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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18일 10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18일 10시 41분 KST

이 경제 권력을 어찌할 것인가?

huffpost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정말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그들이 회사로부터 당한 부당한 대우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였는데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2016~2017 촛불 시위 때 가면 쓰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없었다. 피고용자들에게 사용자는 대통령이나 국정원보다 더 무섭다.
그런데 사용자가 독점 대기업의 세습 총수라면, 피고용자, 하청 기업에 그의 권력은 거의 염라대왕과 동급일 것이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과 두 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모두 기각되었다. 검찰의 영장 청구가 다소 무리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를 구속할 때 판사들이 이렇게 구속 요건을 충실히 검토한 사례가 있었던가? 중노위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을 받는 사용자는 5%에 불과하고, 유죄의 99%도 벌금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회계조작 등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주식 투자자를 농락한 사용자나 기업이 퇴출된 일이 있었나? 그런데도 ‘시장경제’는 헌법적 가치인가?

복직을 기다리던 쌍용차 노동자가 30번째 자살을 했고, 건설 하도급 업체 사장이 분신자살을 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대기업의 ‘갑질’ 앞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 아닐까? 즉 재벌 대기업이 아무리 부당한 일을 저질러도 그것을 시정할 수 없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검찰, 법원, 정당이 없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역시 항공사 직원들의 가면 시위와 같은 현상이다. 즉 기업권력은 정치권력 저 위에 있다.

삼성 총수 이재용 항소심에서 그를 풀어준 판사는 이재용이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를 받은 피해자라 보았다. 여전히 정치권력이 ‘갑’이고 기업은 ‘을’이라는 논리인데, 아마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면 이 말이 맞을지 모른다.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는 판사들이 시대의 변화를 못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실질 권력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즉 우리 사회에 재벌 대기업과 건물주의 갑질이 만연한 이유는 그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되어 있는 제반 법, 정책들이 시행되고, 그들이 그런 법조차 지키지 않아도 거의 처벌되지 않거나 극히 경미한 처벌만 당하기 때문일 것이며, 정부와 법원, 그리고 언론과 대다수 법학자와 경제학자들이 그것을 계속 옹호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POOL New / Reuters

한국에서 재산권, 경영권은 신의 계율에 가깝고 그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대법원과 헌재다. 그런데 한국 사법부의 신뢰는 26% 내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거의 최하위이며, 정부,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도 거의 같은 수준이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의, 공정의 감정은 사법부, 정치권의 생각과는 완전 딴판이다. 국민들 다수는 대기업의 기여도 인정하지만, 그들의 갑질과 그것을 옹호하는 사법부와 정치권이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평소에는 그냥 불만을 품고 살다가 막상 자신이 막판에 몰렸을 때 극한 행동을 한다.

지난 2016~2017 촛불 시위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요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공정’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공정은 곧 갑질, 특권, 부당이득을 없애는 것이다. 취업 시장, 골목 시장, 중소기업 기술개발, 조세 제도 등 여러 영역에서 정치 경제적 강자들이 시장의 힘을 갖고 있고 토지를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를 취해온 관행을 교정해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시중의 돈은 모두 부동산에 몰려 있어 서민들은 쓸 돈이 없고, 자영업자는 모두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부동산 세제 개편은 좌절감만 더해주었다.

물론 대통령과 정부는 이 막강한 경제 권력과 관행화된 불공정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 정도일지 모른다. 그러나 선출 권력이 못하면 누가 할 수 있나? 국민 70%가 여전히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이유는 선출된 권력의 힘으로 경제 권력을 제압해달라는 기대가 표현된 것이다. 경제 활성화는 정치적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갑질 근절, 불로소득 환수, 경제적 약자의 자력화를 위한 제반 조치, 사회안전망 확대는 정치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런 세습 자본주의, 경제 강자의 만연한 갑질을 교정하지 않고 혁신 경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