벗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민머리가 드러났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머리를 밀었다고 한다. 항암제 후유증이다. 송씨는 머리를 만지며 “인터뷰를 한다고 머리 면도를 하고 왔다”며 웃었다. 어제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타투를 했단다. 집에서 키우는 콩고라는 반려식물을 그려넣었다.

송씨는 28살에 암 환자가 됐다. “배가 너무 아프고 혈변을 봐서 검사했어요. 처음엔 병원에서 과민성대장증후군일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어요. 그날이 2014년 5월19일. 암 진단받은 날이에요. 아마 다른 암 환자들도 자신이 암 진단받은 날짜, 시간 그리고 그날의 온도, 풍경까지 기억할 겁니다. 그날은 5월 날씨치고는 더운 날이었어요.”

 

로스쿨에 입학한 해 암 선고받아

 

송영균씨는 그동한 해보고 싶었던 타투를 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식물을 그려 넣었다.
송영균씨는 그동한 해보고 싶었던 타투를 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식물을 그려 넣었다. ⓒ한겨레21

 

2014년은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해다. 변호사의 꿈을 안고 로스쿨에 입학한 해다. 암 치료를 위해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의사가 암이 많이 진행돼 항문을 잘라내야 한다고 했어요. 항문 절제 수술을 받고 인공항문에 배변주머니를 달았어요. 장루장애인이 됐죠.” 암이 다른 장기에도 퍼져 있었다. “암 진단을 받은 2014년에 항암 치료를 20번 정도 받았어요. 2주마다 항암제 주사를 맞고 입원하고 퇴원하고. 너무 괴로웠죠. 암이 간에 전이돼 90% 이상 잘랐어요. 폐에도 암이 있어 잘랐어요. 전신 마취 수술을 5번 했어요.”

암이 간과 폐에 이어 골반으로까지 퍼졌다. “점점 안 좋은 진단을 받았어요. 더 이상 (암이 전이된 장기를) 잘라내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그저 암이 느리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었죠. 처음엔 저도 ‘치료받으면 살 수 있을 거야, 오래 살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죽는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도 처음에는 5년 생존율이 3할 정도라고 했어요. 간에 암이 전이된 이후에는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줘요.”

송씨는 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국립암센터 누리집에서 암 생존율을 찾아봤다. “저랑 비슷한 증후를 보이는 분들 5년 생존율이 6~8%로 나오더군요. 믿기지 않았지만 이제 죽음에 대해 뭐라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페이스북에 죽음에 대한 자기 생각을 조금씩 써내려갔다. “죽는 것 두렵다. 죽어가는 시간에 무언가가 나를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죽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떻게 그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잘 살아가지 못했더라도 잘 죽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암이라는 질병이 몸에 남기는 흔적에 대해서도 페이스북에 적었다. “배에는 가로세로로 길게 난 십자가 모양의 수술 자국과 인공항문을 덮은 배변주머니, 오늘은 씻다가 말고 내 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젊고 아름답고 탄탄한 몸에 겹쳐지는 질병의 여러 흔적. 그것의 괴리감들. 죽기까지 이 몸을 사랑해야지. 이 몸으로 살아서 행복했다고 기억할 것이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끝없는 통증

암 투병하며 받는 항암 치료는 힘들고 고되다. “항암제는 역겨워요. 매번 구토를 심하게 해요. 항암을 할 때마다 몸이 크게 충격받는 것 같아요.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져요.” 몸의 병은 마음도 다치게 한다. 암 투병을 하며 불안 증세도 왔다. 1년 전부터 정신과 협진도 받고 있다. “3년 정도 암 치료를 받고 너무 힘들었어요. 우울증 진단을 받았어요. 잠을 잘 수가 없어 수면제 처방도 받았죠.”

송씨는 죽음보다 두려운 건 통증이라고 말한다. 통증이 부르는 고립과 외로움은 어둠 속에서 커진다. “통증이 오면 골반이 깨질 것 같아요. 강렬해요. 죽음은 순간이잖아요. 통증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건 끔찍해요.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고통이 두려워요.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는 게 아름다운 일인가. 그게 정말 삶을 존중하는 일일까요?”

