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8년 07월 19일 15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19일 17시 56분 KST

뉴질랜드 이민 7년, 여기선 가정을 꾸려도 될 것 같다

[이민자 인터뷰⑬] 뉴질랜드 오클랜드 최재영

김병철
여름휴가로 한국에 온 최재영씨를 2018년 1월 서울에서 만났다.
huffpost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최재영(38세)

- 거주지 : 뉴질랜드 오클랜드

- 거주 6년

- 보트 빌더(영주권)

Timeline

2003년 CCTV 제조회사 입사

2004년 대학 졸업(컴퓨터공학 전공)

2005~2010년 반도체회사 근무

2011년 필리핀 어학연수

2012년 뉴질랜드 도착, 보트 빌더 과정 시작

2016년 요트 제조회사(Yachting Development Ltd.) 입사

2017년 영주권 취득

*모든 내용은 2018년 1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최재영 제공
2017년 최재영씨 회사가 제작한 40미터짜리 배

주중엔 개발자, 주말엔 다이버

빨리 졸업해 돈을 버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던 재영씨는 대학생 3년 때 선배가 팀장으로 일하던 회사에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개발자)로 취업했다. 매일 회사에 놀러 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개발 일은 재밌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이직한 새 회사의 조직 문화는 그렇게 좋아하던 개발 일도 조금씩 싫어지게 만들었다.

- 한국에서 직장 생활은 어땠나요?

″컴퓨터공학과 나와서 CCTV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아날로그 CCTV가 디지털로 바뀌는 시점인데, 내가 만든 제품이 나온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몇 달 임금이 체불돼서 반도체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죠. 처음 2년 정도는 괜찮았는데 (회사 생활이) 점점 힘들어졌어요.

저는 이직할 때쯤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해서, 주말에 항상 다이빙을 하러 갔어요. 근데 회사는 주말 출근이나 야근을 자주 하길 바라면서 윗사람과 마찰이 생겼어요. 또 회사에서 라인도 타야 하는데, 전 그런 걸 즐기지 않아서 일이 재미없어지더라고요.

회사를 옮기면 좀 좋아질까 싶어 이직도 고민했는데, 마침 제가 있던 사업부가 없어져서 자연스럽게 정리해고가 됐어요.”

- 그런데 어쩌다가 요트 제조할 생각을 한 거예요?

″제가 다니던 다이빙숍 사장님이 조그마한 요트를 갖고 있었어요. 사장님이 요트를 가리키면서 ‘저 요트가 얼마짜리인지 알아? 저게 1억5000만 원 정도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단순하게 ‘저걸 만들거나 디자인할 수 있으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다이빙을 하다가 강사 자격증을 땄어요. 지금은 많이 대중화됐지만 그때만 해도 다이빙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분들이 했어요. 파트타임으로 강사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돈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내가 큰돈이 도는 산업에 있어야 나한테 떨어지는 돈이 많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적은 돈 도는 곳에서 있으면 나에게 떨어지는 것도 적구나’ 이런 게 겹쳐서 ‘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재영
유니텍(Unitec) 1학기 때 딩기요트를 만들고 있는 최재영씨

네덜란드로 착각하고 선택한 뉴질랜드

요트에 대한 꿈을 갖고 방법을 강구하던 그는 뉴질랜드의 요트학교에 가기로 방향을 정했다. 마침 정리해고로 목돈이 생긴 그는 떠날 결심을 굳혔지만 중2 때 포기한 영어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요트 학교에 입학하려면 영어 성적이 필요해서 일단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 이민 준비는 어떻게 하셨어요?

“3년 동안 자료 조사하면서 천천히 준비했어요.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게 안 맞기 시작할 때부터 어느 나라가 요트를 잘 만드나 찾아봤어요. 8개국 리스트를 뽑았는데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언어를 새로 해야 해서 영어권으로 가기로 했죠. 그중 환율이 낮고, 졸업 후 워크 비자를 주고, 학교 다니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 뉴질랜드랑 호주더라고요.”

- 뉴질랜드에 정착할 생각이었나요?

