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8년 07월 16일 11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16일 11시 43분 KST

스타트렉·피터팬으로 꿈 키운 ‘아폴로 키즈’, 우주를 품다

우주여행용 캡슐을 싣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블루 오리진의 뉴 셰퍼드 로켓. 블루 오리진 제공
huffpost

미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이라 할 태평양 연안 항구도시 시애틀 남쪽에 자리한 우주개발업체 블루 오리진. 회사 입구 벽에 걸려 있는 로켓 걸개사진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발사, 착륙, 반복.” 우주여행의 특징을 압축해 표현한 세 마디 단어다. 블루 오리진은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설립한 회사다. 홍보담당 직원은 “블루 오리진이란 회사 이름의 블루는 지구를, 오리진은 지구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걸 뜻한다”고 설명했다. 안내데스크 옆엔 어린 시절 베조스가 심취했던 에스에프(SF) 시리즈 <스타 트렉>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 쥘 베른의 <달세계 여행>에서 묘사된 로켓의 모형이 나란히 방문객을 맞고 있다.

계단을 타고 들어간 로켓 공장에선 블루 오리진의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 우주여행용 뉴셰퍼드 로켓 엔진 BE-3가 현재라면, 좀 더 먼 우주 탐사용으로 쓰일 지름 7미터의 거대한 뉴글렌 로켓 엔진 BE-4는 미래다. 그 한쪽엔 우주여행에 사용할 유인 우주선 모형이 있다. 돔 모양의 우주선엔 누운 자세로 앉을 수 있는 좌석 6개가 창문을 따라 일렬로 배열돼 있다. 우주선 가운데에 쭉 뻗어 있는 원통형 기둥은 비상탈출 장치다. 뉴셰퍼드는 지금까지 8차례에 걸쳐 고도 100km의 준궤도 왕복 시험비행을 마쳤다. 뉴 글렌은 2020년 첫 시험발사를 목표로 제작 중이다.

스페이스엑스는 달궤도 여행에 쓸 현존 최강 로켓 ‘팰컨헤비’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스페이스엑스 제공

요즘 미국에서 우주개발의 원동력은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에서 나오고 있다. 성공 가능성이 아주 낮은 분야임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정부가 주도했던 과거의 우주개발(올드 스페이스) 방식과 다르다는 점에서 최근의 이런 움직임을 ‘뉴 스페이스’라고 부른다. 대표 사례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엑스(X)다. 지난 16년 사이에 이 회사의 `팰컨9’ 로켓이 거둔 성과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다. 팰컨9은 2010년 이후 8년간 57차례 하늘로 날아올랐다. 올 상반기에만 벌써 12차례 우주 임무를 수행했다. 더 놀라운 점은 재활용 기술이다. 쏘아 올린 것의 절반에 육박하는 25개를 회수했고, 이 가운데 11개를 다시 쏘아 올렸다. 정비·수리 기간도 2달 반으로 단축했다. 최대 100번을 사용할 수 있는 팰컨9 최종판까지 선보였다. 로켓도 일반 상품처럼 거듭 사용할 수 있는 시대를 연 셈이다. 스페이스엑스 덕분에 미국은 세계 로켓 발사 시장 점유율을 절반 이상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스페이스엑스는 지난 6월 다시 한 번 `뉴 스페이스‘의 자존심을 한껏 세웠다. 미 공군의 군사위성 발사 입찰에서 `올드 스페이스’의 대표격이라 할 보잉-록히드마틴의 합작사 유엘에이(ULA)를 따돌리고 계약을 따냈다.

이들이 우주 개발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베조스는 다섯살 때 아폴로 11호 우주선의 달 착륙을 보고 자란 `아폴로 키즈’ 출신이다. 이후 베조스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모험담을 다룬 ‘스타트렉’에 빠져들며 꿈을 키워왔다. 그는 1982년 마이애미 팔메토고교 졸업생 대표로 지명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 2백만~3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 공원, 거주지를 만들고 싶다. 인류를 구하고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머스크의 우주사업은 대학 시절 세계와 인류의 미래에 어떤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결과다. 그가 자신의 역량을 집중할 분야로 선택한 것이 인터넷, 청정 에너지, 그리고 우주였다. 그 바탕엔 어린 시절 탐독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작품들이 있었다. 또 다른 우주여행 사업가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어린 시절 <피터 팬>을 읽고 언젠간 꼭 날아보겠다고 결심했다. 우주호텔을 추진하고 있는 호텔재벌 로버트 비글로는 어린 시절부터 우주여행을 목표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업가로 나선 사례다.

블루 오리진의 준궤도 우주여행에서 로켓 발사부터 무중력 체험, 귀환까지 전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애니메이션 이미지들. 총 여행시간은 11분이다. 블루 오리진은 내년부터 티켓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블루 오리진 유튜브

`뉴 스페이스’ 프로젝트들의 공통점은 과감하고 상업적이고, 개인의 꿈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국가적 목표, 애국심, 책임감 등이 `올드 스페이스‘의 정신적 토대라면, `뉴 스페이스‘의 정신적 원천은 꿈과 상상력, 모험심이다. 뉴스페이스의 등장은 정부의 위상과 역할이 변화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과거 냉전시대의 정부는 국민통합과 국가적 목표를 위해 국력의 대부분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1960년대 아폴로 프로그램에 정부 예산의 5%, 많을 때는 10%까지도 쏟아부었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전이 무너지고 세계가 글로벌화, 사회 다원화, 부의 양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가 총동원형 투자는 명분도 실리도 찾기 어렵게 됐다. 나사의 예산 비중이 아폴로 때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배경엔 이런 시대적 변화가 있다. 그 벌어진 틈을 ‘뉴 스페이스’ 기업가들이 메꾸고 있다.