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살아가야 했다. 항암 치료를 안 받는 동안 학교에 나갈 수 있어 복학했다. 다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암 환자는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말기 암 환자를 그런 식으로 그리고요. 그래서 무조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해요. 난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송씨는 암 환자가 이 사회에서 “어딘가의 중간에 걸린 것” 같단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살아갈 수 없어요. 뭐든지 결정하기도 어렵고 보통의 삶을 살 수 없어요.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느낌이에요.” 사람들은 암 환자에게 제대로 된 위로를 못한다고 한다. “무조건 나을 수 있다고 얘기해요. 아니면 밑도 끝도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해요. 극복과 체념, 두 가지만 있어요. 그리고 죽음을 타자화해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데요.”

그렇다고 암 환자로 살아가는 게 우울하기만 한 건 아니란다. “힘든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죽어가는 삶을 사는 거죠. 이것도 삶이에요. 암 덕분에 철저히 혼자가 되어보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나에 대해 알게 되고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었어요.”

암 진단을 받고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곱씹게 됐다. “흔히들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지라’고 하잖아요. 학창 시절 큰 야망을 갖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젊을 때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건강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선생님도 없었고 부모님도 그랬고요. 미웠어요. 공부를 많이 하다 죽은 사람 없다는 말만 들었어요. 건강은 뒷전이었죠.”

송씨는 이제 야망을 거둬내니 한결 편안해졌다고 한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걸 하게 돼요. 여행도 가고 내가 보고 싶은 소소한 물건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채우기도 해요.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을 듣는 게 즐거워요. 그런 게 질병을 겪은 시간을 견디게 해줬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뻤던 순간

 

 

무지개 색깔의 반지를 낀 송영균
무지개 색깔의 반지를 낀 송영균 ⓒ한겨레21

송씨는 죽음의 순간을 생각한다. “죽는 건 순간이잖아요. 그 순간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시험공부를 할 때 마지막에 핵심만 추리잖아요. 그것처럼 그 순간 보는 건 내가 경험한 것들의 요약본이겠죠.” 송씨는 지난 기억 중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많단다. “기뻤던 순간들이죠.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벅찬 감정을 느꼈어요. 고마워요.”

송씨는 올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적극적 안락사’도 고민해보았다. ‘적극적 안락사’는 불치병 등의 이유로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약물 등으로 목숨을 끊는 능동적인 행위다. “스위스에서는 안락사가 합법이잖아요. 안락사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도 찾아봤어요. 1천만~2천만원 정도 들더군요. 내가 원하는 날짜에 내가 죽음을 결정할 수 있잖아요. 그 안락사 비용을 모으기 위한 스토리펀딩을 해볼까 생각도 했어요.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제 안락사 논의를 해야죠.”

하지만 국내에서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소극적 안락사’만이 허용된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결정에 관한 법률’이 2016년 1월8일 국회를 통과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2017년 8월, 연명의료 결정은 2018년 2월부터 시행됐다.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

이처럼 연명의료 중단은 합법화됐지만 ‘적극적 안락사’는 입법, 의료계 등 어느 분야에서도 아직 활발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정의와 기준 등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6개국에서만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다.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권리와 삶에 대한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과 인간의 목숨을 끊는 것은 엄연한 ‘살인’이라는 목소리가 충돌하며 안락사 합법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송씨는 침대 옆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쓰고 서명한 종이를 놓았단다. 2년 전에 쓴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며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죽어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인 것 같아요. 잘 죽고 싶어요. 편하게 죽으면 좋을 텐데….” 송씨가 암의 고통 속에서 살며 죽음을 준비하는 만큼 우리 사회는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문화가 확산될 수 있을까. 계속 쉬쉬하며 덮어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을까.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절박한 물음이다.

 

송영균 씨는 지난 3월 9일 오후 5시경 소천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어준 故 송영균 씨를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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