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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학교에서 '등받이가 있는 평상 만들기'를 배우다

[엄마, 나 시골 살래요 ③]

  • 이아나
  • 입력 2018.07.19 17:14
  • 수정 2018.07.19 17:15
ⓒhuffpost

 

해외 석사를 마친 30대 싱글 여성이 시골살이를 선택했다. 저자는 12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던 중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농촌생활학교를 발견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등록하여 6주간 합숙하며 귀농·귀촌의 현실과 농촌의 민낯을 확인했다. 저자는 자신처럼 망설이고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빌려 농촌생활학교의 교육 기록을 정리했다.

10일차 - 문명의 편리함 대신 선택하는 자립의 자유로움

엄마, 벌써 열 번째 날이에요. 10일간의 교육 내용을 뒤돌아보면 농사짓기 기술을 배웠다기보다는 농사만이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농촌 생활을 이해하기 위한 교육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상관없어 보이는 것을 배우거나 직접 만들어 보는 날들이 꽤 있었죠. 남은 기간에는 농가에 찾아가서 농사 실습을 하거나 농촌 사회를 큰 그림으로 살펴보는 강의를 들을 듯해요. 그런 측면에서 직접 뭔가를 만드는 실습의 정점에 닿은 날이 오늘 같아요. 하하. 아마 엄마가, “별걸 다 만들어쌌네~.” 라고 할 듯.

오늘은 오전, 오후 내내 목공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나무 평상을 만들었고, 저녁에는 맥주를 만들었어요.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6주간의 교육 과정 중 2~3주 차 교육의 큰 제목이 ‘뚝딱뚝딱 마을 홍반장 되기’였더라구요(6주간 교육은 1주 차 ‘농사 감잡기’, 4~5주 차 ‘내게 맞는 농촌 생활 찾기’, 마지막 6주 차 ‘우리 이제 귀농하자’로 구성되어 있어요). <홍반장>은 2004년에 개봉한 영화 제목인데 동네 반장인 주인공 남자가 모르는 일도 없고 못 하는 일도 없는 캐릭터라 슈퍼맨 같은 사람을 홍반장이라고 비유하거든요. 아! 이 홍반장이랑 나랑도 연관이 좀 있어요. 대학 때 한 선배가 이상형을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내 희망사항을 다 듣고 난 선배가,

“넌 홍반장이 이상형이구나! 뭐든지 다 해결해 주는 남자!”

라고 정리해 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 파트너가 홍반장이길 원했다기보단 내가 홍반장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은 직접 해결할 줄 아는 사람. 뭐 가능하다면 그렇게 차츰차츰 쌓은 기술을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눌 수 있는 사람. 도시를 떠나 시골살이를 해 보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서 이 교육을 신청한 것이었는데…. 단순히 시골살이만이 아니라 내가 예전부터 막연히 바라던 삶의 방식을 기억하게 하네요.

목공기술은 시골살이에 아주 유용한 기술이래요. 어제 배운 적정기술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죠. 아무래도 나무는 시골에서 구하기 쉽고, 튼튼하고, 건강에 해롭지 않은 재료니까요. 우리에게 목공기술의 기초를 알려준 선생님은 순창에서 실제로 목공소를 하는 분이셨어요. 뭘 만들까 고민하다가 우리는 센터에 필요한 것을 만들기로 했어요. 센터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들러서 안부를 나누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어 가는 곳이기 때문에 센터 앞마당에는 사람들이 자주 모여 있곤 해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편히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잠시 쉬었다 가기 좋은 평상을 만들기로 했죠.

오전에는 어떤 모양으로 디자인하게 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모양의 구조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각 부재를 치수대로 잘라내는 작업과 방충, 방수 기능뿐만 아니라 예뻐 보이는 역할도 하는 칠하기 작업까지 했어요. 요즘은 인체에 유해하고 독한 냄새도 오래가는 유성페인트보다 친환경 성분의 우드 스테인(Wood Stain)을 주로 쓴다기에 우리도 우드 스테인으로 칠 작업을 했죠.

오후에는 각 부재를 조립하는 과정으로 들어갔어요. 조립하는 과정에서 전기드릴, 전기톱 그리고 망치를 썼죠. 예전 같으면 위험해 보이고 겁이 나서 남자 동료들이 도구를 다루면 나무를 붙드는 정도의 보조 역할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은 내가 홍반장이 될 테다!’ 하는 마음으로 도구들을 이용해 직접 조립을 해 봤어요.

그렇게 내가 했던 못질의 흔적! 전기드릴을 써도 되지만, 피부와 직접 맞닿는 면은 일반 못이 더 안전하다는 선생님의 권유로 못질을 했어요. 못을 한 번에 박겠다는 욕심으로 망치를 쓰면 팔만 아파요.

힘으로 못을 박겠다는 생각보단 되도록 일정한 힘과 간격으로 못 머리와 망치가 최대한 잘 부딪히게! 땅! 땅! 땅! 땅!

