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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살 예찬

ⓒWestend61 via Getty Images
ⓒhuffpost

나는 과격한 운동을 좋아한다.

역기를 들고 철봉에 매달리고 타이어를 당기고 하다보면 내 손에는 늘 굳은살이 떠나지를 않는다.

보호가 된다는 장갑들도 몇 번이나 바꿔가면서 착용해 봤지만 약간의 도움이 될 뿐 결국 장갑만 찢어지고 굳은살은 더욱 넓어지고 두꺼워져만 갔다.

손바닥이며 손가락이며 여기저기 생기는 거칠고 뻣뻣한 운동의 흔적들이 보기에는 그다지 예뻐보이지 않지만 난 미용보다는 땀흘림의 희열과 건강함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운동만을 생각하면 그 살들은 내게 있어 너무도 유용한 보호장구가되기도 한다.

왠만한 거친 물건이나 충격은 내게는 맨손만으로도 큰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벨이나 덤벨을 반복해서 들다보면 피부가 부어오르거나 찢어지기도 하는데 내 손에서는 굳은살이라는 튼튼한 보호장구가 더 두꺼워지는 효과만 나타날 뿐이다.

그런데 요즘 개인적으로 바빠진 일정들로 운동하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 녀석들도 스스로의 존재가치가 낮아짐을 느꼈는지 내 손에서 하나 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거친 피부는 언젠가의 부드러움을 회복하고 있었지만 다시 시작한 운동들은 새로운 굳은살을 위해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붓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하고... 내 손은 또 한 번 굳은살을 만드는 아픈 과정을 시작하고 있다.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눈 안보이는 나의 웃음에 대해 궁금증을 넘어 경의를 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프고 슬프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넘어선 초인간적인 해탈의 경지쯤으로 여기는 듯도 하다.

가만히 앉아서 차분히 생각해 보면 내가 생각해도 시력 잃은 내 상황이 마냥 밝은 내 표정과는 매우 잘 어울리는 조합같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웃음이 매우 강력한 의지를 동반한 현실부정의 초능력적 소산물이 아닌것 또한 분명하다.

나 또한 즐거워서 웃을 뿐이고 매 순간 나의 장애가 내게 아픔을 주거나 슬픈 감정을 지시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겐 감정의 굳은살이 생겨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처음 눈이 안 보이던 오래전 그 날 난 처음 운동을 하던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이 아팠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운동의 강도가 올라가듯 나를 향한 삐뚤어진 사람들의 반응들이 내게 반복적인 상처들을 남기고 난 또 찢어지고 부어올랐던 것 같다.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혼나기도 하고 100원짜리 동정을 받기도 하고 순고한 꿈 마저도 그럴듯한 논리들로 짓밟히기도 했다.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여자친구의 부모님에 의해 주제 넘는 오만함으로 판정되고 특별할 것 없는 도전들에도 악플과 비난들이 쏟아졌다.

그 때마다 참으로 아팠지만 강한 자극 좋아하는 내 성격은 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삶 속에서도 또 다른 굳은살을 위해 재도전을 선택했던 것 같다.

덕분에 기능 잃어버린 내 눈은 이제 나에겐 농담의 소재로서도 자연스러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세상 좋아졌다고도 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아직 나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그래도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은 마음의 굳은살이 두꺼워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겐 이런저런 이유로 드러내지 못하는 약한 부분들이 있다.

완벽히 감출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이따금씩 숨겨지지 못하는 무방비의 상태가 될 때 또 한 번 부어오르고 찢기고 피를 내고는 한다.

굳어지지 못한 약점들은 반복적으로 상처가 되고 흉터로 남는 과정을 반복한다.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성격일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나의 가장 약한 부분들이 굳은살을 만들어 냈을때의 단단함 또한 꼭 권해주고 싶은 내 경험이기도 하다.

아무리 약한 상처도 굳은살이 박히는 순간 단단해 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난 격한 운동을 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굳은살을 가졌다.

난 부족한 눈을 가지고서도 행복할 수 있는 굳은 살도 가졌다.

나의 건강이나 내 웃음이 탐난다면 용기있는 찢어짐과 부어오름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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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시각장애인 #상처 #굳은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