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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푸틴이 게이라는 농담은 호모포비아다

사람들은 그걸 유머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ALEXEY NIKOLSKY via Getty Images

2016년 미 대선 몇 개월 전부터, LGBTQ들은 묘하게 불쾌한 발상을 마주해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의 묘한 관계에 로맨틱 혹은 섹슈얼한 면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걸 유머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선거 후의 ‘저항 예술’에도 등장했다. 인터넷에서는 두 사람의 사진을 포토샵한 도발적인 이미지들이 돌았다. 심야 토크쇼 호스트들은 트럼프/푸틴 로맨스 농담을 했다가 곤경에 처했다. 후에 여러 작가들이 이런 수법이 얼마나 유해한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7월 16일에 퀴어들은 기묘한 섹슈얼하고 로맨틱한 행위를 하는 트럼프와 푸틴의 그림을 또 한 번 보아야 했다. 뉴욕 타임스가 지난 달에 나온 유독 악랄한 애니메이션 시리즈 ‘트럼프 바이츠’의 한 에피소드를 트위터에 올렸기 때문이다.

″트럼프 바이츠의 이 에피소드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비밀스러울 것도 없는 애정이 십대의 침실에서 펼쳐진다. 금지된 로맨스가 현실이 되는 곳이다.”

이 짧은 애니메이션은 효과를 위해 전적으로 동성애혐오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보다 더 큰 메시지도, 큰 그림도 없다. 두 남성 사이의 애정은 놀림감이라는 생각에 깔려있는 ‘유머’일 뿐이다.

나는 2017년 2월에 벌거벗은 푸틴이 임신한 트럼프를 안고 있는 ‘저항 예술’을 보고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당시 내가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하는 트윗과 이메일이 쏟아졌다. 그중엔 LGBTQ가 보낸 것도 있었다. 내가 ‘특별한 스노우플레이크’[주: snowflake는 정치적 올바름을 매우 중요시하는 젊은이] 행세를 하고 있으며 나 같은 밀레니얼 세대의 민감함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무진 애를 쓴 독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와 푸틴에 대한 이런 퇴보적 묘사는 모두 은밀한 동성애혐오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이 동성애혐오는 남성을 사랑하거나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은 어떤 식으로든 약하고, 여성적이고, 이성애자에 비해 본질적으로 경멸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봐온 트럼프와 푸틴의 성애화 묘사에 숨은 ‘농담’은 남성성의 허약함에 대한 불안이며 남성성의 모습에 대한 문화적 기대치를 맞추지 못한 이들의 불안이다.

LGBTQ, 특히 게이 남성들은 인류 역사 내내 남성성이 그들의 삶을 형성하고 영향을 주는 것에 맞서 싸워야 했다. 수십 년 동안 남성성은 이래야 한다는 이성애 규범적 사상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없이 많은 퀴어 남성들이 살해당했다. 퀴어 남성이 공공 장소에서 다른 퀴어 남성과 감히 애정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폭력 행위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처럼 여성적인 남성들은 남성성에 ‘못 미치는’ 것이 살면서 자신의 안전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매일 생각해야 한다. 그 결과, 트럼프와 푸틴의 동성애에 대한 농담을 퀴어에 대한 ‘엿먹어’로 읽지 않기가 상당히 어렵다. 특히 뉴욕 타임스처럼 영향력있는 매체에 자리가 주어졌으니 더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을 비판하고 조롱하기 위해 남성 사이의 섹스와 로맨스를 무기로 삼는 것은 퀴어 남성(과 모든 LGBTQ)에게 옳은 일이 아니다.

뉴욕 타임스, 제발 잘 좀 해보라.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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