그리하여 등받이가 있는 평상 두 개가 완성되었어요! 하나도 좋지만 둘을 맞대니 더 편히 다리를 쭉 뻗고 마주 앉을 수 있겠죠?

“이렇게 평상을 만들었으니 조만간 삼겹살 파티 한번 해야겠네!”

“그것도 좋고, 밤에 나와서 앉으면 별 보기 딱 좋겠어!”

온 하루를 써서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에 딱 맞게 제작한 평상에 앉자, 하고픈 일들이 저절로 퐁퐁 솟아오르는지 서로 생각을 쏟아내기 바빴어요. 난 동료들의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내가 못질한 자리와 드릴을 박은 자리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만져봤어요. 홍반장이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못질부터 차근차근 익숙해지고 싶어요.

저녁 식사 후에는 맥주를 만들었어요. 원래 우리 교육 과정에는 없었는데, 농촌생활학교 출신 선배에게 부탁해서 생긴 시간이었죠. 뚝딱뚝딱 홍반장 되기가 교육 목표였던 탓인지, 교육생들은 모이기만 하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직접 만들어 쓰겠다는 의욕을 보였어요. 이젠 기성 제품을 사기만 하는 단순한 소비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 직접 만드는 기술을 가지면 좋을 것 중에서 최고는… 역시나, 술이었죠.^^;;

“쌀로 우리 술을 빚는 방법은 배웠는데, 맥주는 만들어 마실 수 없나? 나는 시원한 맥주도 좋은데….”

지나가던 교육팀장이 이 말을 듣고는,

“여기 옆 마을에 귀촌한 김선배가 맥주 만들 줄 알잖아요. 최근에 만들어 마시고 남은 게 아직 센터에 있을걸요?”

그래서 우리 교육생 일동은 귀촌한 선배를 강사로 초빙해 맥주를 만들게 되었어요. 우리의 부탁으로 생각지 못한 교육을 하게 된 귀촌 선배는 맥주 만들기에 앞서, 그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전해 줬어요. 우리는 몰트를 만들어서 당화하는 과정은 거치지 않고, 안전하게 성공률이 높은 맥주 원액을 이용하기로 했죠! 오늘의 일일 선생님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M사의 맥주 원액 세트 중에서 우리는 인디아 페일 에일(IPA)과 스타우스(Stout) 두 종류를 선택했어요.

맥주 원액과 물 그리고 설탕을 수제맥주용 저장탱크에서 섞어서 잘 관찰하고 열흘 정도 후에 페트병에 옮겨 담아야 했어요. 맥주 역시 만드는 과정은 비교적 수월했지만, 설탕을 통한 당화가 필요해서 숙성 과정이 중요하대요. 페트병에 옮길 때 설탕을 또 소량 더하고, 한 달 정도는 지나야 탄산감이 있는 맥주로 마실 수 있다더라구요. 오랜 보관을 위해서 맥주를 담은 저장탱크를 며칠 전 빚은 술 항아리가 있는 방으로 옮겼어요. 그래서 그 방이 우리의 보물창고가 되어 버렸죠. ㅋㅋㅋ.

홍반장처럼 뭐든지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사람은 되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뭐든지 표준화된 규격에 맞춰서 제조된 상품들을 구매하기만 하는 소비자나 문명의 편리함만 누리는 현대인이 되기보다는 나의 필요와 스타일에 맞는 것을 직접 만들거나 기존 것을 고쳐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렇게 직접 만들고 고치는 과정이 조금은 번거롭고 또 제품이 완벽하진 않겠지만요. 문명의 편리함 대신 선택하는 자립의 자유로움. 앞으로 도시에 살건, 시골에 살건 이걸 내 삶의 실천 과제 중 하나로 여기며 살래요. 문명으로부터의 자립이라고 해서 원시인처럼 살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선은 내가 직접 하려고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그걸 할 수 있는 이웃이나 친구를 찾아서 함께 궁리하고, 그래도 어려울 땐 당연히 전문가를 찾거나 기업의 문을 두드릴 거예요!

엄마는 내가 돈 많이 벌어 몸 편히 살길 바랄 테니 지금 내가 말하는 고생스러움은 엄마가 원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서 마음이 무거워지다가도, 어쩌면 뭐든 이렇게 내 손으로 만들어 살고 싶어 하는 건 엄마의 만능 손 유전자 때문일 거란 생각도 들어요! 실과 바늘로 만들 수 있는 웬만한 건 다 만들어 쓰고, 종이로 각종 가구를 만들 만큼 한지공예에도 능통하고,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것과 비슷한 맛을 창조하는 엄마의 만능 손! 나도 그 손을 보고 자라서 이렇게 뭐든 내 손으로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요? 다음에 만나면 엄마 손을 꽉 잡고 그 기운을 더 받아 와야겠어요!

그럼 엄마, 오늘도 평화. :)

* 에세이 ‘엄마, 나 시골 살래요!(이야기나무)’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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