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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계엄령 문건과 1979년 12월12일의 밤

  • 정찬
  • 입력 2018.07.20 14:29
12.12 군사반란사태의 모의 장소로 알려진 수도방위사령부 30경비단 소속 전차와 장갑차 부대가 새벽 경복궁을 철수해 새로 창설된 제1경비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12.12 군사반란사태의 모의 장소로 알려진 수도방위사령부 30경비단 소속 전차와 장갑차 부대가 새벽 경복궁을 철수해 새로 창설된 제1경비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겨레
ⓒhuffpost

1979년 12월12일 밤이었다. 광화문의 주점에서 지인과 술을 마시다 10시 넘어 일어나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는데, 버스가 안 온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정말 버스가 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한강 철교가 끊어졌다고 외치면서 지나갔다. 택시를 붙잡고 행선지를 말했더니 운전기사가 한강 철교가 통제되어 그쪽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던 중 신문사에 근무하는 선배와 마주쳤다. 그도 차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는 통금이 있을 때라 귀가를 포기하고 주점 골목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둑하고 텅 빈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육중한 쇠붙이들이 부딪치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니 수십대로 보이는 탱크가 광화문의 텅 빈 밤의 대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기괴하면서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북한군이 남침했나? 그런데 왜 탱크가 광화문 한복판을 달리지? 남루한 한옥 여관에 설치된 공중전화기 다이얼을 부지런히 돌리던 선배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을 처음 보았을 때 그날 밤 광화문의 기괴하면서 초현실적인 광경이 떠올랐다. 특정 세력이 목적 달성을 위해 국가의 통치 구조와 의사소통 구조를 무력으로 통제, 파괴하는 행위가 쿠데타이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이 섬뜩한 것은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시민을 종북으로 규정하면서 국가 전복 세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점이다. 기무사 문건은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종북 세력의 국가 전복 위협과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을 내세웠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행사하는 시민을 잠재적 국가 전복 세력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더욱이 촛불집회는 세계가 찬사를 보낸 평화로운 시위였다.

분단 이후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제가 불안정했던 이승만 정부가 친일 세력을 끌어들여 강력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구축하여 이념 갈등을 빠르게 해결함으로써 국가기구는 급속히 팽창했다. 특히 군의 팽창이 두드러져 한국전쟁 이전에 10여만명이었던 정규군이 전쟁 후에는 60만명을 넘어섰다. 사회경제적 발전 단계로 보면 기형적 성장이었다. 이 기형적 성장이 1961년 쿠데타와 그 뒤를 이은 군부 권위주의 통치의 토대 역할을 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의 네트워크로 정착했다.

이데올로기란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도구이다. 인간을 위한 도구가 목적이 될 때 인간은 도구로 전락한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인권을 무참하게 유린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권이 유린되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유린되었음을 뜻한다. 국가권력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소중한 본질임이 여기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기형적 형태로 발전해온 데에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품을 수 없게 한 분단체제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민주주의보다 우위였던 것이다.

인간은 권력의 네트워크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한다. 인류가 샤머니즘의 미망에서, 왕권신수설의 감옥에서, 종교의 도그마에서 깨어난 것은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를 인간을 감금하는 권력의 네트워크와, 감금에서 벗어나려는 인간과의 갈등과 충돌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의 권력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가능한 한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자유롭고자 하는 인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다. 권력이 추구하는 궁극의 존재 양식은 피권력자로 하여금 자신이 권력의 자장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무상 속에서 권력이라는 생명이 터득한 지혜로운 생존술로,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군부를 비롯한 특정 권력 세력들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표나게 내세우는 것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커다란 역할을 해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냉전체제의 산물인 반공 이데올로기의 권력 네트워크 속에 지나치게 오래 갇혀 있었다. 흐르지 않는 사회는 고인 물처럼 썩는다. 지난 4월 시작된 남북과 북-미의 화해 기류는 한국 사회가 늪의 세계에서 강과 바다의 세계로 흘러가는 역사적 모멘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조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거 청산 없이는 미래로 제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군이 국가 안보의 핵심 집단이라는 점에서 과거 청산의 중대성은 그만큼 무거워진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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