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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9일 17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31일 18시 42분 KST

이 중학생들이 친구의 고향행을 막으려는 간절한 이유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HuffPostKorea / Yoonsub Lee
19일 오후 2시10분 서울 신정동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중학생 40여명이 모여 A군 난민인정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19일 오후 2시10분 서울 신정동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 중학생 40여명이 모여들었다. 학생들이 손에 든 피켓과 플래카드에는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싶어요‘, ‘우리가 힘이 되어줄게‘, ‘할 수 있어 포기하지마’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곧 추방될 위기에 처한 친구 A군을 돕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집회에 노래가 빠질 수 없다. 학생 2명의 기타 반주에 맞춰 아이들은 가수 이한철의 ‘슈퍼스타’를 불렀다.

″지난 날 아무 계획도 없이 여기 서울로 왔던 너 /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 예전 나와 같아 / (중략) /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 너만의 살아가야할 이유 그게 무엇이 됐든 / 후회 없이만 산다면 그것이 슈퍼스타”

다음 곡은 ‘걱정말아요 그대‘였고, 그 다음 곡은 ‘왼손잡이’였다. 집회는 오후 4시쯤 끝났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1시간 40분 걸려 온 길을 학생들은 되짚어 돌아갔다. 이날은 방학하는 날이었다.

 

1심은 난민이라 했고, 2심은 아니라고 했다

A군은 2003년 이란에서 태어났다. 2010년 7월 사업을 하려는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왔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한 동네에서 다녔다. 오랜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훤칠한 키에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A군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중학교 2~3학년 2년 연속 학급 회장을 했다. A군의 꿈은 패션 모델이다. 혼혈 모델 한현민이 롤모델이다. 한 대학교 모델학과에서 한달에 한번 모델 수업을 받고 있다. 모델과가 있는 예고에 진학하는 게 꿈이다.

2011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A군의 인생은 조금 더 특별해졌다. 

”한국 생활이 힘들었어요. 친구 한명이 기도를 많이 해줬어요. 그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갔어요. 이슬람과 달리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었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리도 마음에 들었어요.”

A군은 개종했다. 주일학교와 훈련모임에 나갔다. 2015년엔 아버지도 전도했다.

기독교로 개종하면 이란에서 박해 받는다는 사실은 개종 뒤 알게 됐다. 돌아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부자는 비자 연장이 거부되자 2016년 난민신청을 했다.

판단은 기관마다 엇갈렸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A군이 어려 종교적 가치관이 정립됐다고 볼 수 없다며 종교적 난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1심 재판부는 A군이 이란에 가면 비밀리에 종교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 자체가 중대한 위협이라며 난민으로 봤다. 서울고등법원 2심 재판부는 A군이 한국에서 종교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두드러진 활동을 한 사실이 없고, 현재 이란 정부의 적대적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심리도 열지 않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학교에 소문이 퍼졌다. ‘A가 추방당한대.’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30일 일이었다.

HuffPostKorea / Yoonsub Lee
17일 학교가 끝난 뒤 A군이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박군은 A군의 오랜 친구 중 한명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돌봄교실을 함께 다녔다. 집 방향도 같아 등하교도 함께 했다. 교회도 같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 A군은 1반, 박군은 2반이었다. 한국 정부가 친구를 추방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국어선생님을 통해 들었다. (*국어선생님은 A군 이야기를 자신이 수업 맡은 반 아이들에게 적극 전파했다.)

″이슬람 국가들이 기독교인을 죽이기도 한다는 걸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어요. 그런 일이 제 친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당황스러웠어요. 선생님께 얘기를 듣자마자 ‘내 힘이 닿는 한 도와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석군은 A군과 같은 반이다. 

″처음엔 막막했어요. 친한 친구였고, 이제 서로 알기 시작했는데. 친구니까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안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A군을 돕고 싶은 3학년 학생들이 국어선생님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도울 방법을 궁리하려면 먼저 난민에 대해 알아야했다. 학생들은 난민법과 판례를 뒤졌고, A군과 비슷한 사례 중 난민으로 인정된 사례를 찾아냈다. 그리고 전략을 짰다.

우선 청와대 국민청원란에 글을 올려 주목을 끌기로 했다. A군이 난민지위 재신청을 하는 19일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집회도 열기로 했다. A군과 같은 반 학생 한명이 글을 썼다. 11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학생들은 청원글을 열심히 퍼날랐다. 글 전파를 위해 단체 카카오톡 방에 모여든 학생수만 140명이 넘었다.

1주일 만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많은 기자들이 학교로 찾아왔다.

”무척 놀랐어요. 처음엔 저희가 기자님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기사 한두개 나오고 나니 경쟁이 붙어서 기자님들이 저희에게 연락을 하셔요. 그때부터는 정신이 없었어요.”(최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19일 학교를 찾아 A군을 격려했다. 교육청은 ”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 성숙해 가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면서 ”특히 어려움에 처한 외국 학생에 대해 어른들도 실천하기 어려운 인류애를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여론의 관심은 상처로 이어지기도 했다. 관련 기사엔 어김없이 비난댓글이 달렸다. 학생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난민 챙길 바에야 자국민 먼저 챙겨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20, 30대들은 헬조선이라는 말 많이 하잖아요. 댓글들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에요. 자국민과 난민이 둘 다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단합은 잘 되는데 지금부터는 좀더 다문화적으로, 세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최군)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포용해주고 감싸주는 그런 정서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건 경제성장 속도만큼 빠르게 올라오지 못한 것 같아요. 빠른 시간에 많은 걸 가졌지만 그걸 나눠줄 수 있는 생각이나 정서들은 경제성장만큼 빨리 올라오지 못한 게 포용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박군)

HuffPostKorea / Yoonsub Lee
19일 오후 2시10분 서울 신정동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중학생 40여명이 모여 A군 난민인정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다.

학생들은 뜻대로 안 될 경우를 상상하기 힘들어했다.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다 해서도 안된다면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도 보여야한다고 생각해요. 최선이 안되면 차선도 있지 않을까요. 목숨만 살게 해주면 되는거니까. 그렇게만 해준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최군)

″결과가 안 좋을 때 생각은 솔직히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친구를 위해서 최대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기도를 하겠어요. 또다른 방법이 있나 다시 고민해보고 노력해봐야겠죠.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박군)

″친구들끼리 부정적인 얘기는 하지 말고 긍정적인 얘기들만 하자고 말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만약 친구가 돌아가게 된다면 그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또다른 일이 있는지 찾아보고 돕기 위해 노력할 것 같아요.”(김양)

 ”이란이나 중동이 아니라 제3국으로 가는 길을 최대한 찾아보고 도와주고 싶어요.”(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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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학생들이 단골 떡볶이 가게에서 떡볶이와 김밥, 라면, 순대를 먹고 있다.

A군은 19일 난민지위재신청서를 접수했다. 아무래도 재신청은 1차 신청 때보다 인정률이 떨어진다. 난민인권센터 관계자는 “1심 승소 뒤 A군 기사가 많이 나왔다. 입국연도, 나이 등이 보도됐다. 이란 정부가 A군이 누군지 파악할 수 있다. 2심에서 이 부분이 잘 다뤄지지 않았다. 이 부분을 추가해서 신청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