″살러 간 건 아니고 전 세계에서 ‘유니텍(Unitec)’이 제일 유명하다니까 뉴질랜드로 간 거예요. 그때 환율은 영국도 비슷했지만, 영국은 졸업 후 취업이 어렵더라고요. 간혹 뉴질랜드랑 네덜란드랑 헷갈려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그랬어요. 뉴질랜드가 유럽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결정한 거예요. 졸업하면 유럽에서 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지도를 봤는데 오세아니아더라고요(웃음).”

- 회사를 나왔지만 뉴질랜드에 요트 공부하러 간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약간 오기였어요. 회사에서 정리해고되면서 자금도 모은 게 가장 컸죠. 다시 취업하면 가진 걸 버리지 못하는 핑곗거리가 생길 것 같았어요. 근데 막상 뉴질랜드 가니까 별거 아니더라고요. 왜 진작 못 버렸을까? 일찍 버렸으면 영어라도 쉽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 영어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아는 동생이 필리핀에서 주중엔 어학원 다니고 주말엔 다이빙 강사하라고 해서 그쪽으로 먼저 갔어요. IELTS(영어시험)가 사람 피를 말리더라고요. 아예 기초가 없어서 8개월 동안 공부했어요. 그때 사진 보면 눈이 맛이 가 있어요. 첫 성적은 4.0. 정확하게 3개월에 0.5씩 올라서 5.5 입학 커트라인을 만들었죠.”

최재영
최재영씨가 공부한 유니텍(Unitec Institute of Technology)

- 학교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유니텍(Unitec Institute of Technology)이라고 학사 학위도 나오는 직업학교예요. 한국의 폴리텍이라고 보면 돼요. 4년 코스인데 처음 1년은 작은 배 두 척을 만들어요. 한 학기 동안 1.5m 배를 만들고, 그다음 학기엔 5m짜리를 만들어요. 나머지 3년은 배 설계를 전반적으로 배워요.

보트 설계 쪽에 이력서를 돌려보니 보트 빌더 경력이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이쪽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현장을 모르는데 어떻게 설계를 할 수 있냐’는 마인드가 있어요. 잘 나가는 디자이너나 설계사도 현장에서 일하다가 넘어가요. 배를 직접 만들어 보고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조합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설계도 제대로 할 수 있어요.”

- 학교 공부는 어땠나요?

″배우는 건 한국이랑 비슷해요. 근데 과제를 논문 수준으로 해야 해요. 한국에서 리포트 내면 인터넷에서 찾은 거 조금 수정해서 냈는데, 여기선 1000자를 쓰려면 책 5권 이상을 읽어야 해요. 배 신기술도 계속 나오니 잡지도 봐야 하고요. 3학년 졸업 과제로 1년 동안 배 한 척을 설계하고,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 논문도 써야 해요.”

-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요트 산업은 어떤 곳인가요?

″저는 운이 되게 좋았어요. 요트산업이 사치 산업이잖아요. 유럽에서 이 산업이 잘 됐는데, 2009년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럽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고 뉴질랜드 요트 회사 70~80%가 문을 닫았어요. 저는 2012년 산업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할 때부터 배운 거죠. 마침 2017년 (세계 3대 요트대회인) 아메리칸컵에서 뉴질랜드가 우승하기도 했고요.”

최재영 제공
2017년 제작했던 40미터짜리 배

목수 아들, 보트 빌더가 되다

목수인 아버지는 ‘공부해서 본인처럼 되지 말라’는 의미로 어린 재영씨의 방에 목수 벨트를 걸어놨다. 멀리 유학까지 가서 몸 쓰는 일을 한다고 걱정하기는 어머니도 매한가지. 하지만 기술자에 대한 대우가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뉴질랜드에서 재영씨는 한국인의 성실함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 배우러 오셨다가 영주권까지 받으셨네요.

″여기서 공부하다 보니 한국의 교육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알게 됐어요. 결국 뉴질랜드의 자연환경과 사회 구조에 반해서 영주권까지 받게 됐죠.”

