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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컴퓨터 기반 독성 예측 알고리즘은 실제 동물실험의 결과에 비해 더욱 안정적인 신뢰도를 지닐 수 있다.

ⓒD-Keine via Getty Images

새롭게 발굴되거나 만들어진 화학물질이 제품이 되려면, 그것이 인체나 환경에는 안전한지를 따지는 독성시험을 거쳐야 한다. 독성시험에서는 흔히 사람을 대신해 쥐, 토끼 등 수많은 동물이 사용된다. 근래 들어 화장품을 비롯해 제품의 독성과 안전성 시험에서 동물 사용을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동물실험을 대신할 대체 독성시험법의 연구개발도 활발해지고 있다.

화학물질의 독성 시험결과를 담은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새로운 화학물질의 독성을 예측하는 인공지능형 알고리즘과 컴퓨터 분석 모형이 최근 발표됐다. 연구진은 이 알고리즘의 독성 예측 정확도가 평균 87%에 달해, 화학물질 평가에 실제 사용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동물대체시험연구센터의 토머스 하퉁(Thomas Hartung) 교수 연구진은 화학물질 독성 관련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일종인 ‘기계학습(머신러닝)’ 기법을 이용해 동물실험 없이 알려지지 않은 화학물질의 독성을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 알고리즘과 모형을 개발했다며 그 결과를 국제저널 <독성 과학(Toxicological Sciences) >에 발표했다. ‘(화학)구조 활성 관계의 교차해석’이라는 의미의 약자 ’라자르(RASAR, Read-Across Structure Activity Relationship)로 불리는 이 알고리즘과 모형은 실제 동물실험의 결과에 비견될 만한 또는 능가할 수 있는 정도의 높은 예측 신뢰도를 갖추었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연구진이 2016년 2월에 발표한 결과를 발전시킨 것이다. 당시 이들은 유럽의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9801건 화학물질의 안전성 데이터를 분석해 ‘화학 구조가 비슷한 화학물질들 사이에서는 안전성 데이터도 일반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화학 구조의 비교를 통해 독성을 예측하는데 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비교분석에 활용할 기존 화학물질 독성시험의 데이터베이스를 더 큰 규모로 넓히고, 기계학습 기법을 이용해 독성을 예측하는 알고리즘과 컴퓨터 모형을 개발했다.

독성 예측 알고리즘의 신뢰도는 일단 만족스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알고리즘과 모형을 이용해 특정 물질의 독성 예측을 컴퓨터로 시행한 결과와 실제 동물실험에서 얻은 결과를 비교했는데, 그 결과에서 독성 예측의 정확도는 컴퓨터 예측에서 평균 87%로 나타났으나 동물실험 결과에서는 81%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실험에서는 같은 방법을 쓰더라도 결과가 똑같이 재현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연구진이 제시한 비교에서도 동물시험 결과의 재현 정확도가 81%에 그쳤다는 것이다.

ⓒRICHARD PRIDEAUX/SCIENCE PHOTO LIBRARY via Getty Images

이런 결과는 컴퓨터 기반의 독성 예측 알고리즘이 실제 동물실험의 결과와 비교해 더욱 안정적인 신뢰도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됐다. 하퉁 교수는 “(평균 87%의 정확도라는) 이런 결과는 정말 놀라운 것”이라며 “컴퓨터 기반 예측이 많은 동물시험들을 대체하고 더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그동안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 검증 자료의 제출 요구는 더 커지는 반면에 독성시험의 동물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는 확대되면서, 동물을 대신하는 대체 독성시험법의 필요성이 증대해왔다. 이미 2013년 유럽연합(EU)이 화장품 개발 과정에서 독성시험의 동물 사용을 금지했으며, 2016년 미국에서는 연방연구기관에 동물 사용을 대체하거나 줄이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한국에서도 2017년부터 화장품 독성 검사에서 동물 사용을 금지하는 화장품법이 제정됐으며, 한국동물대체시험법 검증센터(koVCAM)에서 대체시험법의 연구개발과 가이드라인을 연구하고 있다.