주광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융합연구부장은 “‘뉴 스페이스’ 기업가들은 사업에서 번 돈을 몽땅 여기다 쏟아부으려 한다는 것도 특징적”이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자신이 돈을 버는 목적은 다른 행성에 인류가 거주할 도시를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순자산 1396억달러(약 157조원)의 세계 최고 부자 베조스는 아마존 주식을 팔아 매년 10억달러(1조1천억원)씩 우주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뉴 스페이스’의 최대 격전장은 우주여행이다. 베조스가 추진하는 건 준궤도여행이다. 로켓을 타고 우주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고도 100km의 ‘카르만 라인’을 살짝 넘어섰다 돌아오는 여행이다. 우주체류 시간 4분을 합쳐 총 여행시간은 11분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승객들은 별이 가득한 우주와 푸른 지구를 구경하고, 무중력 상태를 체험한다. 우주여행 중에 받는 압력은 롤러코스터를 탈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블루 오리진은 마네킹을 태우고 두 차례 실전연습을 했다. 자신감을 얻은 듯, 블루 오리진은 내년부터 우주여행 티켓을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머스크의 우주여행은 더 멀고 다양하다. 가장 먼저 시도하려는 건 달 궤도 여행이다. 1968년 인류 사상 처음으로 달 궤도를 다녀온 아폴로 8호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올 2월 여기에 쓰일 초대형 로켓 팰컨헤비를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화성 여행이다. 높이 106m의 로켓 일체형 콤보우주선 ‘BFR’로 화성 여행을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시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1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우주선을 1천번 쏘아 올려 100년 안에 100만명이 거주하는 화성 도시를 건설한다는 게 머스크의 꿈이다. BFR을 지구여행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구 어디든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승객들은 여행 도중에 준궤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들이 우주여행 상품화가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로켓 재활용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로켓을 재활용하면 여행 상품가격이 크게 낮아져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버진 갤럭틱의 준궤도 여행용 모선 비행기에 실려 날아오르는 우주선(가운데). 버진 갤럭틱 제공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도 준궤도 여행을 준비 중이다. 승무원 2명을 포함해 8명이 탑승하는 우주비행기 VSS유니티로 5분간 준궤도를 체험하고 돌아온다. 처음엔 모선 비행기에 실려 올라간 뒤, 중간에 로켓 엔진을 점화시키는 2단계 방식이다. 현재 35km 고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여행 일정도 나오지 않았지만, 브래드 피트 등 700명이 25만달러짜리 티켓을 예약했다.

첫 테이프는 누가 끊을까? 스페이스엑스는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로켓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 여행코스를 시험해본 적은 없다. 버진 갤럭틱은 목표 고도까지 올라가 보지 못했다. 블루 오리진은 목표로 한 우주여행 전 코스를 답사해봤다.

지난달 26~28일 시애틀 남쪽 호숫가에서 열린 `뉴스페이스 2018’ 콘퍼런스의 첫 토론 주제는 `1조달러 시장‘이었다. 이 자리엔 2040년 우주산업 규모가 1조~2.7조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치들이 소개됐다. 지금의 3~8배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우주산업이 조 단위로 성장하는 도약대로 우주여행 사업을 주목했다. 투자가 중에는 첫 조만장자가 탄생할 분야로 우주산업을 꼽는 이도 있다. 회의장 바로 옆엔 공교롭게도 보잉 여객기 조립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보잉 737기를 앞에 두고 여는 콘퍼런스가 마치 ‘올드 스페이스’에 대한 ‘뉴 스페이스’의 시위처럼 여겨졌다.

지난달 26~28일 미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린 ‘뉴 스페이스 2018’ 콘퍼런스.

미 플로리다주 동쪽 끝 섬에 있는 케네디우주센터에선 우주개발 동력이 정부에서 민간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은 로켓 발사대가 있는 나사의 핵심 시설이다. 나사가 독점했던 이곳에도 ‘뉴 스페이스’ 기업들이 똬리를 틀었다. 스페이스엑스는 아폴로 우주선이 섰던 바로 그 자리 ‘39-A’ 발사대를 20년간 독점 임대해 사용 중이다. 블루 오리진은 36번 발사대를 빌렸다.

그러나 우주산업은 전체적으로 보면 프레젠테이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아직 사람이 탈 수 있는 우주선은 만들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2019년은 `뉴 스페이스‘에 새 이정표를 기대해볼 수 있는 해다. 스페이스엑스와 블루 오리진은 각각 내년 중 사람을 태운 우주선을 띄워 달 궤도와 `카르만 라인’ 시험비행에 나설 예정이다. 민간 유인 우주선의 등장은 본격적인 우주 상업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고도로 훈련된 전문 우주비행사가 아닌 건강한 일반인들도 우주여행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내년은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딘 지 꼭 50년이 되는 해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허프포스트코리아