- 비자는 어떻게 진행했나요?

″저는 관광비자로 들어갔다가 처음 4년은 학생비자로 있었어요. 학교를 졸업하면 1년 동안 일할 수 있는 ‘구직 비자’(Post Study Work Visa)를 줘요. 워크비자로 갈 수 있는 발판을 찾는 기간인데, 저는 워크비자를 건너뛰고 바로 영주권을 신청해서 6개월 만에 나왔어요.

영주권은 점수제예요. 나이, 경력, 학력 같은 점수를 더해서 조건이 맞으면, 회사에서 ‘이 사람이 필요하다’는 문서를 써줘요. 그걸 내면 영주권이 나오는 거죠. 뉴질랜드에서 공부했고, 젊을수록 유리하죠. 오랫동안 일해서 앞으로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에게 영주권을 주는 거예요.”

- 출근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오전 6시 반 출근(오후 4시 반 퇴근)과 오전 7시 출근(오후 5시 퇴근) 중에 선택할 수 있어요. 금요일은 오후 3시에 퇴근하고요. 주 30시간 이상 일하면 풀타임 근무예요. 초과근로수당은 임금의 1.5배가 권고사항인데 계약에 따라 다르고요.”

최재영
회사에서 작업 중인 최재영씨

- 키위(뉴질랜드인에 대한 별칭)들은 이 일을 잘 안 하나요?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돈을 모을 필요가 없으니까 한국처럼 무리해서 하진 않아요. 사무직보다는 임금이 높지만 자격증을 따고 경력을 쌓기 전까지는 그렇게 많이 벌지는 못하거든요.

한국에서도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빠진다고 해도, 한국 청년들이 힘든 일 안 하려고 하잖아요.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하는 일이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먼지 뒤집어쓰고, 힘드니까 현지인들이 잘 안 하려고 해요.

화학용품을 쓰다 보니 마스크, 점프슈트를 입고 일해요. 겨울엔 괜찮은데 여름에 뉴질랜드가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무거울 정도로 옷에 땀이 차요. 그걸 못 참죠.

제가 다니는 회사엔 사모안 같은 근처 섬나라 사람들도 있고 중국, 태국, 미국, 유럽 사람들도 있어요. 직원이 100명 정도인데 못 버티고 많이 나가요. 10명이 오면 1년 뒤에 2, 3명 정도 남아요.”

- 요트 일을 하는 한국 분들이 많이 있나요?

″직업 자체가 뉴질랜드에서도 많이 안 하는 분야예요. 보트 쪽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제가 알기론 15~20명밖에 안 돼요. 잘 몰라서 안 하기도 하고요. 보통은 요리를 많이 하죠. 호텔 쪽으로 가면 영주권이 빠르게 나오니까요. 투달러숍, 편의점도 많이 해요. 돈 있는 분들이 식당, 스시집 하고요. 미용사도 많이 오고, 네일 아트 해서 영주권 받는 분들도 있어요.”

최재영 제공
뉴질랜드 제2의 도시인 오클랜드

여기선 가정을 꾸려도 괜찮겠다

재영씨가 어린 시절 즐겨보던 주말의 영화 속 백인 아버지들은 항상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공놀이를 하고, 낚시를 했다. 하지만 현실 속 아버지들은 주말 혹은 밤늦게야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또한 드물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가보니 영화에서 봤던 단란한 가족을 꾸리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 한국에서 삶과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회사 안과 회사 밖의 삶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요. 물론 아주 가끔 잔업은 하지만 분 단위로 시급이 계산돼서 부담이 없어요. 퇴근 후나 주말에 회사에서 전화 올 일도 없어요. 사장, 팀장도 일을 안 하니까요.

뉴질랜드에선 야근할 일이 생기면 팀장이 돌면서 ‘오늘 혹시 시간 있어?’라고 물어봐요. 한국은 지시지만 여긴 부탁이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불합리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한국 직장에서는 제가 정당하게 받은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휴가 사유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결제받으려면 눈치를 봐야 하고 기간도 어느 정도 제한이 있고요. 여기선 월차나 병가를 쓰는데 이유를 만들 필요가 없어요. 2~3주 전에만 말하면 원하는 때에 휴가를 쓸 수 있고요.”