과학잡지 <더 사이언티스트>존스홉킨스대학 보도자료를 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환경청(EPA)은 그동안 개발된 컴퓨터 기반 독성 예측 도구들을 대상으로 음식, 약물이나 다른 소비자제품의 화학물질을 검사하는 데에 이런 컴퓨터 기반 도구들을 동물시험 대체용으로 쓸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컴퓨터 기반 독성시험 방법이 공인되면, 오랜 시간이 걸리며 고비용인 데다 데이터를 관리하기가 까다로운 동물시험을 대신해 컴퓨터 기반 독성 예측 도구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그럼으로써 불필요한 동물실험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불필요한 동물시험의 문제점은 그동안 많이 지적돼 왔다. 하퉁 연구진도 연구과정에서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하면서 서로 다른 기업이나 연구소들이 동일한 방식의 동물시험을 불필요하게 되풀이하는 사례가 종종 발견했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더 사이언티스트>는 같은 방식의 동물시험이 90차례 반복된 경우가 2건이 있었으며 45차례 되풀이된 경우도 69건이나 있었다고 전했다.

컴퓨터 기반의 화학물질 독성 예측 프로그램이 널리 활용되면, 특정 화합물의 합성 연구에 나서기에 앞서서 미리 그 물질의 독성를 예측해 수정하거나, 갑자기 출현한 낯선 환경 오염물질의 독성을 신속하게 우선 파악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쓰임새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특정 화학물질의 암 유발 독성 예측처럼 장기간에 걸쳐 안전성을 따져보아야 하는 종류의 화학물질 독성 예측에서는 현재 개발되는 컴퓨터 기반 알고리즘도 아직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연구진은 <더 사이언티스트>에서 밝혔다.

앞으로 화학물질 실험결과의 데이터베이스를 더욱 많이 담아내고 화학물질 독성의 생물학적 작용에 관한 연구결과들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는 컴퓨터 기반 알고리즘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이 분야의 연구과제가 되고 있다.

동물 대체 독성시험법 개발 어떻게…

“실험동물을 이용하지 않고 화학물질의 구조를 분석하여 그 반응을 미리 예측해보는 비동물 시험방법들이 있다. 화학물의 구조가 물리적, 화학적,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연구하여, 화학물질의 구조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그것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하는 방법들이 있는데, 이중 하나가 화학물질의 성질과 활성도(activity)를 예측하는 “구조 활성 관계”(Structure Activity Relationships;SARs) 분석 기법이다.

만약 분석을 위한 정보가 충분히 모아졌다면 컴퓨터를 통해 화학물질의 성질과 움직임을 정량으로 예측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정량적 구조 활성 관계”(Quantitative SARs;QSARs) 분석기법이라고 한다. QSAR 프로그램은 실험이 전혀 없이도 화학물질의 성격을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체내축적(bioaccumulation) 또는 부식성이 있는 물질에 대한 예측을 더 쉽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으며, 피부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화학물질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화학물질의 성질을 예측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교차해석”(read-across)이 있다. 만약 서로 다른 두 가지 화학물질이 유사한 ‘구조’(chemical structure)를 갖고 있다면, 그 물질의 ‘성질’도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화학물질 간의 구조적, 활동적 유사성 정보를 이용하여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시험하고자 하는 화학물질이 속하는 기존 물질 그룹이 있는지 살펴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시험하고자 하는 물질이 속한 화학그룹이 이전에 수행된 시험결과를 통해 간에 독성을 야기한다는 결과가 이미 존재한다면 시험하고자 하는 물질도 화학적 구조의 유사성을 비교하여 간에 독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또한 QSARs와 교차해석을 통해 모인 정보를 바탕으로, 시험하려는 물질에 대해 자료가 충분한지 증거 정보를 비교하여 예측하는 “증거 가중치”(weight of evidence) 방법도 있다.

물론 굉장히 복잡한 화학구조물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근거 자료와 심도 깊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며 방대한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이 방법들을 사용하는 데에는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활용하는 분야는 점차 신약 개발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다.”

[출처:‘늘어나는 동물 없는 실험실’…세상은 변하고 있다 (서보라미, 사이언스온 2017.08.08), http://scienceon.hani.co.kr/538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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