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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푸틴 정상회담, 틈새의 축복

ⓒhuffpost

“생산적인 대화는 미국과 러시아를 위해서 좋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좋다.” 맞는 말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누가 뭐래도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강대국이다. 세상을 위기와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고, 보다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에서 생산적 합의를 도출했다면 환영할 일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 말을 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의 대화 상대자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만나서 평화를 키울 틈새가 열린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현역’ 핵탄두 4000기와 폐기를 기다리는 ‘퇴역’ 핵탄두 2550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언제라도 사용될 수 있는 핵탄두만 1350기가 넘는다. 러시아는 핵탄두를 총 6850기 보유하고 있어 미국의 핵보유고를 다소 상회하고 있지만, 전략핵탄두 수에서는 미국에 뒤지고 있다. 북이 최대 20여기 정도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것에 비해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력은 말 그대로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공포스러운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미-러 정상회담 결과는 환영할 일이다. 두 나라 정상이 양국 간 핵전력 균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전략균형이 붕괴될 가능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었다. 양국 간 무제한 군비경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한 ‘전략공격무기 감축 및 제한에 관한 조약’(New START)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적 입장인 것이 이유의 하나였다. 거기에 미국은 전지구적으로 미사일방어체계를 확대 배치하고 성능을 개량하고 있었다. 두 나라 사이에 유지되고 있는 전략무기 제한 체제가 무너지고 미-러 전략균형이 깨질 위험이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 위험한 추세를 중단시켰다.
전략무기조약에 대해 논의하고, 핵 비확산과 시리아 및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 모든 부분에서 대화를 이어가고 협력하기로 약속한 것 자체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합의를 이룬 것은 아니다. 이란의 핵프로그램 중단에는 양국의 이해가 일치하지만 그 방법에는 여전히 차이가 남아 있다.

시리아의 평화와 우크라이나의 안정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지만 근본적인 국가이익의 차이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대화도 없이 모든 부분에서 대결하는 것보다는 바람직한 면이 있다. 특히 ‘북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는 데 양자가 합의한 것은 고무적이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견수렴이 미-러의 전반적 대화의 일환이라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한반도에 평화를 일굴 틈새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 틈새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정치를 위해서 평화를 희생시키기보다는 평화를 위해서 정치적 모험을 불사하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는 동안 한반도는 숨 쉴 틈을 얻는다. 이 틈새를 최대한 평화로 채워넣을 일이다. 나중에 미국의 정책이 뒤집어져도 되돌이킬 수 없도록 비가역적 평화를 이 틈새에 일구는 것이다. 이 틈새는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축복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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