- 뉴질랜드도 가족 중심 사회죠?

″모든 시스템이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요. 한국에서 병가는 본인을 위한 것이잖아요? 여기는 아내나 자녀나 사실혼 관계인 파트너가 아파도 병가를 쓸 수 있어요. 가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러 가족이 회사에 견학을 와요. 일하는 시간에 오는 거죠. 이런 환경이라면 저도 여기서 가정을 꾸려도 괜찮겠구나 싶었어요.”

- 뉴질랜드는 어떤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용하고 변화가 느린 나라예요. 잘 안 바뀌어요. 공사 한 번 하면 오래 걸리고요. 근데 전 그 여유로움이 너무 좋아요. 기본적으로 욕심만 안 부리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고요. 내가 무엇을 하고 살든 어떻게 살든 남의 눈 신경 쓸 필요 없고, 노후의 많은 부분을 나라에서 책임을 져주기에 어르신들이 살기 좋은 나라이기도 하고요.

물론 단점도 많죠. 근데 저에게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여름 하늘은 진짜 이쁘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아름답죠. 보통 10, 20대는 너무 조용하고 심심한 나라, 30, 40대는 조용하고 차분한 나라라고 느끼더라고요.”

최재영
최재영씨가 공부했던 오클랜드 유니텍

- 한국은 왜 여유롭지 못하다고 느끼세요?

″노후보장이 안 되어 있잖아요. 다들 대학 가서 학자금 대출받으면 사회생활을 빚쟁이로 시작하죠. 적당히 돈 벌어서 결혼하고 돈 모을 때쯤 아기 낳고, 애 낳으면서 돈 모아서 또 대학 보내고. 나중에 (자녀) 결혼 자금도 해줘야 하고요.

또 한국은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해요. 우리나라 대부분 학생이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대학을 가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저렇게 해도 회사원, 안 해도 회사원인데, 남들이 다 시키니까 안 할 수는 없는 거죠.

뉴질랜드에는 ‘이 직업이 좋다 나쁘다’ 자체가 없어요. 어렸을 때 기억이 있어요. (목수인) 아버지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어떤 엄마가 애한테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고 하는 걸 직접 겪었어요.

가끔 제가 퇴근해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장을 보거나 식당을 가도 여기는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저 사람을 저런 일을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죠.”

- 중장기나 노후 계획이 있으신가요?

″막연하게요. 어차피 기술직이라 정년이 없어요. 같이 일하는 분 중에 61살도 있고, 70살도 있어요. 경력이 50년 되면 힘을 안 쓰면서도 하더라고요.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70살 정도 되면 작은 공방 만들어서 가구나 작은 배를 만들면서 살고 싶어요.”

- 뉴질랜드 이민을 추천하시나요?

″조용한 거 좋아하고 자연 좋아하시면 뉴질랜드가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경험상 이민이나 유학 와서 가장 실패하는 사람들은 ‘내가 한국에선 어땠다‘라고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에요.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마 이건 뉴질랜드가 아니라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같을 거예요. 근데 ‘그런 것까지 다 버리고 하겠다’면 아직 문은 열려 있다고 봐요.”

최재영 제공
필리핀에서 다이빙 중 바다거북을 만난 최재영씨
구글맵스 캡처
뉴질랜드는 호주 남동쪽에 있다

[뉴질랜드]

- 기본 정보

o 인구 : 약 474만 명

o 면적 : 27만㎢ (한반도의 약 1.2배)

o 민족구성 : 유럽인 75%, 마오리족 16%,아시아계 12%, 폴리네시아인 7%

o 언어 : 영어, 마오리어

o 종교 : 개신교 35%, 가톨릭 13%

o 교민 : 약 3만3403명(2017년)

(출처 : 외교부)

- 이민 정보

o 뉴질랜드 이민성

o 뉴질랜드 이민성 한국어 홈페이지

-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요약본입니다. 전문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