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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0만원어치 팔아도 편의점이 적자인 이유

그는“이중 수탈”이라고 했다

18일 서울 강북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편의점. 이 편의점을 8년째 운영 중인 김민철(가명·49)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당연히 힘들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점주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돈을 벌 수 없는 편의점 프랜차이즈 산업의 수탈구조다”라고 말했다.

 

 

수탈구조란 게 궁금했다. 김씨는 기자를 사람 한명 겨우 들어갈 넓이의 사무실로 이끌더니 지난 5월치 ‘가맹점 정산서’를 출력했다. 음료나 빙과 구입이 많은 여름과 추운 겨울은 매출 차이가 많이 나는데, 5월은 1년 가운데 가장 평균적인 달이라고 했다. “항목이 너무 복잡해 나도 정확히 한달에 얼마 버는지를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정산서를 보니 김씨 말이 엄살이 아니었다. 수입·지출 항목만 70여개에 달했다. 우선 가장 위 ‘상품 매출액’을 보니 3100만원이었다. “잘 보라”며 김씨는 조목조목 설명을 이어갔다. 3100만원 매출 가운데 2400만원이 ‘상품매출원가’다. 쉽게 말해 물건값이다. 재고 비용 등을 합산해 최종 계산된 이익은 670만원이다. 비고란에는 ‘지피(GP)율 21.53%’라고 적혀 있다. 마진을 말한다. 김씨는 매출 원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구매력이 막강한 편의점 본사가 납품 원가를 조금만 낮춰도 점주들이 죽는 소리는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로열티라 부르는 가맹수수료를 뗀다. 매장마다 다르지만 김씨 매장은 35%다. 670만원에서 약 240만원의 가맹수수료를 뗀 432만원이 김씨에게 배분된 금액이다. 김씨는 이를 “이중 수탈”이라고 했다. 상품 공급으로 이미 막대한 유통마진을 남기는 편의점 본사가 굳이 로열티까지 받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 치킨 등 외식 중소 프랜차이즈들은 유통마진만 챙긴다. 로열티는 별도로 받지 않는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박호진 실장은 “현재 로열티를 따로 받는 프랜차이즈 본사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달에 432만원이면 한국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 329만원보다는 많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번째 장을 넘기니 ‘가맹점 부담 비용’ 항목이 보였다. 총 19가지다. 소모품 비용(8만8천원), 점포 유지·보수비(1만2천원), 전산 유지·보수비(5만1천원), 전기료(34만원), 포장비 및 봉투보증금(9700원), 카드수수료(26만원) 등이 깨알처럼 줄줄이 빠져나간다. 이 가운데 ‘상품폐기’ 항목은 꽤 큰 70만원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을 폐기처분하면서 발생한 손실이다. 최근 도시락과 삼각김밥 등이 인기여서 늘고 있단다. 이들 제품은 유통기한이 하루다. 최소량을 주문해야 하지만 진열장이 비어 있으면 마케팅에 불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주문해야 한다.

가맹점 부담 비용에 더해 ‘기타 공제금액’이 또 빠져나간다. ‘미송금’(132만원)과 ‘재고상품 부족’(40만원)이 눈에 띈다. 미송금은 매일 발생하는 현금 매출을 본사로 송금해야 하는데 누락한 금액이다. 사실상 ‘이자’나 다름없는 미송금 위약금(7000원)까지 물어야 한다. 재고상품 부족은 도난 등으로 판매액과 물건 재고량이 맞지 않는 경우다. 이것도 점주가 낸다. 대신 본부지원금이라는 항목으로 가맹 본사에서 판매장려금(100만원), 전기료 지원금(17만원), 카드수수료 지원금(9만원) 등이 입금되긴 한다. 이게 185만원 정도다.

 

 

정산서 마지막 장 마지막 항목엔 이 모든 항목을 더하고 뺀 ‘가맹정산실금액’이 적혀 있다. ‘278만원’이다. 한달 3100만원 매출을 올린 김씨에게 최종 입금된 돈이다. 이게 끝일까? 여기서 아르바이트 직원 두명의 인건비(250만원)와 임대료(100만원)가 빠져나간다. 바로 72만원 적자로 돌아선다. 김씨 매장의 한해 매출은 3억원 정도로 편의점 평균 매출(약 6억원)보다 떨어지는 곳이라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영세 편의점주의 고통이 더 크다는 걸 방증한다.

점주들이 인건비에 민감한 것은, 이미 뗄 거 다 떼고 남은 액수에서 최종적으로 인건비가 빠지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본사에 입금하는 비용이 훨씬 더 큰데, 최종 수익에서 인건비를 덜어내는 구조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이는 것이다.

김씨는 “편의점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곳”이라며 “일단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 기회란 근처 편의점 점주가 먼저 문을 닫는 것을 말한다.

김씨 편의점 근처에만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편의점 8곳이 있다. 현행 제도는 이를 규제하지 못한다. 편의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한 건물 안에 두곳이 영업 중일 정도로 사회적 문제가 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거리 250m 이내 편의점 출점을 제한하는 모범거래 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기준은 2014년 슬그머니 폐지됐다.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규제 완화 여론의 흐름을 탄 것이다. 그 이후로 편의점은 동일 브랜드만 아니면 얼마든지 근접 출점이 가능해졌다.

김씨도 2010년 창업 뒤 한동안 2곳의 편의점을 운영했다. 한달에 800만원 정도 수익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근접 출점 금지 제도가 없어진 뒤부터 수익이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이는 인건비 상승과는 무관한 제도의 탓이 크다.

인건비가 오르면 힘든 건 사실이다. 본사에 나가는 비용이 계속 발생하는데 여기에 인건비가 추가로 부담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법정 최저임금은 맞추려고 노력해온 김씨는 지난해 월평균 220만원의 인건비를 지출했다. 이게 올해 들어 250만원으로 올랐고, 내년에는 270만원 정도를 예상한다.

하지만 그는 인건비보다 불공정한 갑을 관계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인건비는 많이 올라봤자 시간당 천원이다. 반면 무제한으로 편의점 개설이 가능해진 뒤 편의점 본사는 수천억원을 더 벌었다. 그 수익은 점주들로부터 나온 거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점주 사정은 어찌 됐든, 일단 가맹점을 늘리면 본사가 유통마진을 남기고 로열티도 받아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맹 본사는 가맹수수료를 인하 또는 폐지해야 하고, 정부는 원천적으로 근접 출점을 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점주들이 단체로 가맹 본사와 협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영세 편의점을 “난파선”이라며 “주변에 가맹 본사와 정부라는 구명보트가 있는데도,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에게 “누군가 편의점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누가 옆에서 죽어가는 꼴 보고 싶으면 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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